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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약촌오거리 사건’ 누명…“검사도 판사도 내 말 안 믿었다”

등록 2020-11-12 18:09수정 2020-11-13 02:41

‘약촌오거리 사건’ 억울한 옥살이 피해자, 법정서 당시 경찰 재회
경찰, 15살 목격자 폭행해 범인 몰고
검사, 3년뒤 진범 나왔는데도 눈감아
손배소 법정에 나온 경찰 사과커녕
“허위진술 탓 진범 의심” 몰아세워
불출석 검사는 변호인 통해 “미안”
2016년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최아무개씨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6년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최아무개씨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사도 판사도 제 말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법 559호 법정 증인석에 앉은 최아무개(35)씨는 막막하고 억울하기만 했던 20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15살 소년이었던 최씨는 ‘약촌오거리 살인강도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0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최씨와 가족은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과 검사, 그리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서울중앙지법 민사45부(재판장 이성호)는 이날 마지막 재판을 열었다. 법정에는 피해자 최씨(원고)와 그를 진범으로 지목한 전직 경찰관 이아무개씨(피고), 진범을 잡으려고 했던 전직 경찰관 황아무개씨(증인)가 함께 출석했다.

이 사건은 2000년 8월10일 새벽 2시께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 버스정류장 앞에서 택시기사가 운전석에서 흉기에 찔린 채 발견되며 시작됐다. 당시 다방에서 배달 일을 하느라 약촌오거리를 지나는 길에 택시기사를 발견한 최씨는 거꾸로 범인으로 지목됐다. 이씨 등 익산경찰서 경찰들은 최씨가 택시기사와 시비가 붙어 홧김에 살해한 것으로 사건을 꾸몄고 이런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어린 소년을 여관에 감금하고 때리면서 잠도 재우지 않았다. 결국 최씨는 “내가 살해했다”고 거짓자백을 했고 1심에서는 혐의를 부인했으나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형량이라도 낮추려고 항소심에선 혐의를 인정하고 상고도 포기해 징역 10년이 확정됐다.

2003년에 진범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군산경찰서에서 약촌오거리 사건의 진범이 최씨가 아닌 김아무개씨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김씨 친구에게서 “사건 당일 김씨가 피 묻은 칼을 들고 집으로 찾아와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는 진술까지 받아낸 것이다. 군산경찰서 소속 경찰 황씨는 김씨에게도 자백을 받아 구속영장을 신청하려 했으나 검찰은 불구속 수사로 진행했고 사건을 담당한 김아무개 검사는 최종 무혐의 처분했다. 그렇게 사건은 묻혔고 최씨는 2010년에 만기 출소했다. 2016년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은 뒤에야 진범 김씨는 체포됐고 강도살인죄로 징역 15년이 확정됐다.

이날 재판에서 최씨 대리인 박준영 변호사가 ‘사건 당시 범인을 목격했다고 말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자 최씨는 “진실되게 본 것을 봤다고 말했을 뿐인데 내게 큰 화살로 돌아올 줄 몰랐다”며 후회했다. “이렇게 맞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거짓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누구도 제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검사도 판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그것(거짓자백)밖에 없었다”고 했다.

재판장은 최씨를 진범으로 몰아간 전직 경찰관 이씨에게도 질문과 발언 기회를 줬지만 그는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왜 그때 ‘두 사람이 달아나는 모습을 봤다’고 허위 진술 했느냐”며 최씨를 몰아세웠다. 최씨가 거짓말을 했기에 진범으로 의심했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최씨는 “두명을 봤으니까 두명을 봤다고 말했을 뿐”이라며 “이 사람을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화가 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법정에 나오지 않은 김 검사는 변호인을 통해 “당시 여러 상황을 고려해 판단했는데 최씨에게 도의적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진범을 잡으려고 했던 전직 경찰관 황씨는 “검찰이 쓴 불기소 이유서를 봐도 진범과 친구, 참고인 진술이 왜 쓸모가 없는지 그런 부분이 전혀 없었다. (검찰이) 다분히 형식적으로 사건을 매듭지었다”고 질타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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