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 집회가 지난 7월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에서 열렸다. 이번 집회를 연 ‘엔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팀’(eNd)은 집회를 통해 경찰에 제대로 된 수사와 판결을 요구했으며 성범죄자에게 관대한 처벌을 내리는 사법부를 비판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텔레그램 ‘엔(n)번방’에서 유포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2000여개를 구매한 20대 남성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박용근 판사는 11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는 ㄱ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아울러 성범죄 재범 예방 강의 수강 40시간과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다. 다만 박 판사는 ㄱ씨에 대해 재범 위험성이 현저히 낮거나 취업을 제한해서는 안 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해 취업제한 명령을 선고하지 않았다. ㄱ씨는 신상정보 공개 및 고지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ㄱ씨는 ‘갓갓’ 문형욱(24)에게 엔번방을 물려받은 ‘켈리’ 신아무개(32)씨에게 지난해 8월 5만원을 내고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2254개를 다운받아 휴대전화에 보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 판사는 “ㄱ씨가 소지한 음란물(성착취물)의 수가 많고, 신씨에게 대가를 지급하고 구매하여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도 “ㄱ씨가 이 사건 범행을 자백하면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구매한 음란물(성착취물)을 재유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형사 처벌 전력이 없는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번 판결에 대해 백소윤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피고인 중심의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백 변호사는 “유포하지는 않고 보관(소지)만 한 점을 감경 요소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지 의문이다. 결국 소지죄의 엄벌 필요에 대해 공감대가 없거나, 디지털 성착취물의 소지·유포가 동시에 이뤄지기 쉬운 기술적인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ㄱ씨는 아동·청소년성착취물임을 알면서 이를 소지·시청한 자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법 개정 이전)을 적용받았다. 개정 이전의 법은 신상 공개 또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자를 대상으로 했다. 지난 6월2일부터 아동·청소년성착취물임을 알면서 이를 소지·시청한 자에 대해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개정안이 시행 중이다. 신상 공개 또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로 확대됐다.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높이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수연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는 “개정 후 법은 1년 이상의 징역이 가능하지만, 집행유예 선고가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지난 9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공개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을 보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물과 관련한 범죄에서 다수 피해자를 상대로 한 경우 등에는 형사처벌 전력이 없더라도 감경요소로 고려할 수 없도록 제한 규정을 신설한 상태다. 다만 백 변호사는 “‘다수’라는 기준이 애매한 점이 한계”라고 지적하며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은 공청회 등을 거쳐 오는 12월7일 위원회에서 확정안을 최종 의결할 예정이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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