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지지하는 교수학술 4단체 기자회견.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8년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를 수사하던 중 삼성전자가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의 미국 소송비를 대납했다는 혐의를 잡고 본사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상당량의 내부문건을 확보했습니다. ‘전자서비스 불법파견이슈 대응 경과 및 대책’ 문건 등도 이때 발견됐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파견 여부에 대한 수시감독 결과를 발표하기 사흘 전인 2013년 9월13일 작성됐습니다. 이 문건에는 노동부를 전방위로 압박해 ‘삼성전자서비스 기사 고용 관계가 불법파견이 아니다’라는 결정을 끌어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문건에 담긴 내용이 실제 실현됐는지 짚어보겠습니다.
“2013년 6월24일부터 특별근로감독을 실시 중이던 노동부가 불법파견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사전 감지하고, 청와대·행정부·언론 등을 활용한 전방위적 대응을 통해 7월 말 종료할 예정이던 감독 기간을 8월 말까지 연장한 뒤 노동부 쪽 움직임 차단. 국내 서비스산업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논리로 노동부를 우회 압박, 이런 노력의 결과 노동부가 불법 파견이 아니라고 잠정 결정해 9월16일 언론에 발표할 예정.”
노동부는 실제로 수시감독 마지막 날인 2013년 7월23일 회의를 열어 감독 기간을 8월30일까지 연장했고 9월16일 “불법파견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문건에 적은 내용은 고스란히 현실이 됐습니다. 단순한 예상이 아니었습니다. 검찰은 정 전 차관이 2013년 7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등에서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취지로 결론을 내리려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2차례 회의를 열어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쪽으로 결론을 바꾸게 했다며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그러나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배준현)는 지난 2일 정 전 차관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 문건만으로는 정 전 차관의 직권남용 혐의를 단정할 수 없고 “근로감독관들은 (정 전 차관이 소집한 회의에서) 충분히 의견제시권을 행사한 것으로 보이고 정 전 차관이 근로감독관의 권한을 방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항소심의 판단입니다. 수시감독이 끝나기도 전에 정 전 차관이 노동부 고위관료 출신인 황우찬 삼성전자 상무에게 개선안을 전달한 것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없지 않다”면서도 “근로조건 자율개선지도 등의 시기에 제한이 없다”며 면죄부를 줬습니다. 노동부 차관은 근로조건 개선을 지시할 수 있어 행정지도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심아무개 삼성전자 인사팀 직원의 컴퓨터에서 삼성전자서비스 수시감독에 대한 지방고용노동청의 보고서가 발견되는 등 노동부 내부 문건이 유출된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노동부 출신 황 상무가 수시감독 관련 정보를 수집했고 노동부 공무원이 내부 자료를 삼성 쪽에 제공하는 데 관여했다고 재판부도 의심했지만 직권남용 책임을 묻기에는 나아가지 않은 겁니다.
특히 1·2심에서 증거로 제출된 ‘에버랜드 일일동향’ 문건에는 “황 상무는 11.24. 권혁태 노사협력정책관과 전화통화 시 고소 건 관련 더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는 노동부 입장 확인”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황 상무와 행시 동기였던 권 전 정책관이 과거 삼성에버랜드가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려고 노조 관련자들을 고소했던 것을 묵인한 정황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의심스러운 정황만으로 삼성 쪽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수시감독이 불법파견으로 결론 나는 것을 막고 감독 기간을 연장하려고 2013년 7월 회의 개최를 지시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정 전 차관의 직권남용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된 권 전 정책관에게도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결국 정 전 차관의 1·2심 재판 과정에서 삼성과 노동부의 의심스러운 정황을 보여주는 수많은 문건이 증거로 드러났으나 노동부 관료 중 처벌받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박다혜 변호사는 “1·2심 무죄 판단만으로 노동부와 삼성 쪽 사이에 부적절한 유착이 전혀 없었다고 단정 짓거나 잘못 해석해서는 안 된다”며 “두 사람의 공소사실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떠나 항소심 재판부가 인정한 사실 관계를 보더라도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었고 수시감독 관련 노동부 내부 문건이 삼성 쪽에 유출했다는 게 확인됐기 때문에 노동부 역시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등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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