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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굿바이 MB…13년 묵은 무력감·자괴감도 함께 안녕

등록 2020-11-02 12:06수정 2020-11-03 07:54

13년 전 ‘엠비 검증팀 막내기자’의 기억
그래픽_김승미
그래픽_김승미

대법원 확정판결로 뇌물·횡령 범죄가 확인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일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됐다. 17년형 중에 아직 남아있는 잔여형기는 16년이다. <한겨레>가 2007년부터 그의 범죄를 뒤쫓았으니, 범행을 은폐하고 영화를 누리던 시간보다 그가 죗값을 치러야 할 시간은 더 길다. <한겨레> ‘이명박 검증팀’의 막내기자로 그와 악연을 맺은 뒤 그를 떠나보내며 생각나는 장면을 정리해봤다.

■ 자녀를 영포빌딩 관리직으로 허위 채용 탄로…전무후무한 엠비의 사과

2007년 11월9일. 국회 대정부질문이 있는 날이었지만 대선이 코앞에 있었기에 대부분의 언론은 대선후보 동정과 캠프에 집중했지 국회 일정은 주목 대상이 아니었다. 야당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의와 폭로로 정부를 긴장하게 만드는 게 국회 대정부질문의 일반적인 특성이었지만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가만히 시간만 보내도’ 이명박 후보를 통해 정권을 잡게 될 상황이었기에 대정부질문에 신경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강기정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이 2007년 11월1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김진표 정책위의장 등과 함께 연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자녀위장취업관련 브리핑에서 이 후보가 밝혀야 할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강기정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이 2007년 11월1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김진표 정책위의장 등과 함께 연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자녀위장취업관련 브리핑에서 이 후보가 밝혀야 할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렇게 통과의례처럼 지나가는 요식행위로 받아들여졌던 그때, 주머니 속에서 송곳을 꺼내든 건 여권의 강기정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이었다. 모든 의원들이 그렇듯 강 의원도 대정부질문 전,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메일로 질문 요지를 담은 보도자료를 뿌렸다. 난 그날 오후에 강 의원의 보도자료 메일을 열어보았다. 별 거 없겠지만 그래도 내용을 ‘확인이라도 하고 지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열지도 않고 휴지통으로 들어갈 뻔 했던 보도자료에는 ‘펄 속의 낙지’ 같은 팩트가 펄떡거렸다. 이명박 후보가 자신이 만든 빌딩관리업체에 자식들을 직원으로 올려놓고 ‘월급’을 지급했다는 내용이었다. 큰딸 주연씨와 아들 시형씨가 서초동 영포빌딩을 관리하는 업체인 대명기업의 직원으로 등재돼, 큰딸은 2001년 8월부터 2006년 4월까지 매달 120만원을, 아들은 2007년 3월부터 11월까지 매달 250만원을 월급으로 받아간 사실이 건강보험 자료로 확인된 것이다. 건물 관리를 했다는 그 기간 중 큰딸은 미국에 1년 동안 체류했고 아들은 국제금융센터 인턴으로 근무했던 사실도 확인됐다. 이 후보가 자녀를 직원으로 허위등재한 사실이 ‘딱 걸린’ 것이다. 그렇게 자녀들에게 건너간 돈은 8800만원이었다. 엠비는 대체 왜 그랬던 걸까? 일단 세금 회피 의도가 짙었다. 자녀를 직원으로 허위등재해 인건비를 부풀리면 공제 비율이 높아져 법인으로서는 세금을 덜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에 대한 증여를 월급으로 위장하는 편법증여 성격도 있었다. 세금도 줄이고 증여도 하는, 그 누구도 상상못한 신종 탈법행위였다.

2007년 11월10일치 <한겨레> 1면
2007년 11월10일치 <한겨레> 1면
데스크에 먼저 보고하고 강 의원의 대정부질문을 받아쳤다. 기사는 1면 톱으로 잡혔다. 이명박 후보의 해명이 필요했다. 당시 이 후보의 ‘입’이었던 나경원 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경원 의원은 BBK 투자사기 등 엠비의 각종 의혹을 해명하는 공식 창구였다. 내가 이명박 후보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쓰면 나 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어 기계적인 반론을 듣는, 그런 사이였다. 선거기간 내내 나의 전화가 결코 반갑지 않았을 거다. 물론 그날도 그랬다.

“저 통합신당 출입하고 있는 김태규 기자라고 합니다. 강기정 의원 주장에 대한 해명이 필요할 거 같아서요.”

강 의원의 메가톤급 폭로를 짤막하게 전하고 해명을 요청했다. 그러나 나 대변인은 강 의원의 대정부질문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어, 저는 그거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아…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닌데. 힌트를 주면서 다시 한 번 해명을 요청하며 물었다.

“이게 탈세나 증여나 다 문제가 될 거 같은데…우선순위가 떨어지는 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명박 후보 쪽의 ‘성의 있는 답변’을 최대한 끌어내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렇게 해명을 받아서 기사를 완성했다. 초판 신문이 인쇄되기도 전인 그날 오후 5시19분에 인터넷으로 기사를 쐈다.

그때부터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의 반응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인터넷한겨레와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사람들은 댓글로 분노하기 시작했다.

“돈에 미쳐서 별 짓을 다했구만. 우리가 진짜 이런 인간을 우리 대표로 선출해야 되는 거여~”, “중소기업 3년차 월급 200만원도 못받는 젊은이가 이 나라에 넘치는데, 취업 못한 젊은이가 이 나라에 넘치는데. 명박씨 해도해도 너무합니다. 서글픕니다”라는 내용으로 이명박 후보의 부도덕함을 비판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한겨레’가 인터넷을 통해 1보를 터뜨리자 다른 언론들도 뒤늦게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나경원 대변인은 한나라당 출입기자를 통해 수정된 해명을 보내왔다. “상근직으로 근무한 것은 아니지만, 건물 관리에 일부 기여한 바가 있어 직원으로 등재했다”는 주장이었다. 건물 관리에 ‘일부 기여’라…이전보다는 성의를 보인 해명이었지만 누리꾼들은 “화장실 청소를 했는지, 전구를 갈았는지, 무엇을 해서 건물 관리에 일부 기여를 했는지 밝히라”, “대변인 말이 걸작이다. 이왕이면 자녀들에게 비정규직의 고단한 삶을 체험시키기 위해 근무시켰다고 해명하지”라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분노의 댓글’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기사가 노출된 다음날 오전 9시 기준으로 다음 포털에만 걸린 댓글이 1만6천개였다. 하루도 되지 않아 댓글 수가 1만개를 돌파하는 경우는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인터넷 민란’이라고 할 만했다. 엠비의 행태를 접한 성난 민심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됐다. 국세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이명박 탈세 의혹을 조사하라’는 글이 줄을 이었고 이를 주요뉴스로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를 비판하는 댓글도 넘쳐났다. 누리꾼들은 이 기사를 메인 화면에 노출하지 않은 네이버도 질타하며 ‘유령직원’을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결국 이명박 후보는 문제가 불거진 뒤 이틀 만인 2007년 11월11일 보도자료를 내고 “죄송스럽다”고 했다. BBK, 다스, 도곡동 땅 등 온갖 의혹도 꿋꿋이 부인하며 버텨내던 그가 처음으로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다. 그는 보도자료에서 “본인의 불찰”이라며 “꼼꼼히 챙기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세금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딸은 결혼도 했는데 별다른 직장이 없어 집안 건물관리나마 도우라고 했고, 생활비에 보탬이 되는 정도의 급여를 주었다. 다만 공무원인 남편을 따라 유학가는 동안 이 부분을 정리하지 못한 잘못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했다. 아들 시형씨의 경우 “유학을 다녀와 취직하려는 것을 선거 중이라 특정 직장에 근무하는 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 잠시 건물관리를 하며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끝까지 자녀들이 영포빌딩 관리 업무를 한 건 맞다고 주장한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쪽이 이 후보를 횡령·조세포탈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했지만 나경원 대변인은 “바쁜 후보를 대신해 가족들이 건물 관리를 일부 도와주기도 했다. 이를 두고 고발하겠다는 것은 이번 선거를 진흙탕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깔끔한 사과가 결코 아니었지만 엠비는 그렇게 또 한 번의 고비를 넘겼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2007년 9월6일 서울 송파구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예술인특별위원회 전국대회 도중 사회자 이상용씨의 농담에 목을 뒤로 젖힌 채 웃고 있다. 왼쪽은 임태희 비서실장, 오른쪽은 나경원 대변인.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2007년 9월6일 서울 송파구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예술인특별위원회 전국대회 도중 사회자 이상용씨의 농담에 목을 뒤로 젖힌 채 웃고 있다. 왼쪽은 임태희 비서실장, 오른쪽은 나경원 대변인.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2007년 검찰, 한나라당 경선 앞두고 박근혜 편, 대선 앞두고는 이명박 편

2007년 8월13일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후보의 차명재산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이 “이 후보의 큰형 이상은씨가 갖고 있는 도곡동 땅의 지분은 이씨가 아닌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도곡동 땅의 실제 주인이 따로 있다는 얘기. 사실상 ‘엠비 것’이라는 판단을 돌려 말한 셈이었다.

서울 도곡동 땅은 엠비 은닉재산의 ‘핵’이다. 지금은 포스코 아파트가 들어서있는 4240㎡(1282평) 넓이의 이 땅은 1985년 엠비의 큰형 이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 명의로 매입됐다. 매입대금은 15억6천만원. 10년 뒤인 1995년 이 땅은 포스코개발에 매입가의 17배인 263억원에 팔렸다. 2개월 뒤 매각대금의 일부가 이상은·김재정씨가 공동대표로 있던 다스로 유입된다. 유상증자 명목으로 7억9200만원이 들어갔고 5년 뒤인 2000년에도 10억원이 다스 대표이사 명의의 가지급금 반제 형식으로 섞인다. 1987년 현대자동차 시트 납품업체로 설립된 다스(당시 대부기공)도 엠비가 현대건설 퇴임용으로 마련한 회사라는 얘기가 돌았다. 도곡동 땅 매각대금 일부가 다스의 자본금으로 들어가고 다스는 2000년 BBK에 190억원을 투자한다. 도곡동→다스→BBK로 연결되는 자금 흐름이 형성된 것이다. 엠비를 매개로 사돈관계가 된 16살 차이가 나는 두 남성(이상은·김재정)이 땅도 함께 사고 사업도 같이 하는 이례적 상황. 두 사람은 차명재산 관리인에 불과하고 실제 주인은 엠비라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 상황이었기에 1995년에 팔린 도곡동 땅의 원래 주인이 곧 다스의 주인이었다.

‘판도라의 상자’나 다름 없었던 도곡동 땅 문제는 의외로 김재정씨 쪽의 요청으로 검찰이 수사에 나선다. 2007년 7월, <경향신문>이 도곡동 땅 등의 차명재산 의혹을 보도하자 김재정씨가 고소한 것이다. 지만원씨도 다스의 실제 주인은 엠비라며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로 그를 고발했다. 참여정부의 인기가 추락한 상황에서 사실상 차기 대통령을 뽑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혈투를 벌였던 이명박과 박근혜의 싸움이 상호 고소·고발로 이어졌다. 검찰이 수사 결과 발표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었다.

2007년 7월2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장애인 비전 전진대회’에 참석한 이명박 경선 후보, 박근혜 경선후보(오른쪽부터)가 내려오는 종이꽃가루를 올려다 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07년 7월2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장애인 비전 전진대회’에 참석한 이명박 경선 후보, 박근혜 경선후보(오른쪽부터)가 내려오는 종이꽃가루를 올려다 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도곡동 땅과 다스의 주인이 엠비인지 검찰의 수사가 시작된 지 한 달 뒤 검찰은 중간수사 발표를 내놨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일주일 앞둔 2007년 8월13일이었다. 검찰은 최소한 도곡동땅 절반(이상은 명의)의 실제 주인이 따로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그날 갑자기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자처한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이상은씨가 1995년 서울 도곡동 땅을 판 뒤 자신의 지분 대가로 받은 돈 가운데 100억원을 금리가 낮은 채권간접투자상품 등에 10년 이상 묻어두면서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 차장검사는 또 “2002년 7월부터 올해 7월까지 매달 1천만~3천만원씩 15억여원을 97차례에 걸쳐 전액 현금으로 인출한 데 대해 이상은씨는 생활비 등으로 썼다고 주장하지만, 이 중 일부는 이상은씨가 해외에 있을 때 인출된 점 등을 고려하면 이상은씨 본인의 돈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매월 수천만원이 꼬리표가 남지 않는 현금으로 인출돼 실제 주인에게 건너갔을 강력한 정황이라는 얘기였다.

<세계일보> 1993년 3월27일치
<세계일보> 1993년 3월27일치
‘도곡동 땅은 엠비 것’이라는 결론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었다. 결정적 증거는 이미 1993년에 세상에 공개됐다. 그해 3월27일 <세계일보>는 ‘이명박 의원 150억대 땅 은닉’이라는 제목으로 “민자당 이명박 의원이 85년 현대건설 사장 재직 때 구입한 서울 도곡동의 시가 150억원 상당의 땅을 처남 명의로 은닉한 사실이 26일 밝혀져 이번 재산공개에서 고의로 누락시켰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경향신문>도 “이명박 의원이 85년 현대건설 사장 때 사들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시가 500억원어치 땅을 처남 명의로 해놓고 있어 자산의 소유사실을 고의로 감추려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신문의 보도는 당시 청와대와 민자당 재산공개진상파악특위의 내사 결과를 인용한 것이었다. 당시 재산은닉이 문제가 되자 이명박 의원은 서울 서초동 땅(184억9000만원)만 추가해 247억2000만원으로 수정 신고했다. 끝까지 재산공개 대상에서 누락시켰던 도곡동 땅은 엠비 은닉재산의 종잣돈이 된다.

도곡동 땅의 이런 연혁을 감안하면, 2007년 8월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는 ‘새로운 팩트’가 아니었다. 엠비 은닉재산의 원천인 도곡동 땅의 주인이 “이상은씨가 아닌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는 검찰의 완곡한 표현에 엠비 쪽이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자 당시 대검의 한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둔 시점에서 그 땅이 이 후보 것이라고 검찰이 발표할 수 있었겠냐. 일종의 (후보로서의) 예우를 해 준 거다. 그 정도 얘기를 했으면 언론에서 알아서 판단을 해야 한다.”

검찰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당한 이명박 캠프는 “경선에 개입하려는 정치공작의 의도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격하게 반발했다.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에 갑자기 감행됐기 때문이다.

사실상 ‘도곡동 땅은 이명박 것’이라는 검찰의 선언에도 ‘대세 이명박’은 2007년 8월20일 경선에서 승리했다. 대통령 당선을 향한 ‘8부 능선’을 넘어 ‘대관식’을 준비하던 엠비는 느긋한 마음으로 검찰의 최종수사 발표를 기다렸다. 중간수사 결과만 발표했던 검찰은 도곡동 땅과 다스의 실소유주가 누군지, BBK 주가조작에 엠비가 관여돼있는 건지 결론을 내놔야 했다.

검찰은 대선을 2주일 앞둔 2007년 12월5일 그 답을 내놨다. 난 그날 아침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향했고 6층 브리핑룸에서 검찰이 배포한 두툼한 발표자료를 받아 수사결과를 훑어나갔다. 도곡동 땅과 한몸으로 얽혀있는 다스의 실소유주가 엠비라는 의혹에 대해 “이명박 후보의 것이라고 볼 만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고 밝힌 검찰의 결론이 눈에 들어왔다. 도곡동 땅이 ‘엠비 소유’라고 사실상 밝혀놓고 도곡동 땅과 한 세트인 다스는 엠비 것이 아니라고 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 결론이었다. 그 자리에서 물었다.

“이상은씨 도곡동 땅 매각대금 17억원이 다스로 들어간 게 확인됐고, ‘이상은씨 도곡동 땅 지분은 3자의 것으로 보인다’는 게 검찰의 8월 수사발표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다스가 이명박 후보의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요. 8월 수사 결과와 모순되는 것 아닌가요?”

수사결과를 발표했던 김홍일 3차장 검사는 “오늘 말한 것은 ‘다스가 이 후보의 소유가 아닌 것 같다’가 아니라 ‘다스가 이 후보의 소유라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다스가 이명박 것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이명박 것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해명. 중간수사 발표와 아귀가 맞지 않는 결론에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보다 못한 최재경 특수1부장이 직접 설명에 나섰다. 최 부장검사는 검사 9명을 데리고 엠비 관련 의혹 수사를 총괄한 주임검사였다.

“우리도 김 기자처럼 같은 의심을 가지고 어제 저녁까지 관계자 조사하고 계좌추적도 했습니다. 이상은씨 명의로 다스에 들어왔다가 가지급금 반제로 들어간 10억원은 채무니까 의미가 없다고 봤고요. 다만 95년 8월 유상증자는 기업 소유권 문제니까 이 부분 상당한 의심을 가지고 열심히 수사했습니다. 우리도 의심스럽지 않다는 게 아니고 증거가 안 나옵니다. 그래서 그 소유주가 이명박씨라고 볼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다스가 “이명박 것이 아니”라고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명박 것이라고는 ‘더더욱 말 못하겠다’는 취지의 답변이었다. 한 기자가 추가로 물었다. “다스가 이명박 후보의 소유라고 볼 ‘뚜렷한’ 증거가 없다고 했는데 ‘뚜렷한’이라는 수식어의 의미는 뭔가요?”

“그러면 ‘증거가 없다’로 수정하겠습니다. 통상적인 수식어입니다.”(김홍일 3차장검사)

2007년 12월5일, 서울중앙지검이 엠비 관련 의혹을 무혐의 처분한다고 밝히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07년 12월5일, 서울중앙지검이 엠비 관련 의혹을 무혐의 처분한다고 밝히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검찰의 최종 수사발표의 요지는, 도곡동 땅의 실제 주인은 찾지 못했고 다스의 소유주는 엠비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2주 뒤 대선을 치를 엠비의 모든 혐의를 깨끗하게 씻어준 결론이었다. 이명박 후보는 검찰의 ‘현명한’ 결정에 “늦었지만 진실이 밝혀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기뻐했다. 그리고 이틀 뒤 방송연설에서 “내외가 살 집 한 채만 남기고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권이나 다름없는 정권 획득을 위한 엠비의 굳히기였다.

■ “오해 사지 않으려 사람 안 만난다”던 정호영 특검…그는 그날밤 누굴 만났을까

2007년 12월19일 이명박 후보는 48.7%를 득표하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인’을 향한 수사는 끝난 게 아니었다. 대선 이틀 전 한나라당이 불참한 가운데 이명박 후보의 BBK, 다스, 도곡동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특검법이 본회의에서 통과됐기 때문이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취임이 예정된 당선인에 대한 수사였다.

고법원장 출신 정호영 변호사가 특검으로 임명돼 수사를 시작했다. 난 이명박검증팀 취재에 이어 특검 수사 취재도 맡게 됐다. 2008년 2월1일 기자간담회에서 정호영 특검과 얼굴을 맞댔다. “도곡동 땅이 누구 것인지를 밝히는 것이 수사 목표”라고 말했다.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외부사람도 만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추가 수사를 통해 도곡동 땅의 실제 주인이 이명박임을 확인하겠다는 얘기인가. 검찰이 ‘증거 부족’을 이유로 도곡동 땅 주인을 못 찾았다고 했으니, 정호영 특검이 추가 수사를 통해 도곡동 땅만이라도 실제 주인을 찾아내려고 하는 줄 알았다.

수사기간 만료 일주일 전 쯤, 정 특검이 살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취재원 집 앞에서 기다리는 이른바 ‘뻗치기’는 기본 취재 과정이다. 그날 특별히 확인해야 할 현안이 있는 건 아니었다. 곧 발표될 수사결과가 어느 방향으로 나올지 귀동냥이라도 할 요량이었다. 정 특검은 항상 일정한 시각에 퇴근했고 그날도 그랬다. 먼저 앞서 그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저녁 7시쯤 서울 역삼동 특검 사무실을 떠난 그는 8시, 9시가 지나도 집에 오지 않았다. 그가 타던 검은색 중형차를 기다리던 난 10시쯤 철수했다.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외부사람도 만나지 않고 있다”던 그는 그날 밤 대체 누굴 만났던 걸까.

2008년 2월21일 오전 서울 역삼동 특별검사 사무실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관련된 의혹을 수사했던 정호영 특검이 모든 의혹이 무혐의로 밝혀졌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2008년 2월21일 오전 서울 역삼동 특별검사 사무실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관련된 의혹을 수사했던 정호영 특검이 모든 의혹이 무혐의로 밝혀졌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결국 특검팀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4일 전인 2008년 2월21일, 엠비 관련 의혹을 모두 무혐의 처분하는 화끈한 결론을 내놓았다. 심지어 검찰이 ‘제3자의 것’이라고 표현했던 도곡동 땅도 이상은 것이라고 발표했다. 5년 동안 매달 1천만~3천만원씩을 인출한 영포빌딩 관리인 이병모씨의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한 결과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직장인 영포빌딩 근처에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댔다. 실제 땅주인에게 돈을 상납하려면 영포빌딩을 벗어나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으니 다른 주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병모씨의 휴대전화 위치 추적 기간은 2006년 8월부터 고작 1년치에 불과했다. 2007년 8월 중간수사 발표에서 검찰은 매달 현금으로 인출된 수천만원의 사용처에 큰 의심을 품었지만 특검은 “이상은씨가 다스 회장으로서 접대비를 주로 현금으로 사용했고 유흥비, 외국출장 비용, 아들 사업비용, 운전기사 용돈을 모두 현금으로 매달 3천만원씩을 썼다”고 밝혔다. 이상은씨의 비정상적인 ‘현금 소비 성향’을 인정한 것이다.

심지어 특검팀은 1985년 이상은씨가 젖소를 팔고 두부를 수출해 도곡동 땅 매입 자금 7억8천만원을 마련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였다. 이상은씨가 특검팀에 낸 소명서에는 1985년 9월 젖소 가격이 한 마리에 130만~240만원으로 기록돼있었고 특검팀은 “이런 가격으로 100여마리를 팔아 2억5천만원 상당의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소명도 허점투성이였다. 특검의 수사결과 발표 전 이상은씨의 주장이 언론 보도로 알려지자 한 독자는 이 해명이 허위일 수 있다며 1985년 4월25일 <동아일보> 기사를 전자우편으로 제보했다. “충북 청원군의 한 농부가 2년 전에 126만원을 주고 암송아지를 샀는데, 가격이 70만원으로 폭락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었다. 일문일답 과정에서 이 기사를 거론하며 이상은씨의 소명을 믿을 수 있냐고 물었다. 특검팀 파견자였던 차맹기 검사는 “이상은씨가 도곡동 땅을 산 시점은 1985년 5월인데 소는 그 이전에 팔았다”고 답했다. 이상은씨가 실제로 소를 언제 팔았는지 그때 시세는 얼마였는지 입증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런 엉성한 수사결과를 근거로 특검은 도곡동 땅의 실제 주인은 엠비가 아닌 이상은씨라고 판정했다. 특검 수사를 거치면서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되레 이명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식으로 수사결과가 개악된 셈이었다.

■ 2012년에 확인된 특검팀의 ‘다스 비자금 은폐’…그러나 아무일도 없었다

나에게 ‘엠비 추적’은 열패감과 무력감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한겨레>의 검증·추적 보도에도 이명박은 대통령이 됐고 최고권력자로서 임기를 수행했다. 거악에 맞서 언론이 가진 ’취재’라는 무기는 한없이 무디고 나약할 뿐이었다. ‘취재하면 뭐해…’ 가급적 엠비와 관련된 옛 기억을 밀어내고 잊고 싶었다. 그러나 엠비의 임기가 막바지에 달한 2012년 11월, 엠비 의혹을 수사했던 정호영 특검팀이 다스에서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이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정호영 특검팀은 2008년 2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다스에서 비자금이 조성된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비자금 조성 책임자를 찾아내 기소하지도 않았다. 특검은 수사 과정에서 다 밝혀내지 못한 부분을 검찰에 이첩해 수사하도록 요청해야 했지만 이런 조처도 없었다. 비자금의 주인을 찾으면 다스의 실제 주인이 드러날까봐 범죄 혐의를 꽁꽁 숨겨놓은 게 분명했다. 기사에 반영하기 위한 정 특검의 해명이 필요했다. 전화통화는 당연히 되지 않았고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그는 며칠째 출근하지 않았다. 4년 전 방문했던 그의 집을 이번엔 아침에 찾아갔다. 아파트 벨을 눌렀다. 안에서 중년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터폰으로 “정호영 변호사님께 다스 수사 관련해 여쭐 게 있다”고 말했더니 그의 딸은 “아버지 집에 안 계신다”고 답했다. 아파트 문 앞에서 10여분 서있었을까…경비원 아저씨가 올라오셔서 퇴거를 요청했다. 기사에는 “<한겨레>는 정호영 변호사의 해명을 듣기 위해 최근 며칠 동안 사무실과 집을 찾아가고 전화를 했으나 접촉이 되지 않았다”고 적었다. 특검이 사건을 고의로 은폐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도했지만 역시 반향은 없었다. 한 달 뒤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촛불이 박근혜를 끌어내리고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를 통해 이명박의 범죄가 드디어 확인됐다. 대법원 확정판결 뒤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는 엠비의 발언이 참 인상깊었다. 새로 밝혀질 진실이라는 게 이명박의 추가 범죄? 아니면 그를 도왔던 조력자들의 범죄? ‘사필귀정’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늦었다. 13년 전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무력감과 자괴감. 구치소로 가는 엠비와 함께 떠나보내고 싶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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