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대법원, 감사원, 헌법재판소, 법제처 종합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취임한 지 한 달 만인 올해 2월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 사건의 공소장 비공개를 결정했다.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 백원우 민정비서관 등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2018년 지방선거에서 문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였던 송철호 당시 울산시장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당내 경선 과정에 개입하거나 상대 후보에 대한 하명수사를 벌였다는 게 검찰의 공소사실이었다. 법무부는 이 사건의 공소사실 요지만 공개하면서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사건관계인의 명예 및 사생활 보호, 수사 진행 중인 피의자에 대한 피의사실 공표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평소 검찰의 여론몰이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법조인들도 ‘왜 하필 지금부터냐’고 고개를 갸웃했지만 법무부는 흔들리지 않았다. 당시 법무부 관계자가 내놓은 해명은 “당장은 오해를 사더라도 지금부터라도 피의자·피고인의 인권을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추 장관의 최근 국정감사 발언과 공개감찰 지시는 불과 8개월 전의 ‘오해를 감수한 결단’을 까맣게 잊은 것처럼 보인다. 추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종합국정감사에서 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검사 술자리 접대’ 진술 내용을 자세히 공개하며 “감찰 결과 사실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의 해명처럼 “감찰 조사 결과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수사 의뢰를 했다는 뜻”이라고 선해하기에도 지나치게 단정적이다. ‘룸살롱 접대’ 의혹을 받는 검사의 파견기관을 공개해 사실상 ‘문제의 검사’를 특정하기도 했다. “일부 특수(부) 라인이 사건을 밀어주고 봐주거나 매장시키거나 뇌물성 대가를 주고받고 한 게 (라임) 사건의 본질”이라는 추 장관의 발언은 서울남부지검에서 진행 중인 수사의 결론을 정해준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의 옵티머스 수사 의뢰 관련 감찰 지시도 부정확한 낙인찍기로 읽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뜬금없이 공개감찰 지시서에 등장한 게 그렇다. 옵티머스의 고문이었던 채 전 총장은 이 회사 내부문건에서 물류단지 추진에 도움을 줬다는 내용이 등장하지만, 서울중앙지검의 무혐의 처분과의 연관성은 이제껏 드러난 바가 없다. 그런데 추 장관은 “전직 검찰총장 등 유력인사들의 로비에 의한 사건 무마”를 감찰 대상으로 지목했다. 검찰을 겨냥해 이런저런 의혹을 덧붙이려다 보니 별개로 진행된 사안까지 ‘뒤섞은’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채 전 총장이 소속된 법무법인은 곧바로 “유감스럽게도 서울중앙지검의 사건처리와 어떠한 관련성이 있는 것처럼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추 장관이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내세웠던 ‘사건관계인의 명예 및 사생활 보호, 수사 중인 피의자에 대한 피의사실 공표 가능성’이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대결 속에서 본인의 입으로 허물어지고 있다. 검찰의 ‘조국 수사’ 뒤 피의사실 공표를 엄격하게 금지한 ‘형사사건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도 사안에 따라 선택적으로 지켜지는 모양새다. 상황에 따라 바뀌는 원칙은 원칙이 아니고, 피아를 구분해 적용되는 검찰개혁은 검찰개혁이 아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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