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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어쭈 째려보네? 까불지 마, 깻잎!

등록 2020-10-10 16:10수정 2020-10-10 16:20

[토요판] 이란주의 할 말 많은 눈동자
⑩깻잎 따는 미니어 1

캄보디아 출신 농업이주노동자
11시간 일하고 189만원 받았지만
고용연장 약점 잡아 임금 깎아버려
3년4개월 일한 농장 떠난 사연

고용허가제 허점 이용한 사장님
수백만원 체불임금 진정해도
화해만 강요하는 고용노동청
그가 깻잎 처음 먹어본 이야기
일러스트레이션 순심
일러스트레이션 순심

캄보디아 여성 미니어(가명, 27살)는 같이 일하던 동생 보파(가명, 20살)와 함께, 경남 밀양 농장을 떠나 경기도 안산의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지구인의정류장’에 도착했다. 정류장은 지구인이 잠시 쉬는 곳이요, 다른 일터로 옮겨가기 위해 준비하는 곳이다. 미니어는 정류장에서 김 선생님(한국)을 만나 냉혹한 세상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고, 폰(가명, 29살, 캄보디아)을 만나 미래를 준비하는 눈이 넓어진다.

궁지에 몰아넣고 160만원 주겠다니

“이 들깻가루 넣어 먹으면 더 맛있어요.”

“들깨요?”

“이게 들깨예요. 깻잎을 3년 넘게 딴 사람이 들깨가 뭔지 몰라요? 이 들깨가 깻잎 열매잖아요.”

“몰라요….”

김 선생님이 조그만 통을 열어 거뭇한 가루를 보여주더니 한 숟가락 떠서 자기 순댓국에 넣었어요. 내게도 넣어보라고 통을 밀어줬지만 나는 내키지 않았어요.

“그럼 깻잎은 먹어봤어요?”

“아니요. 한국 사람들이 삼겹살 싸 먹는다는 말은 들었어요.”

“너도 깻잎 안 먹어봤니? 하긴 나도 그래. 나도 얼갈이, 시금치를 몇 년이나 키우고 뽑았지만 한 번도 안 먹어봤어. 어떻게 먹는 건지 알지도 못하고.”

폰 언니가 말했어요. 폰 언니, 김 선생님과 함께 순댓국을 먹으면서 나눴던 대화예요. 만날 붙들고 씨름하던 그 깻잎에서 이 깨가 생긴다고요? 신기해요.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깻잎을 먹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먹는 것은 시장에서 캄보디아 채소를 사 왔어요. 한국 사람과 같이 밥 먹은 것도, 사장님과 같이 먹은 거 빼고는 순댓국 식사가 처음이었어요.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집은 어떻게 꾸미고 사는지, 무엇을 먹는지 궁금했지만 그런 것을 알려줄 한국 사람은 만나지 못했어요. 궁금한 것은 그저 궁금하다 말았어요. 일 못한다고 깻잎 더 따라고 화내는 사장님한테 그런 걸 물어볼 수는 없잖아요.

나는 같이 일하던 동생 보파와 함께 밀양 농장을 떠나 안산의 쉼터에서 지내고 있어요. 쉼터는 크메르(캄보디아)노동권협회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우리같이 일을 그만둬서 잠잘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안전한 휴식을 주는 곳이죠. 보파와 나는 여기서 지내며 ‘지구인의정류장’에서 우리 문제를 상담했어요. 정류장은 페이스북을 통해서 알게 됐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노동 정보를 캄보디아어로 설명해주고,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상의할 수 있어서 좋아요. 한국인인 김 선생님은 캄보디아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해 일부러 캄보디아어를 배웠다고 들었어요.

밀양 농장을 생각하면 마음이 좀 안 좋아요. 2017년 4월부터 올해 8월 중순까지 3년4개월이나 일한 농장인데, 마지막에 안 좋게 헤어지고 나와서 속상하고 슬퍼요. 3년4개월 동안 참 별일이 다 있었는데, 그 일을 다 이야기하자면 숨 가쁠 테니 작년 12월부터 있었던 일만 이야기할게요. 나는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 빼고 매일 11시간씩 일하고 189만원을 받았어요. 매월 노동 시간이 평균 290시간가량이니 최저임금 적용하면 받아야 할 월급이 250만원 정도죠. 그런데 189만원만 받았으니 매달 60만원가량을 덜 받은 거예요.

최악의 상황은 올해 3월부터 시작됐어요. 3월은 내 3년 계약이 끝나고 새 계약이 시작된 시점이었어요. 고용허가제 노동자는 3년 동안 일하기로 계약하고 오는데, 일하던 회사와 계약을 연장하면 1년10개월 비자를 더 받을 수 있어요. 만약 중간에 회사를 옮겼다면, 계약만료일까지 근무기간이 1개월 이상인 경우에만 계약 연장을 인정받아 비자를 더 받을 수 있대요. 왜 이렇게 복잡한지 모르겠지만 암튼 그렇대요. 그런데 계약을 연장하자던 사장님은 계약만료일을 한 달도 안 남긴 상태에서 갑자기 말을 바꿨어요. 내가 일을 못해서 연장을 안 해주겠대요. 급하게 그만두고 다른 농장을 찾더라도 그 1개월 규정 때문에 비자를 더 받을 방법은 없는 시점이었어요. 그렇게 나를 궁지에 몰아넣은 사장님은 새로운 제안을 했어요. 월 160만원에 일을 하겠느냐고, 하겠다면 계약을 연장해 주겠다고요. 만약 받아들이지 않으면 꼼짝없이 캄보디아로 돌아가야 하는 처지예요. 달리 방법이 없어서 눈물을 삼키며 그러마고 했어요. 160만원에서 기숙사비 20만원을 제하니 140만원,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건강보험료 12만원까지 빼니 128만원이 남았어요. 한 달에 겨우 이틀 쉬고 매일 11시간씩 일해서 내 손에 쥐는 돈은 고작 128만원. 작년 4월에 한국에 온 보파까지 월급이 똑같이 줄어들었어요. 우리는 3월부터 8월 중순까지 6개월간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일했어요.

회사를 옮길 자유만 있었다면…

시급으로 수당을 계산하려면 일한 시간을 입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우리는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했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마련하려고 여러 방법을 생각해 봤어요. 일을 시작하고 마치는 시간을 달력에 매일 적었어요. 이걸 자료로 내밀어도 네 마음대로 쓴 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죠. 일을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깻잎 밭에서 시계가 보이도록 사진 찍었어요. 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들 말을 들으니, 카드를 넣으면 출퇴근 시간을 ‘철컥’ 하고 찍어주는 기계가 있대요. 농장에도 그런 것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는 사장님에게 월급을 제대로 계산해 달라는 의사를 침착하게 전달했어요. 물론 사장님은 펄쩍 뛰었어요. 꼼꼼하게 기록하고 사진 찍어 자료를 마련했어요. 그걸 기준으로 김 선생님과 같이 차근차근 계산했어요. 덜 받은 월급과 출국만기보험(퇴직적립금) 차액, 계약보다 더 빼앗긴 기숙사비까지 계산하니 2019년 12월부터 2020년 8월까지 더 받아야 할 돈이 900만원가량이나 됐어요. 그 숫자를 내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어요. 보파 역시 비슷한 금액이 나왔어요. 3년치를 다 계산하면 못 받은 돈이 2천만원이 훌쩍 넘을 듯싶어요. 그러나 실제 근무시간을 증명할 자료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포기했어요. 왜 이렇게 중요한 것을 아무도 미리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고용노동청과 고용센터에 임금체불과 근로계약 위반, 최저임금법 위반, 다른 농장으로 불법파견 보낸 것 등을 적어 진정서를 냈어요. 그 농장을 그만두고 싶으니 직권으로 사업장을 바꿔 달라고도 했어요.

만약 우리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옮길 권리가 있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참기만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대요. 법이 그렇대요. 우리는 외국인이니까 사장님이 그만둬도 좋다고 허락해줘야만 그만둘 수 있대요. 사장님을 사사건건 나쁘게 말하고 싶지 않지만, 이런 일도 있었어요. 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가 그만둘 때 사장님한테 100만원을 주고 허락 사인을 받았어요. 그래서 나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할 때 “100만원 줄 수 있어요”라고 했어요. 그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사장님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사장님은 단번에 거절했어요. “너 데려오는 데 돈 많이 들었어. 너는 100만원 갖고 안 돼.”

진정사건에 대해 조사한다고 고용노동청에 출석하래요. 상담소가 있는 경기도 안산에서 관할 고용노동지청이 있는 경남 양산까지 가야 해요. 나는 김 선생님, 보파와 함께 새벽에 쉼터를 나와 버스, 기차, 택시를 갈아타고 갔어요. 그 7시간은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한 시간이었어요. 고용노동청에 들어가니 미리 와서 근로감독관과 이야기 나누고 있던 사장님의 뒷모습이 보였어요. 등만 봐도 가슴이 철렁했어요. 근로감독관은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더니 우리더러 사장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눠 합의를 보래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요. 고용노동청은 법을 기준으로 일의 옳고 그름을 정리해 주는 곳 아닌가요? 서로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했더라면 진정 같은 거 하지도 않았을 텐데요. 고용노동청마저 우리를 구석으로 몰아세우는 느낌이었어요.

그럼 그렇지! 사장님과 나눈 것은 도저히 대화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사장님은 매서운 눈으로 쏘아보면서 나더러 자기 눈을 보래요. 우리를 죄인 다루듯 하며 화내고 소리쳤어요. 일도 못하는 것들이 돈만 더 달라고 한다, 하루에 몇 시간 일하든 관계없다, 깻잎을 하루 18박스씩 따면 189만원 줄 건데 그보다 못 따면 박스당 5천원씩 까야 한다, 그런 말 같지 않은 말을 한없이 쏟아냈어요. 깻잎이 약 1500장씩 들어가는 박스 18개, 즉 2만7천장을 따라는 건데, 깻잎에 구멍도 많고 해서 그 개수 채우기가 여간 힘들지 않아요. 구멍 난 잎을 따로 모으는 자루가 그득하단 말입니다. 우리는 애초 계약대로 ‘일한 시간’으로 계산해 달라는 거고, 사장님은 ‘박스’ 수로 계산하겠다고 억지 쓰는 것인데, 이게 합의가 될 일인가요.

사장님은 겁주고 으르더니 말을 돌려 나더러 또 같이 일하자고 했어요.

“야가 속이 꽉 찼습니다. 내가 힘들까봐 짐도 지가 다 들어요. 다른 아가 오면 새로 가르쳐야 하니 내가 욕봅니다. 내가 수족을 마음대로 못 하니 야가 필요합니다. 야가 우리 집에 다시 오면 200만원 줄 테니 우리 집에 보내주소. 만약 안 한다고 하면 출입국사무소에 풀어줄 생각이 없습니다.”

그 말을 통역해 주던 김 선생님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어요. 미안하지만 사장님, 나는 다시 돌아갈 마음이 전혀 없어요. 내가 그렇게 필요하면 처음부터 사람대접 좀 해주지 그랬어요. 몸이 불편한 사장님을 도와드리려 노력한 것을 알아주시니 그나마 고맙군요. 나는 농장에서 나오던 날을 다시 떠올렸어요. 8월 반달치 월급을 남겨두고 나오는 것인데도 사장님은 끝까지 치졸하게 굴었어요. 숙소 문을 잠그겠다며 빨리 짐을 빼라고 다그쳐서 급하게 가방을 꾸려 나오니, 기숙사비 20만씩을 당장 내놓으랍니다. “지금은 돈이 없어요” 하니 “그 짐 내려놓고 빨리 가서 찾아오라”고 숨넘어갈 듯 성화를 부려요. 어디 이길 재간이 있나요. 자전거를 타고 가서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돈을 뽑아다 사장님 손에 주고 나왔어요. 창고로나 쓸 농막을 기숙사라고 살게 하면서 20만원씩이나 갈취한 것에 대해서는 너무 치사해서 말도 안 했어요. 그렇게 사람도 아닌 듯 대우하더니 어떻게 다시 와서 일해 달라는 말을 할까요. 우리에게 돈을 주느니 차라리 변호사를 사겠다며 사장님이 고함치고 생떼를 부리는데도, 근로감독관은 여전히 대화로 풀어보래요. 자기는 역할을 다 했대요. 지치고 힘들었어요. 잠깐 쉬자고 한 사이 사장님은 멋대로 돌아가 버렸어요. 그 먼 길을 가서 아무 소득도 없이 돌아와야 하는 우리 처지가 더없이 딱했어요.

이런 맛이었구나. 깻잎 너는!

안산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전에 삼겹살을 먹었어요. 새벽부터 움직이느라 종일 굶었으니 허기지고 기진맥진했거든요. 삼겹살을 먹으러 식당에 가본 것도 처음이라 좀 신기했어요. 역대급 태풍이 막 지난 터라 그런지 겨우 서너 장씩 나온 상추, 깻잎이 시들시들했어요. 비닐하우스에서 지천으로 보던 깻잎이 이렇게 귀한 것이었구나. 나는 깻잎을 한 장 들고 가만히 들여다봤어요. 숨도 안 쉬고 깻잎을 따느라 손가락 마디가 붓고 저렸던 것을 생각하니 속이 쿡쿡 아팠어요. 그런데 순간, 깻잎 이 녀석이 눈에 힘을 주고 나를 잔뜩 째리지 않겠어요? 어쭈, 까불지 마, 깻잎! 나는 깻잎이 꼼짝 못하게 얼른 고기를 한 점 싸서 입에 넣고 꼭꼭 씹었어요. 입안에서 퍼지는 향이 독특했어요. 이런 맛이었구나. 깻잎 너는!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일꾼. 국경을 넘어와 새 삶을 꾸리고 있는 이주민들은 저마다 깊은 사연이 있다. 떠나온 사회와 살아내야 할 사회에 하고픈 말이 많지만 그 말은 발화되지 못한 채 눈동자에 잠기곤 한다. 그 이야기를 풀어내 당사자 시점으로 전한다. 4주에 한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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