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북구 각화주공아파트에 입주한 청년 활동가 김경한씨가 지난 6월 광주도시재생공동체센터에서 열린 ‘각화 주거재생 티에프(TF)’ 회의에 참석해 청년들이 계획 중인 공동체 사업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이야기브릿지’ 제공
사회에 막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 주거 문제는 넘기 힘든 벽이다. 높은 주거비 탓에 홀로서기조차 버겁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1인가구 사회초년생 김경한(27)씨도 그랬다. 매달 따박따박 나가는 월세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던 차에 솔깃한 얘기가 들려왔다. ‘빈집과 청년의 달콤한 동거’ 프로젝트에 참여할 청년 활동가를 모집한다는 소식이었다. 장기간 비어 있는 영구임대아파트를 무주택 청년에게 싼값에 임대해주고, 입주한 청년은 마을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활동에 참여하도록 하는 사업이었다. 저렴한 비용에 안정적인 주거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데다 ‘도시 재생’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 마음이 끌렸다.
마침 스토리텔링 교육단체 ‘이야기브릿지’를 이끌고 있던 터여서, 자신의 경험과 재능이 마을 만들기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브릿지’는 ‘세상의 이야기를 잇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모든 세대의 이야기에 가치를 부여해 콘텐츠로 만드는 일을 한다.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과 주변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 콘텐츠를 만들어보자고 동료들과 뜻을 모았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초 ‘이야기브릿지’ 동료 1명과 함께 광주시 북구 각화주공아파트에 입주했다. 이들을 포함해 모두 20명의 청년이 각화주공의 ‘달콤한 동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노인 비율이 60%가 넘는 아파트 단지에서 청년들은 낯선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청년들이 맨 먼저 한 일은 ‘마음의 벽’ 허물기였다. 주민들을 모시고 이야기 마당을 열고, 마을잔치도 벌였다. ‘이야기브릿지’는 전공을 살려 인근 초·중학교에서 방과후에 스토리텔링 교육을 진행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청년 입주자 회의를 열어 마을 공동체를 어떻게 일궈나갈지 머리를 맞댔다. 아파트 상가 리모델링 공사가 끝나면 커뮤니티 공간을 확보해 주민들에게 책 만들기 등의 생활강좌도 진행할 계획이다. 빈 상가는 청년들의 창업과 사회적 기업 입주 공간으로도 활용될 예정이다.
이런 ‘달콤한 동거’는 다양한 도움의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를 해주고 가전제품을 지원했다. 엘에이치의 위탁을 받아 영구임대주택을 관리하는 주택관리공단은 현장에서 입주 청년들과 손발을 맞추며 공동체 사업을 도왔다. 구청을 비롯한 행정조직, 사회적 경제 지원 조직인 사회적협동조합 ‘살림’, 인근에 있는 각화종합사회복지관 등도 힘을 보탰다. 입주 청년 대표를 맡고 있는 김경한씨는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마을 활성화’라는 목표를 향해 한 발씩 나아갈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이 있지만 주민들의 의견에 귀기울이며 침체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 활동을 펴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열린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 마을축제 ‘다시 가을, 우산동락 주민한마당’ 행사장에서 우산동 빛여울채 아파트에 입주한 청년 활동가들이 체험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광주 지역문제 해결 플랫폼’ 제공
■ 민관 협력으로 지역문제 해결
‘달콤한 동거’ 프로젝트는 여러 기관의 협업의 산물이다. 이 협업의 중심에 ‘지역문제 해결 플랫폼’이 있다. ‘지역문제 해결 플랫폼’은 지역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와 정보, 자원이 모이는 민관 협업 체계라 할 수 있다. 주민이 직접 지역의 문제를 발굴하고 정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과 함께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새로운 사회문제 해결 방식이다. 기존의 관 주도 방식에서 벗어나 시민이 주도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민관 협업을 통해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이 과정에서 공기업을 비롯한 공공기관의 역량과 자원이 활용된다. 행정안전부가 2018년 시범사업을 거쳐 지난해에 전국 6개 지역(광주·충북·대전·경남·대구·강원)에서 운영을 시작했다. 올해에는 전남과 충남이 추가로 선정돼 모두 8개 지역에서 민관 협업 플랫폼이 구축됐다.
‘달콤한 동거’ 프로젝트는 광주도시재생공동체센터가 ‘광주 지역문제 해결 플랫폼’에 영구임대주택 공동체 재생 시범사업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영구임대아파트의 빈집을 청년들의 주거 공간 및 활동 거점으로 지원하고, 입주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새로운 주민 공동체 활성화 모델을 구축하자는 제안이었다. 영구임대아파트 장기 공실 문제와 청년 주거난, 마을 슬럼화 등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자는 아이디어인 셈이다.
제안이 채택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들이 하나둘 합류했다. 엘에이치와 광주도시공사, 광주청년센터, 하남종합사회복지관 등이 ‘광주 지역문제 해결 플랫폼’을 통해 협업에 나섰다. 광주도시공사가 관리하는 광산구 우산빛여울채 아파트에서 지난해 9월 ‘달콤한 동거’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12월에는 각화주공아파트에도 청년들이 입주했다. 우산빛여울채의 리모델링 공사와 가전제품 지원은 광주시와 광주도시공사가 맡았다. 이민철 ‘광주 지역문제 해결 플랫폼’ 집행위원장은 “지역의 많은 기관이 지역문제 해결에 필요한 자원을 갖고 있는데, 그런 자원들이 필요한 곳에 연결되지 않는 게 문제”라며 “지역문제 해결 플랫폼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협업이 이뤄지도록 서로를 연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각화주공에 20가구, 우산빛여울채에 50가구의 청년 활동가들이 입주해 영구임대주택 공동체 활성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달콤한 동거’ 프로젝트는 새로운 방식으로 공동체 재생을 시도한 성공 사례로 꼽힌다. 영구임대아파트 장기 공실 문제는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여서 확산 가능성도 크다. 실제 대전과 대구 등 다른 지역에서도 벤치마킹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 지역문제 해결 플랫폼, 어떻게 운영되나
‘플랫폼’은 사회혁신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된 개념이다. 사회가 고도화하면서 정부 또는 시장 주도의 기존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런 문제들을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을 사회혁신이라고 일컫는다. 지역사회의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시민들이 문제 발굴부터 해결까지 전 과정을 주도하되, 여러 주체들이 협업을 통해 창의적인 해법을 찾는 방식이다. 시민 참여를 촉진하고 다양한 주체 간에 연결과 협동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려면 개방과 공유를 바탕으로 한 일상적인 협업 생태계가 필요하다. 이 협업 생태계가 바로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윤종화 ‘지역문제 해결 플랫폼’ 전국운영위원장은 “주민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의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를 발견하고 스스로 해결 방안을 찾는 모델을 구축해보자는 것이 이 사업의 취지”라며 “시민들의 참여와 공공 자원 연계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지역문제 해결 플랫폼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문제 해결 플랫폼’을 통한 문제 해결 절차는 의제 발굴에서 시작된다. 의제 발굴은 시민들이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를 플랫폼에 제안하는 것을 말한다. 플랫폼 누리집(www.socialchange.kr)의 문제은행에 직접 등록할 수도 있고, 8개 지역별로 꾸려진 추진위원회와 집행위원회 등이 주최하는 온·오프라인 모임을 통해서도 의제를 제안할 수 있다. 지역별 추진위원회는 지방자치단체, 혁신도시 공공기관, 지방공공기관, 연구기관,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들로 구성된다. 올해에는 8개 지역에서 481곳이 참여했다. 의제들이 제안되면 집행위원회가 심사를 거쳐 실행할 의제를 선정한다. 협업성, 주민 주도성, 창의성, 실현 가능성 등이 선정 기준이다. 실행 의제로 선정되면 플랫폼의 자원은행에 등록된 공공기관 등이 문제 해결을 지원한다. 문제 해결 방법을 검토하는 과정에서는 경험과 실행력을 갖춘 전문가들이 솔루션 워크숍 등을 통해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올해에는 8개 지역에서 지금까지 모두 92개의 실행 의제가 선정돼 민관이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관련된 의제가 다수 포함돼 있다.
김학홍 행정안전부 지역혁신정책관은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주민들에게 확실한 변화로 체감되고, 코로나 위기 등 재난 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문제 해결 사례가 많아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종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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