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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뉴스AS] 불법촬영 성범죄자들이 ‘최소 징역 4개월’ 두려워할까

등록 2020-10-03 04:59수정 2020-10-03 09:51

리셋·불꽃이 말하는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
“다수·상습범에 집중…‘불촬물’ 뿌리뽑기는 역부족”
“판사들, 어떻게 적용할지 지켜볼 것”
“뿌듯함은 아직…양형투쟁 끝나지 않았다”
대법원 전경. <한겨레> 자료 사진.
대법원 전경. <한겨레> 자료 사진.

지난 15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안을 발표했습니다. 디지털성범죄는 그동안 양형기준이 없어 판사의 들쭉날쭉한 판결과 솜방망이 처벌이 논란이 됐습니다. ‘양형투쟁’이라고 불릴 만큼 수많은 여성들이 디지털성범죄의 죗값에 걸맞은 양형기준을 만들라고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그 중심에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 단체인 ‘리셋’과 엔(n)번방 사건을 최초로 경찰에 신고한 ‘추적단 불꽃’이 있습니다. 최서희 ‘리셋’ 활동가와 ‘추적단 불꽃’의 ‘불’과 ‘단’ 두 사람에게 이번 양형기준안에 대한 평가와 소회를 들어봤습니다.

■ “노력했지만 실패했다”…불촬물, 지인능욕 엄벌해야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최서희 ‘리셋’ 활동가는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안에 대해 이렇게 한줄평을 했습니다. 양형위가 다수범과 상습범등 죄질이 불량한 이들을 엄정하게 처벌하겠다는 의지는 읽혔으나,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불법촬영물 범죄와 지인능욕(여성의 얼굴을 나체 등과 합성하는 성착취 범죄) 범죄에 대한 공포의 심각성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최서희 “대법원 양형위가 진짜로 디지털성범죄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범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건 불법촬영물입니다.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의 경우 감경될 경우 최소 형량이 4개월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범죄자들이 두려워 할 형량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불꽃’도 비슷한 지적을 했습니다. 이들은 양형기준안이 ‘눈속임을 한 것 같다’고 평했습니다.

‘불’ “대부분의 지인능욕 범죄에 적용되는 ‘통신매체 이용 음란행위’는 아예 원안에서 나아간 게 없이, 최소 형량이 4개월이더라고요. 텔레그램 성착취방을 추적하면서 가장 흔하게 본 범죄가 ‘지인능욕’인데, 이들이 가벼운 처벌을 받고 나와 더 잔혹한 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을 이 양형기준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겁니다.”

‘단’ “이번 양형기준안이 불법촬영물의 공포를 피부로 느끼는 여성들이나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진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조주빈이나 문형욱 같은 이들한테는 이 권고안이 적용이 안 되는데, 엔번방 사건, 박사방 사건 주범들에게만 초점을 맞춘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범행 가담에 참작할 사유’를 감경인자에 포함시킨 것에 대한 비판도 나왔습니다. 타인의 강요로 인해 범행에 가담했거나 단순 공모만 했을 경우, 경제적 형편 등 피고인의 범행 가담에 참작할 모든 사유를 판사가 감경요소로 결정할 재량권이 폭넓게 인정된 겁니다. 조주빈씨의 공범으로 기소된 ‘부따’ 강훈씨는 현재 재판에서 조씨의 협박에 의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텔레그램에서 엔번방 자료를 재유포하는 유료방을 운영한 닉네임 ‘쨈까츄’는 재판에서 “불우한 가정환경을 참작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웰컴투비디오의 운영자 손정우(24)씨는 과거 위장결혼을 하고 재판에서 “돌볼 가족이 있다”고 호소한 바 있습니다. 최 활동가는 “이들 개개인의 사정을 판사가 굽어 살펴줄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근절단체 ‘리셋’ 트위터 갈무리
디지털 성범죄 근절단체 ‘리셋’ 트위터 갈무리

■ “판사들, 권고안의 무게 제대로 느끼길”

이번 양형기준안은 오는 12월7일로 예정된 양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종의결이 되면 그 이후 기소된 사건부터 적용됩니다. 양형기준은 판사들이 판결에 참고할 수 있을 뿐 강제사항은 아닙니다. 다만 기준에서 벗어나는 판결을 내릴 경우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는 점에서 판결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리셋’과 ‘불꽃’은 이제 감시의 시선을 판사에게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최서희 “이번 양형기준안은 이제 우리 사회가 디지털성범죄를 범죄 유형별로 나눠 양형기준을 정할 정도로 아주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29년3개월’이라는 유례없는 양형기준을 책정했다는 사실을 판사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불’ “지난 6월부터 2달 동안 '리셋'과 진행했던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 설문조사에서는 ‘성인지감수성이 없는 판사에게는 사건을 맡겨선 안 된다’는 의견을 남긴 시민들도 많았습니다. 결국 양형기준보다 중요한 건, 판사들이 디지털성범죄에 대해 공부하고 성인지감수성을 높여야 한다는 겁니다.”

‘단’ “그동안 성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우리 사회에서 여성혐오 범죄가 해결되지 않는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판사들이 자신들의 판결로 인해 성범죄, 나아가 여성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데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길 바랍니다.”

‘리셋’과 ‘불꽃’은 지난 6월3일부터 8월20일까지 시민 7천50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설문조사’의 결과를 지난 8월27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전달했다. 트위터 갈무리
‘리셋’과 ‘불꽃’은 지난 6월3일부터 8월20일까지 시민 7천50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설문조사’의 결과를 지난 8월27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전달했다. 트위터 갈무리

■ “뿌듯해 하긴 일러” 투쟁은 계속된다

‘단’ “우리가 추적했던 텔레그램 성착취방에는 수십만명의 가해자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 반대편엔 이들을 강력처벌할 기준을 만들자고 양형기준 투쟁에 나선 수많은 여성들이 있었고요. 재판을 감시하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이번 양형기준안이 끝이 아니라 오는 12월에 올바른 양형기준이 최종 결정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활동을 앞으로도 이어갈 예정입니다.”

그래서 최근 ‘불꽃’은 양형기준안 기사에 누리꾼들이 단 댓글들을 분석하며 어떻게 하면 양형위에 시민들의 의견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최소형량을 더 높이라”는 의견들이 많은 가운데 “아동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조두순이 12년형을 받았는데, 디지털 성범죄가 29년형인 게 말이 되냐”며 디지털성범죄 가해자들이 형평성에 안 맞는 높은 형을 받을까봐 걱정하는 댓글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불꽃’의 ‘불’은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불’ “높은 형량이 무서우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됩니다. 가해자가 받을 형량을 왜 걱정하는 걸까요?”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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