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노동자들이 원청 사업장에서 벌이는 ‘파업 집회’는 적법하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업무방해·퇴거불응 등 혐의로 기소된 한국수자원공사의 시설관리 파견업체 직원 김아무개씨 등 5명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김씨 등이 속한 파견직 노동조합은 파견업체와 임금 단체협상이 결렬되고 노동위원회의 조정 절차도 성립되지 않자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2012년 6월 파업에 들어갔다. 이들은 집회 장소를 수자원공사 바깥(정문 앞)으로 신고했지만, 실제로는 근무지인 수자원공사 본관 건물 인근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수자원공사 쪽의 퇴거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다른 직원의 청소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김씨 등의 쟁의행위가 파견업체를 상대로 한 것인데도 파견업체가 아닌 수자원공사 사업장에서 이뤄져 적법한 쟁의행위가 될 수 없다며 김씨 등에게 150만~300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파견근로자들이 파견사업주를 상대로 임금인상 등을 촉구하기 위한 적법한 쟁의행위로 집회를 한 이상, 수자원공사 사업장 안에서 이뤄졌다는 사정만으로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항소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고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수자원공사 사업장은 김씨 등 수급인 소속 근로자들의 삶의 터전이 되는 곳이어서 쟁의행위의 주요 수단 중 하나인 파업이나 태업은 해당 사업장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며 “수자원공사는 비록 김씨 등과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지만 사업장을 근로 장소로 제공했으므로 그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쟁의행위로 일정 부분 법익이 침해되더라도 사회통념상 이를 용인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김씨 등을 변호한 신선아 변호사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실제 일하는 원청사업주의 사업장 안에서 노조활동, 나아가 집회 등의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라고 환영했다.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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