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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실검증 없이 사회적 매장…“사법체계안 성범죄 단죄 강화를”

등록 2020-09-08 20:53수정 2020-09-09 02:13

신상공개 ‘디지털교도소’ 논란 확산

성범죄자에 관대한 처벌 맞서 탄생
정의 내세워 혐의자들 ‘사적 응징’

공익 인정받은 ‘배드 파더스’와 달리
자의적 신상공개, 명예훼손 처벌 소지
사실 아닐 경우 회복 불가능한 피해

“국민 눈높이 맞는 신상정보 공개나
양형기준 상향 등 공론의 장 돼야”
디지털교도소 누리집 갈무리
디지털교도소 누리집 갈무리

성범죄자에 대한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을 대신해 가해자를 응징하겠다는 명분으로 형사처벌 여부와 무관하게 성범죄 혐의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해온 누리집 ‘디지털교도소’의 위법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신상 공개는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고 사실이 아닐 경우 회복될 수 없는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디지털교도소는 지난 6월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로 범죄자들은 점점 진화하며 레벨업을 거듭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악성 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을 직접 공개해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려 한다”며 누리집 문을 열었다. 활동을 시작한 직후에는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24)의 사진과 출신 학교 등을 공개했다. 세계 최대 규모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누리집을 운영하고도 징역 1년6개월형에 그친 사법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최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디지털성범죄 관련 1심 징역형 선고 1823건을 조사한 결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배포 등의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은 비율은 12%뿐이었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은 온라인상에 계속 떠도는 성착취물로 2차 피해를 겪는데도 가해자의 절대다수는 집행유예 등의 가벼운 처벌을 받고 있는 현실에, 디지털교도소는 신상 공개라는 자체 징벌을 기획한 셈이다.

그러나 성범죄자 신상 공개는 자칫 공개 대상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주기 때문에 현행 형사법 체계 안에서도 신중하게 활용되고 있다. 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범죄 예방 등 오직 공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경찰 신상공개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가능하도록 엄격히 제한된다. 심의위가 공개를 결정해도 공개 대상자가 행정소송을 낼 수 있는 불복 절차도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디지털교도소처럼 자의적인 성범죄 피의자 신상 공개는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소지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보통신망법에서는 ‘비방 목적’으로 사실을 적시하면, 그 내용의 진위와 상관없이 명예훼손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형법에서는 진실한 내용을 공익 목적으로 알린 경우에는 명예훼손으로 처벌하지 않지만 디지털교도소의 신상 공개가 이런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할지는 확실치 않다.

양육비 지급을 위한 ‘배드파더스’ 누리집은 공익 목적을 인정받은 사례다. 이혼 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인적사항을 공개한 배드파더스 관리자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지만 지난 1월 법원은 “다수의 부모와 자녀가 양육비를 받지 못해 고통받는 상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양육비 지급 촉구를 주된 목적으로 한 것으로, 공익을 위한 것”이라며 무죄 판단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양육비 지급 촉구를 목적으로 공익성을 중시한 배드파더스와 달리 디지털교도소는 범죄 예방 효과라는 취지를 상쇄할 만큼 폐해가 크고 충분한 검증 절차나 피해를 최소화할 장치도 부족해 공익성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보라미 변호사도 “사적 제재는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고 사실이 아닐 경우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례에서는 ‘국민이 알아야 할 공적 관심 사안으로, 여론 형성이나 공개 토론에 기여하는지’ 등을 고려해 명예훼손적 표현의 공익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피의자 인권을 고려한다는 이유로 신상 공개마저 제한돼 피해자를 구제할 공론의 장이 부족했다”며 “국민 눈높이에 맞는 신상 공개 제도나 양형기준 등을 촉구하는 공론의 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윤영 장필수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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