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최태섭의 어른의 게임
25. 절망과 친해지기
다크소울 시리즈는 ‘어렵기로 유명한’ 게임이다. 이는 이중적 의미인데 실제로 매우 어렵고, 또 그것이 게임의
유명세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사 프롬소프트웨어의 어려운 게임은 다크소울뿐만이 아니다. 로봇 전투 시뮬레이션 게임인 아머드코어 시리즈, 빅토리아 시대와 비슷한 배경에서 진행되는 블러드본, 일본 전국시대의 닌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세키로와 같은 게임들이 모두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이 게임들은 모두 극악의 난도를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게임성 때문에 많은 수의 열성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다크소울3’는 하고 싶지 않은 게임의 목록에 들어 있었다. 과거 언젠가 세일에 홀려 게임을 구매했다가, 게임 극초반에 포기한 뒤로는 더욱 그랬다. 이미 내 인생이 “베리 하드”(Very Hard)이거늘, 시련이 부족해서 이런 게임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코로나가 강요하는 ‘집콕’이 나의 어떤 부분을 망가뜨렸던 모양이다. 무언가에 홀린 듯 라이브러리에 잠들어 있던 다크소울3를 깔고 수십번의 죽음을 맞이한 뒤에, 나는 결국 이 게임의 엔딩을 보고야 말았다.
다크소울3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절망이다. 게임의 시작은 내 캐릭터가 무덤에서 깨어나는 장면이다. 모호하고 직접적으로 다뤄지지 않는 스토리를 따라가 보자면 주인공은 모종의 사명을 갖고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났다. 게임은 그 사명을 위해 주인공이 괴물들과 함정들, 타락한 영웅들과 과거의 왕들에 맞서 싸우는 여정을 그린다.
하지만 이 여정은 죽음으로 가득하고, 모든 난관을 극복한다고 해도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도 않다. 이 절망의 분위기는 음울하고 때론 음산한 음악과, 기괴하게 디자인된 괴물들, 날카로운 비명소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플레이어가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등장하는 붉은 대문자 “유 다이드”(YOU DIED)를 통해 전해진다.
이 게임은 정말 많이 죽는다. 다른 게임이라면 간단하게 무시해도 좋을 평범한 몬스터들도 한번에 둘 이상을 상대하다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유 다이드’를 보게 된다. 게다가 적들은 평범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골목길 모퉁이에서 튀어나오고, 위에서 떨어져 내리고, 좁은 길에 매복하고, 멀리서 화살과 마법을 날려대며 플레이어를 상대한다. 적뿐만 아니라 지형도 플레이어를 호시탐탐 노린다. 낭떠러지는 평지보다도 많고, 독기를 뿜어대는 늪지대와, 굴러오는 돌이나 부비트랩 같은 고전적인 함정도 있다. 기를 쓰고 나를 죽이려는 적대적인 세계를 돌파하는 방법은 죽음을 통해 교훈을 얻는 것뿐이다. 물론 알고 있다고 해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게임을 대체 왜 하는 거냐고. 나 역시 똑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의외로 단순한 이야기다. 이 게임은 한번만 플레이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가령 내가 처음으로 엔딩을 볼 때까지 걸린 시간은 40시간 정도다. 그런데 두번째는? 첫번째에 놓친 것들을 모두 챙기면서 플레이를 했는데도 절반이다. 내 캐릭터는 갖고 있던 장비와 능력을 그대로 가지고 다음번 플레이를 시작한다. 물론 적들도 더 강해졌기 때문에 여전히 ‘유 다이드’와의 만남을 피해 가긴 어렵지만, 이 적대적인 세계를 훨씬 더 여유롭게 헤쳐나갈 수 있다. 이 게임을 수없이 플레이한 이른바 ‘고인물’들은 게임의 버그나 허점도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그 결과 초보자가 첫번째 보스를 클리어하는 데 걸릴 시간 동안 고인물들은 엔딩을 본다(내가 본 가장 빠른 시간은 37분이었다).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 이들은 ‘한번도 안 죽고 클리어하기’, ‘댄싱게임용 패드로 플레이하기’, ‘1레벨로 클리어하기’ 같은 그야말로 변태적인 고행들을 사서 하기에 이른다. 이쯤 되면 어려움은 그 자체로 이 게임의 중심 서사가 되는 셈이다.
다크소울3는 실패가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 때문에 함정이나 괴물이 없더라도 삶이 여전히 더 어려운 것 같다.
사회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