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제정연대 회원들이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순회 차별금지법제정촉구 평등버스 출발 기자회견을 마친 뒤 평등버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들은 29일까지 전국 25개 도시를 순회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린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서울 송파구 사랑교회 교인인 ㄱ씨는 지난달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보육교사였던 ㄱ씨가 확진받은 뒤 어린이집이 잠시 폐쇄되자 학부모들은 “왜 교회 다니는 사람을 써서 우리에게 피해를 주냐”며 원장에게 항의했다. ㄱ씨는 결국 어린이집을 그만뒀다. 학부모들을 마주칠까 봐 집 밖에 나갈 수도 없었다. 이 경험은 그의 삶과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직장과 지역사회에서 전에 겪어보지 못한 차별을 겪으며 다른 이들이 겪어온 차별 경험에 공감하게 된 것이다.
ㄱ씨의 자녀인 시민단체 활동가 ‘쌔미’(30·이하 모두 활동명)는 17일 <한겨레>에 건넨 공개 편지에서 “제 어머니와 아버지는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믿던 기독교인이었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생각을 바꾸셨다”고 밝혔다. “전에는 이 이슈(차별금지법)로 연을 끊을 생각까지 들게 만들 만큼 완강한 부모님이셨지만 부당한 차별을 겪게 되면서 두 분 모두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쌔미는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이들을 향해 “차별금지법은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법이 아니라 여러분과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게 될지 모르는 부당한 차별을 막아줄 수 있는 법”이라고 호소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회원들이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순회 차별금지법제정촉구 평등버스 출발 기자회견을 마친 뒤 평등버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들은 29일까지 전국 25개 도시를 순회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린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쌔미의 가족처럼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바라는 이들이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이 법 제정의 취지를 홍보하기 위해 전국 순회에 나섰다. ‘평등버스’다. 인권단체들이 꾸린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의 평등버스는 이날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출발해 춘천·원주·대전·부산·제주 등 전국 25개 도시를 순회할 예정이다. 차제연은 “성소수자·청소년·이주노동자·난민 등 차별에 반대하고 정당한 인권을 요구하는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연대하고, 기자회견·선전전·문화제 등을 통해 평등법의 필요성에 대해 얘기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고 있는 만큼 방역지침도 철저히 지킬 계획이다. 버스 안 28개 좌석에 최대 16명만 앉게 해 ‘거리두기’ 원칙을 지키고, 기자회견 등에선 참가자 모두 명부를 적고 체온을 재 코로나19 의심 증상자와 접촉을 막기로 했다. 차제연 관계자는 “매년 1천여명 규모로 진행하던 ‘평등 행진’을 진행하는 대신 한번에 10명가량을 하루에 4~5차례 만나는 소규모 접촉 방식으로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출발에 앞서 오전 10시에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평등버스의 출발을 응원하는 이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혐오세력에게 훼손된 신촌역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광고’ 캠페인에 참여했던 활동가 ‘사과’(23)는 “신촌역 광고 훼손 사태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평등과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차별금지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뒤 차제연 활동가 등 14명은 “국회는 평등에 합류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평등버스에 올랐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