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 등이 지난해 12월1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노조 와해 사건 선고 공판 뒤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삼성전자서비스 노조를 와해한 혐의를 받던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에게 면죄부를 준 항소심 재판부는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 파견’ 혐의에도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는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어서 서비스업 불법 파견의 기준을 유연하게 제시한 전향적 판단을 무력화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1998년 10월 삼성전자가 만든 전자제품의 수리·판매·유지보수를 위해 창립됐습니다. 전국 100여개의 지역 수리 협력업체와 해마다 형식적인 도급 계약을 맺은 뒤 협력업체 수리 기사들에게 전자제품 수리 업무를 맡겼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서울∙경인 등 지사 7곳을 통해 기사들을 지휘·감독했습니다. 8천명에 이르는 협력업체 기사들은 삼성전자서비스 이름이 붙은 근무복을 입고 전국의 서비스센터에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2018년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를 수사하던 중 삼성전자서비스가 고용노동부 장관 허가 없이 불법 파견을 했다는 혐의를 입증할 주요 문건들이 무더기로 발견됐습니다. 파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대표는 법정에서 “적법한 도급관계이지 근로자 파견 관계가 아니다”라고 맞섰습니다. 수시 근로감독 결과 “위장도급이나 불법파견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고용노동부의 발표와 협력업체 기사들을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로 볼 수 없다는 하급심 소송 결과도 그 근거였습니다.
먼저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 기사들이 근로자 파견 관계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려면 △삼성전자서비스가 기사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기사가 삼성전자서비스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는지 △협력업체가 기사 선발과 인원수, 작업∙휴게시간 등에 대한 결정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기사 업무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업무와 구별되는지 △협력업체가 계약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췄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1심 재판부는 “협력업체는 사실상 삼성전자서비스의 하부조직처럼 운영돼 실질적인 독립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근로자 파견 관계로 봐야 한다”며 불법 파견을 인정했습니다. 2013년 삼성 불법 파견 논란이 처음 제기된 뒤 법원이 이를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0일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배준현)는 “협력업체를 하부조직처럼 운영했거나 기사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지휘·명령을 했음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파견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수사를 통해 확인된 사실관계 앞에서 1심과 2심은 해석을 달리 했습니다. 1심은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에 제공한 전산시스템을 “삼성전자서비스가 기사들에게 직접 업무를 부여하고 지위∙명령한다고 볼 수 있는 중요한 징표”라고 꼽았습니다. 기사들은 이 전산시스템으로 업무 매뉴얼도 제공받고, 실제 업무를 배당받아 수리를 마친 뒤 처리 결과를 입력했습니다. 하지만 항소심은 “전산시스템을 제공한 것은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방안의 하나로 협력업체 지원을 위한 것으로 보일 뿐”이라고 일축했습니다. 협력업체를 위한 ‘선의의 서비스’이지 통제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판단이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실적에 따라 협력업체를 평가해 인센티브를 주거나 재계약 심사 대상으로 삼은 사실은 1·2심 모두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성과가 부진한 업체에 개선을 독려하거나 필요한 지시를 했고 기사들도 이런 지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업무 위탁 범위 내에서 합의하에 정한 최소 품질 수준을 유지하도록 한 계약상의 의무사항을 준수할 것을 요구한 것”이라며 파견이 아닌 ‘위탁계약’ 관계에 따른 영향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또 협력업체 기사들이 직영센터 기사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 않고 서로 업무도 달라 삼성전자서비스 사업에 편입됐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이는 ‘서비스업의 업무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1심 판단과도 충돌하는 부분입니다. 1심 재판부는 “원고용주(직영센터) 노동자와 제삼자(협력업체) 노동자의 업무가 구별되는지를 판단 요소로 삼는 것은 자동차 부품 생산 등 제조업 공정이나 호텔 청소, 관리업 등 같은 공간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에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제조업 사내 하청 노동자들과 달리 주로 외근 현장에서 각자의 장비를 쓰며 일하는 서비스업의 업무 특성을 고려해서 불법 파견 여부를 따져야 한다는 전향적인 논리였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이어 “직영센터와 협력업체 기사들이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 않고 직영센터는 규모상 협력업체와 큰 차이가 있어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근로자파견 관계를 부정할 만한 요소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조이현주 변호사는 “서비스업의 특성과 전산시스템을 통한 지휘·명령을 이해하고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과정에서 항소심 판단에 오류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습니다.
조윤영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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