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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뉴스AS] 공연비 체불로 소송전 비화된 ‘의열단 기념사업’…이면엔 ‘김원봉 이념논란’

등록 2020-08-13 04:59수정 2022-08-18 15:51

[뉴스AS] 극단 밀양, 의열단 100돌 맞아 지난해 기념공연
여야 정치인 기념사업추진위 이름올리고
정부 관계자들도 100주년 기념식 관여했지만 예산은 ‘0원’
의열단장 김원봉 두고 이념공세 속 정부는 기념사업 방관
사업 주최쪽, 정부 지원 요청 좌절되자 공연비 체불
극단 밀양 배우들이 독립뮤지컬 의열단 아리랑을 선보이고 있다. 의열단 100주년 기념 사업 추진위원회 누리집.
극단 밀양 배우들이 독립뮤지컬 의열단 아리랑을 선보이고 있다. 의열단 100주년 기념 사업 추진위원회 누리집.

항일무장투쟁단체 의열단의 1호 투사 박재혁(1895~1921)은 1920년 9월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 슈헤이를 향해 폭탄을 던졌습니다. 이듬해 3월 박재혁 의사는 사형을 선고받지만 이 사건은 무력항쟁 방식의 독립운동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는 투옥된 뒤 끼니를 거부하고 스물 여섯살의 나이에 옥사합니다. 100년이 지난 올해 한 극단이 그의 삶을 연극 무대에서 되살리려 했지만 무산될 고비에 놓였습니다. 극단이 파산 기로에 섰기 때문입니다. 주로 독립운동가의 삶을 공연해온 극단 ‘밀양’은 지난해 ‘의열단 100주년 기념 뮤지컬’을 공연했지만 3억원가량의 공연비를 받지 못해 해체 위기라고 합니다. 공연할 때마다 객석이 가득차고 공연장 앞엔 명사들의 화환이 가득했던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한겨레>가 짚어봤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지난해 민간단체와 정부에선 각종 기념사업이 봇물처럼 쏟아졌습니다. 일제와 친일파가 가장 두려워한 독립운동단체 의열단도 창단 100주년을 맞았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한 ‘의열단 100주년 기념 사업 추진위원회’(추진위)가 민간 차원에서 꾸려졌습니다. 함세웅 신부와 김원웅 광복회장이 공동 추진위원장을 맡고 여야 정당의 대표·원내대표가 고문단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와 독립기념관 등 정부의 유관기관장들도 추진위원을 맡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의열단장이었지만 광복 뒤 월북해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했단 이유로 폄훼됐던 약산 김원봉에 대한 재평가에 적극적인 까닭도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고 언급했습니다. 과거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엔 페이스북에 더 솔직하게 약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약산은 잊혀졌다. 임시정부 군무부장, 광복군 부사령관에 마지막 국무위원이기도 했지만, 의열단 단장이란 직책만 알려지고 있을 뿐, 일제시대 거의 모든 폭탄 투척과 요인 암살 사건의 배후에 그가 있었다는 활약상은 가려졌다. 우리의 독립운동사가 그만큼 빈약해진 것이다. (…) 이제는 남북 간의 체제 경쟁이 끝났으니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더 여유를 가져도 좋지 않을까? 일제시대 독립운동은 독립운동대로 평가하고, 해방 후의 사회주의 활동은 별도로 평가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의 독립운동사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길이고, 항일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잔 바치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의 2015년 페이스북 글-

이런 분위기 속에 추진위는 의열단 100주년인 지난해를 약산과 의열단을 전향적으로 재평가할 수 있는 국면으로 판단하고 사업비가 24억원가량 필요한 10건의 대형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뮤지컬 배우 80명이 출연해 의열단의 활약상을 그린 대형 뮤지컬 <아리랑>도 그렇게 기획된 행사들 중 하나입니다. 추진위는 이 사업비를 정부에 요청할 요량이었습니다. 비록 정부가 2019년 예산에 의열단 기념사업과 관련한 사업비를 별도 편성하진 않았지만 이미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편성된 정부 예산만 655억원인데다 대통령의 뜻도 열려 있다고 봤으니 기대감을 가진 거죠. 실제로 추진위에서 행사의 실무를 맡은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항단연)은 계약을 맺기 전 극단 쪽에 “정부가 비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야 정치인들이 총출동한 추진위 면면에도 의열단 기념사업 예산은 끝내 한푼도 편성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약산의 서훈 문제를 둘러싸고 보수언론과 야당이 그의 월북 사실을 들어 이념 논쟁을 부추기며 맹공을 퍼붓는 상황에서 정부가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돈 없이 사업을 주관한 항단연 쪽은 극단 밀양을 비롯해 기념사업에 참여한 단체들에 줘야 할 미수금만 쌓인 상황입니다. 항단연 관계자는 <한겨레>에 “정부가 추진위 발족식 때 후원금을 보내서 지원이 계속 이뤄질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의열단을 기리고자 한 극단 밀양과 항단연의 뜻은 1년만에 소송전으로 치달으며 빛이 바랐습니다. 극단 밀양은 사기 혐의로 항단연을 경찰에 고소했고 항단연도 명예훼손 혐의로 극단을 맞고소했습니다. 그러나 극단 쪽은 수수방관하는 정부의 태도에 더욱 분노했습니다. 장창걸 극단 밀양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해 11월 의열단 100주년 기념식에는 보훈처와 정부 관계자들이 참여해 행사 진행에도 관여했으면서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역사적 평가가 갈린다고 해서 대통령도, 보훈처도 의열단을 버리면 되겠습니까.”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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