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신분으로 법원 출석하는 이동원 대법관. 연합뉴스
11일 오전 10시께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에 이동원 대법관이 출석했다. 이날 그는 대법관이 아니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의 증인이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정권과 사법부가 물밑거래를 벌이고 법원행정처가 하급심 판사들에게 압력을 가한 사법농단의 전모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현직 대법관도 심문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이 대법관은 통합진보당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정당 해산 결정과 함께 지역구 의원직까지 박탈한 것은 과도하다’며 낸 의원 지위확인 소송의 항소심 재판장이었다. 1심은 “원고들의 의원직 상실은 헌재가 헌법 해석·적용에 대한 최종 권한으로 내린 결정”이라며 소송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각하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서울고법 행정6부장이었던 그는 “행정소송법상 당사자들이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는지 확인하는 소송의 판단 권한은 법원에 있다”며 “위헌정당 해산 결정의 효과로 당연히 의원직을 상실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의원직 상실 판단 권한은 헌재가 아닌 법원에 있다’는 법원행정처 입장과 같은 결론이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이민걸 전 기획조정실장이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이 대법관을 만나 행정처 문건을 전달한 것으로 봤다. 이 대법관은 항소심 재판 중이던 2016년 3월 사법연수원 동기인 이 전 실장과 만나 식사를 했고 이 자리에서 이 전 실장은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에 따른 소속 의원들의 지위를 판단하는 재판권이 법원에 없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으냐”며 1심 판결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한다. 이날 법정에서 검찰이 “이 전 실장의 이 발언을 어떻게 생각했느냐”고 묻자 이 대법관은 “불쾌했다”고 답했다.
당시 이 전 실장이 “읽어보라”며 이 대법관에게 건넨 10여쪽 분량의 문건에는 ‘통진당 국회의원 지위확인 사건에 대해 법원에 재판권이 있다’며 1심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에 임 전 차장 쪽 변호인이 “판결문을 쓸 때 이 전 실장에게 받은 문건이나 전해 들은 말에 영향을 받았느냐”고 묻자 이 대법관은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다만 이 대법관은 “안 읽어도 되는데, 선례가 없는 법률적 문제에 봉착해 있다 보니 행정처에서 검토했으면 참고할 만한 게 있을까 해서 보긴 했다”며 “안 읽었으면 더 떳떳할 텐데 면목이 없다”고 했다. 이어진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 재판장 윤종섭)의 거듭된 심문에 이 대법관은 “논거가 와닿아야 받아들이는데 와닿지 않았다. 한번 읽고 다시 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