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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톨게이트 투쟁’ 영화감독 된 노동자들 “우리는 떼 쓰는 사람 아닙니다”

등록 2020-08-06 04:59수정 2020-08-06 08:13

1000시간 투쟁 기록 ‘보라보라’
김승화·김미영·김옥경 연출·촬영
조합원들 직접 연출·제작은 처음
음료박스 숨겨 카메라 농성장 반입
빨랫감 내보낼 때 저장장치 전달
“투쟁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담겨”
지난해 9월12일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 농성장 앞에서 경찰을 사이에 두고 조합원들이 문화제를 열고 있다. 연출자 제공
지난해 9월12일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 농성장 앞에서 경찰을 사이에 두고 조합원들이 문화제를 열고 있다. 연출자 제공

‘직접고용 쟁취’라고 적힌 천막이 반으로 찢겨 바람에 나부꼈다. ‘직접고용’이 새겨진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조합원들이 찢긴 천막을 이어 붙였다. 이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하던 민주노총 소속 톨게이트 조합원 김승화(44)씨는 말했다. “하는 일의 질에 따라 세상은 사람들을 등급으로 나눈다. 어떤 사람은 A등급, 어떤 사람은 B등급. 사회에서 성실히 일한 나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왜 D등급의 사람으로 평가되는 걸까.” 이 장면이 담긴 영화 <보라보라>의 감독이기도 한 김씨는 “회사 쪽에서 찢은 천막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진 우리 세상 같았다”고 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서울요금소 지붕(캐노피) 위에서 김승화 감독이 이옥춘 조합원의 머리카락을 염색 해 주고 있다. 영화 의 한 장면이다. 연출자 제공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서울요금소 지붕(캐노피) 위에서 김승화 감독이 이옥춘 조합원의 머리카락을 염색 해 주고 있다. 영화 의 한 장면이다. 연출자 제공

■<보라보라> 217일의 투쟁기록 영화로 탄생하다

지난해 7월 한국도로공사가 자회사 고용을 거부하는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1500명을 해고하면서 시작된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217일의 투쟁기록이 영화로 탄생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에 재학 중인 김도준(33) 감독과 톨게이트 노동자 김승화·김미영(45) 감독이 공동 연출한 영화 <보라보라>다. 김옥경(50) 감독 등 다른 조합원 10명도 함께 촬영에 나섰다. 그동안 다른 투쟁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촬영한 영상이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쓰인 적은 있었지만, 조합원들이 직접 연출과 제작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목은 톨게이트 노동자들로 구성된 율동패의 이름에서 따왔다.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부문에 초청됐고, 오는 8일부터 21일까지 서울에서 정기 상영될 예정이다.

해고 투쟁에 나섰던 조합원 3명이 난생처음 카메라를 잡고 감독으로 나선 것은 오로지 ‘기록에 대한 의지’ 때문이었다. 김승화 감독은 4일 <한겨레>에 “우리 투쟁을 다룬 기사의 댓글을 보면 ‘노동자들이 떼를 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떼를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직접고용’이라는 당연한 꿈을 이루기 위해 싸우는 평범한 노동자라는 것을 영화로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김미영(45) 감독.
김미영(45) 감독.

■상자에 숨긴 카메라…경찰 경비 피해 촬영

조합원들에게 촬영을 처음 제안한 건 김도준 감독이었다. 그는 지난해 8월31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규탄하는 ‘촛불 집회’ 영상 취재에 나섰다가 근처에서 집회를 열었던 톨게이트 노동자를 처음 만났다. 김도준 감독은 “행진을 하다 쉬고 있던 톨게이트 노동자에게 ‘한국 교육문제에 대한 생각’을 물었는데, 생존이 달린 복직을 위해 싸우는 이들에게 묻기엔 너무 ‘속 편한’ 질문이었다”며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이들의 목소리와 투쟁을 영화로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촬영은 쉽지 않았다. 서울요금소 지붕(캐노피)에서 고공농성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김도준 감독은 카메라와 손으로 쓴 카메라 사용법을 밧줄에 매달아 식사와 함께 전달했다. 경찰의 경비가 삼엄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9일 조합원들이 점거한 김천 본사도 경찰이 에워싸, 건강음료 박스에 카메라를 숨겨 농성장 안으로 보냈다. 일주일에 한번씩 조합원들이 빨랫감을 농성장 밖으로 전달할 때 농성장을 촬영한 저장장치를 전달받았다. 조합원의 손에서 손으로 전달된 카메라에는 고공농성장, 김천 본사 안과 밖의 투쟁 상황이 생생하게 담겼다. 촬영 분량만 1천시간이 넘는다.

김도준(33) 감독(오른쪽 검은 모자 쓴 이).
김도준(33) 감독(오른쪽 검은 모자 쓴 이).

김도준 감독은 이 영상들을 2시간30분으로 압축해 영화로 만들었다.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했던 김천 본사 안 농성장 장면을 보면, 난방이 모두 끊긴 농성장 안 냉기와 조합원들의 온기가 극명하게 대조돼 화면으로 전달됐다. 조합원들은 서울로 원정 투쟁 간 동료의 사진을 사진첩으로 만들어 벽에 붙였고, 매일 밤 ‘나에게 쓰는 편지’를 서로에게 읽어줬다. 암 투병하는 남편 이야기, 아버지 상중에 투쟁에 뛰어든 사연 등 이들의 목소리가 영화에 생생하게 담겼다. 김옥경 감독은 “(김천 농성장)장면 속 이야기들은 다 절절하고 안타까워 카메라로 찍으면서도 많이 울었다”고 했다.

청와대 사랑채 분수대 인근에서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하려고 하지만 경찰에 가로막힌 톨게이트 조합원들. 영화 &lt;보라보라&gt; 중에서
청와대 사랑채 분수대 인근에서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하려고 하지만 경찰에 가로막힌 톨게이트 조합원들. 영화 <보라보라> 중에서

■일생이 투쟁이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

“2013년 10월 고덕 영업소에 요금수납원으로 입사했다. 입사 전에는 텔레마케팅, 홈쇼핑, 편의점 고객센터에서 일했다. 동대문에서 옷가게도 하고, 보석 세공 작업, 애견미용도 했다. 다 비정규직이었다.” (김승화 감독)

가족의 만류와 걱정에도 투쟁에 뛰어든 이들은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아왔지만 영화는 절규와 호소에 머무르지 않았다. 일생이 투쟁이었던 조합원들이 각자의 삶을 담담하게 얘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카메라 앞에서 김승화 감독이 비정규직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조곤조곤 말하는 장면도 그랬다.

김승화(44) 감독.
김승화(44) 감독.

집회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뛰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무거운 카메라에 팔이 저려오는 고통을 겪으면서 촬영한 영상은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 온라인 상영회에서 처음 공개됐다. 동료들과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 김승화 감독은 “황홀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김미영 감독은 “치열한 투쟁의 시작부터 투쟁이 끝난 뒤의 기쁨까지 영화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됐다”고 했다. 주로 광화문과 청와대에서 조합원들의 활동을 촬영한 김도준 감독은 “촬영을 하면서 함께 동지가 된 기분을 느꼈다. 조합원들과 경찰의 몸싸움이 격해질 때는 카메라를 놓고 함께 싸워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로 미안했다”고 고백했다.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 농성장 안의 조합원들이 밖으로 나와서 도로공사 사장실을 향해 “(이)강래야 학교 가자!”를 외치고 있다. 영화 &lt;보라보라&gt; 중에서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 농성장 안의 조합원들이 밖으로 나와서 도로공사 사장실을 향해 “(이)강래야 학교 가자!”를 외치고 있다. 영화 <보라보라> 중에서

도로공사가 요금수납원들을 본사에 직접고용하기로 결정하면서 지난 5월14일 이들은 해고 317일 만에 정규직으로 복직했다. 회사 쪽은 이들을 요금수납원으로 고용했지만 청소와 잡초 뽑는 일 등을 시켰다. 정규직이 됐으나 원래 일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 영화는 끝났지만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오는 8일 ‘원직복직’을 적은 손팻말을 들고 서울 압구정 씨지브이(CGV)에서 열리는 <보라보라> 상영회에 참석할 계획이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영화 <보라보라>는 오는 8일 오후 6시 시지브이(CGV) 압구정 신관 아트(ART) 3관, 15일 오후 6시 시지브이(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아트(ART) 1관, 21일 오후 16시 시지브이(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아트(ART) 1관에서 상영된다. 8일과 15일에는 감독들과 조합원들이 참석하는 관객과의 대화(GV)가 있을 예정이다.

김옥경(50) 감독.
김옥경(50)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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