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 ‘8·15’ 75돌 기념해 제정
이행우 전 한국수난자가족돕기회 회장. 사진 광복회 제공
박정희정권 고문·투옥·살해 맞서
‘한국수난자가족돕기회’ 결성 참여
80년대 5대에 걸쳐 회장 맡아 봉사
한겨레미주홍보원 창설 ‘민주화’ 지원 이 전 회장은 서울대 문리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와 한양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1968년 유학차 미국으로 갔다가 퀘이커 교육기관 펜들힐에서 공부를 하고 현지에 정착했다. 그는 2013년 귀국할 때까지 45년간 미국에 살면서 한국의 민주화와 자주·통일운동에 헌신했다. 그는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아래에서 고문·투옥·살해당하는 양심수들을 구조하기 위해 미국 한인동포들 중심으로 결성된 ‘한국수난자가족돕기회’에 참여해 활동했다. 초대부터 6대까지 회장을 맡았던 세계적 이론물리화학자 김순경 박사(템플대 화학과 교수)의 뒤를 이어 그는 전두환 정권 시기인 1981~87년 제7~12대 회장으로 봉사했다. 도미 12년 만인 1980년 5월 처음 귀국한 그는 함석헌 선생의 집에서 ‘5·18 광주’의 참상을 실시간으로 전해들은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한국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때 미국으로 돌아가는 도중 일본에 들러 정경모·오재식·박형규·지명관 선생 등에게 ‘광주’를 알린 것이 시작이었다. 이 전 회장은 1960년 함석헌 선생 등과 함께 ‘퀘이커 서울모임’을 창립한 이래 줄곧 퀘이커 평화주의를 실천해왔다. 미국 이주 이후에도 노벨평화상 수상(1947년) 단체인 미국퀘이커봉사회(AFSC)에 가입한 그는 1982년 2차 대표로 미국 엔지오 가운데 최초로 방북했다. 이어 40여 차례 북한을 방문하며 재외동포 협력과 연대,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앞장섰다. 또 1993년에는 ‘고난의 행군’ 중이던 북한을 돕기 위한 ‘미국퀘이커봉사회 프로그램’을 통해 북한 농업 지원과 인적 교류를 추진했다. 이 프로그램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현재 함석헌기념사업회 고문이기도 하다. 60년 함석헌 ‘퀘이커 서울모임’ 동참
82년 미국퀘이커봉사회 대표로 방북
40여차례 북한 오가며 북미교류 추진
6·15공동선언실천 미국 공동위원장 그는 또 1986년 미국 사회에 한반도 문제를 정확히 알리기 위한 한겨레미주홍보원(KIRC·코리아 인포메이션 앤 리소스 센터)을 창설해 영문 뉴스레터 <코리아 리포트>를 발행했고, 1987년엔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한국지원네트워크(KSN)를 결성했다. 같은 해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퀘이커봉사회의 유엔(UN) 북한대표부 초청과 1991년 북한 연형묵 총리 방미 재미동포 환영모임을 추진했다. 특히 그는 한반도 평화통일 운동의 선두에 늘 서 있었다. 1989년 범민족대회 북미주 추진본부 결성, 문규현·배종섭 신부 방북 동행, 1990년 범민족대회 해외 실무대표자회의(도쿄)와 범민족대회 1차(베를린) 2차(서울) 실무회담,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 준비모임(베를린), 범민련 미주본부 및 해외본부 결성 추진, 1994년 미주동포전국협회(NAKA) 결성, 2001년 6·15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 결성(워싱턴DC), 재미민족운동단체협의회(민협) 결성, 2003년 정전협정 50주년 맞이 재미동포-미국인 연합 결성, 2004년 남·북·해외 6·15공동위 준비회의(금강산) 결성 등 끊임없이 활동했다. 그는 틈틈이 귀국해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갈등해결센터 설립(1998년)과 비폭력평화물결 설립(2002년)을 지원한 데 이어 2008년 ‘비폭력직접행동 전문훈련가 양성 국제 워크숍’, 2009년 아시아태평양 무기경쟁 종식을 위한 국제회의,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 한국 평화순례 등도 이끌었다. 그는 한겨레미주홍보원 이사장, 범민련 미주본부 공동의장, 미주동포전국협회 회장, 6·15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2013년엔 한겨레통일문화재단에서 주는 ‘제13회 한겨레통일문화상’을 수상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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