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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회사어’ 공부 열풍

등록 2020-08-01 09:29수정 2020-08-01 16:44

[토요판] 현장
‘말하기 공부’에 빠진 직장인들

의사소통 알려주는 계발서 봇물
일대일 커뮤니케이션 지도받기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회사어’

10년 전과 판이하게 다른 가이드 “무조건 긍정”→“거절은 분명하게”
“웬만하면 대면”→“활자 간결하게”
최근 서점가에 나와 있는 의사소통 관련 자기계발서들.
최근 서점가에 나와 있는 의사소통 관련 자기계발서들.

▶ 구글 검색란에 ‘직장인’ ‘고구마’ 두 단어를 쳐봤다. 점심용 다이어트 도시락 싸기 같은 요리 정보 사이로 ‘직장 내 고구마 퇴치법’ ‘회사에 꼭 있는 고구마 유형’ ‘회사 생활을 위한 대화법’ 같은 콘텐츠가 마치 고구마 줄기 이어지듯 나온다. 회사에서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답답하게 살고 싶지 않은 직장인들이 의사소통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책을 사서 연습하고 일대일 개인지도를 받는다. 왜 지금 ‘사이다’처럼 시원한 의사소통에 대한 욕구가 큰 것일까.

“사회생활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잖아요. 혼자 일하거나 작은 기업에 있으면 인사평가도 없다 보니 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죠. 그런데 의사소통은 한번 실수하면 되돌리기가 힘들어요. 적절한 말을 제때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지난해 초부터 꾸준히 커뮤니케이션 코칭을 받고 있어요.”

3년 전 창업한 젊은 사업가 신아무개(31)씨는 지난해부터 2주에 한번 1시간씩 스피치 컨설턴트를 만난다. 10여년 외국생활을 했던 신씨는 사업 파트너나 직원들과 어색하지 않게 의사소통을 하고 싶었다. 지난 30일 서울 서초구의 한 스터디룸, 신씨는 이날 만난 사업 파트너와의 미팅에서 어려웠던 점을 털어놓고 전문가의 조언을 받았다.

“미국에선 가릴 말, 안 가릴 말이 훨씬 적었는데 한국에선 어려워요. 칭찬을 들어도 뭐라 화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신씨)

“그렇죠. 좋은 취지로 칭찬했는데 상대방의 민감한 걸 건드리면 과하다는 평가를 듣고요. 첫 미팅이라면 일에 대한 적절한 관심 표현 정도가 좋겠어요. 적당한 말을 모르겠을 땐 활짝 웃는 비언어적 표현으로 화답할 수도 있고요.”(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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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의사소통을 공부할까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들 사이에 신씨처럼 자신의 직무역량을 높이기 위해 ‘커뮤니케이션 코칭’을 받는 이들이 늘고 있다. 대인관계에서 호감을 얻고 설득이나 제안, 요청 같은 업무에서 타인의 협력을 끌어내고자 스스로 비용을 쓰는 것이다. 과거엔 발표력 향상 같은 스피치 기술을 연마했다면, 요즘엔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좋은 화법, 대인관계가 원만해지는 의사소통법을 갈고닦는다. 주로 많은 이들과 소통이 필요한 업무를 하는 사회인들이 이런 서비스를 찾는다. 이고운 스피치 컨설턴트는 “‘커뮤니케이션 트레이너’라는 직업명이 나올 정도로 수요가 많다. 옛날엔 기업 임원분들 대상으로 이런 컨설팅을 했지만 요즘은 외국생활 오래 하신 분, 아이돌 가수, 시각장애인 등 다양한 의사소통 욕구를 가진 고객들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지난 30일 서울 서초구 한 스터디룸에서 이고운 스피치 컨설턴트가 고객에게 커뮤니케이션 코칭을 하고 있다.
지난 30일 서울 서초구 한 스터디룸에서 이고운 스피치 컨설턴트가 고객에게 커뮤니케이션 코칭을 하고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회원 585명을 대상으로 2015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비호감 동료는 누구입니까”란 질문에 1위는 ‘말이 잘 안 통하는 동료’(25.7%)가 꼽혔다. ​이처럼 의사소통이 회사 생활을 좌지우지하다 보니 많은 이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의사소통을 공부하고 있다. 서점가에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의사소통 길잡이 서적이 어느 때보다 봇물을 이루고 있다. 올해에만 자기계발서와 에세이로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합니다> <듣고 싶은 말을 했더니 잘 풀리기 시작했다> <말투를 바꿨더니 관계가 찾아왔습니다> <부자의 말센스> <말하기를 말하기> 등이 나와 있다.

월급의 상당 부분을 투자하는 것도 아끼지 않는다. 올해 회사 생활 3년차인 직장인 오아무개(27)씨는 지난 1년간 월급의 15%를 말하기 공부에 썼다. 업무에서 좀 더 ‘프로답게’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직원 교육을 담당하는 오씨는 많은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아야 할 일이 잦았다. “어린아이 같은 말투를 고치고 싶어서 일주일에 한번씩 1년간 일대일 수업을 받았다. 말이 개선되니 일상에서 자신감이 붙고 대인관계에도 도움이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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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커뮤니케이션 코칭 받아보니

“기자님, 회사에서 ‘내일까지 처리해줘’ 하면 언제까지일까요?”(전문가)

“내일요? 음….”(기자)

“몇 시까지냐고 되물어야 해요.”(전문가)

지난 29일 기자는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업체를 방문해 평소 말하기 습관에 대해 상담을 받아봤다. 김혜령 브랜드어셈블 대표는 여러 진단을 통해 기자의 화법에 대해 개선할 방향을 조언해줬다. 김 대표는 기자가 작성한 자가진단표를 보고 ‘카페라테형’이라고 진단했다. 사람들의 행동 방식에 따라 네가지 말하기 유형으로 나눈 이 진단표는 직설적이고 성격이 급한 ‘에스프레소형’, 사교적이고 대화를 주도하는 ‘카페모카형’, 경청과 공감을 잘하는 ‘카페라테형’, 논리와 정확성을 추구하는 ‘아메리카노형’이 있다고 했다. 즉, 사람에 따라 의사소통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민첩한 행동을 기대하는 ‘에스프레소형’ 상사와 과정에도 최선을 다하고 싶은 ‘카페라테형’ 부하직원 사이에선 ‘내일까지’에 대한 생각이 각자 다를 수 있다. 상사는 내일 아침 9시 출근했을 때 보고받는다고 생각했는데, 듣는 사람은 ‘내일 퇴근 전까지 하면 되겠지’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직장에서의 의사소통은 숫자로, 간결하게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김혜령 대표는 “누가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말하기 유형마다 장단점이 다 있다. 사람에 따라 스피치 스타일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면 대인관계가 좀 더 원만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9일 서울 강남구 한 사무실에서 김혜령 브랜드어셈블 대표에게 기자가 커뮤니케이션 코칭을 받고 있다.
지난 29일 서울 강남구 한 사무실에서 김혜령 브랜드어셈블 대표에게 기자가 커뮤니케이션 코칭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맥락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언어문화가 생산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직장에서 불통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진단한다. 우리나라의 일상 언어는 직접적 말하기보다 분위기를 통해 파악하는 간접적 말하기가 많다. 예를 들어, 사무실에서 에어컨이 작동 안 돼 더울 경우 ‘나 지금 덥다’고 말하지 않고 손으로 얼굴에 부채질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는 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는 직장에서의 정확한 의사소통을 가로막는다. 모호한 표현을 줄이고 정확히 알 때까지 되물어 명확히 의사소통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직접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이 알아줄 것이라 기대해선 안 되며, 상대방의 의중도 지레짐작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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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직장의 언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0년이면 직장의 언어도 변한다. 최근 나온 자기계발서들은 10년 전 책과 판이하게 다른 조언을 한다. 2011년에 나온 책 <회사어로 말하라>(비즈니스북스)는 “회사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일단, 무조건, 긍정으로 말하라”며 “부당한 명령이라는 것을 알아도 긍정어로 말하라. 속으로 억울하고 화가 나도 ‘네!’라고 답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지금은 지혜롭게 거절 잘하는 법을 이야기한다. 서점가에 <죄책감 없이 거절하는 용기>(2016), <거절 잘 하는 법>(2018), <때론 이유 없이 거절해도 괜찮습니다>(2019) 등이 나와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을 덮친 2020년엔 “부디 회사에서는 말로 대화하라. 문자는 전달 과정에서 왜곡되기 쉽다”고 조언한 9년 전 자기계발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성인의 절반 가까이는 갑작스러운 전화를 꺼리는 ‘콜 포비아’를 겪으며, ‘메신저 등 비대면 의사소통이 익숙하다’는 설문조사도 있다.(잡코리아, 2019) 이제 의사소통 전문가들은 재택근무가 일상이 된 상황에서 메신저로 정확히 의사소통하는 법을 가이드하고 있다.

책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합니다>의 저자 박소연 작가는 “비대면 의사소통은 활자 그 자체만으로 명확하게 소통해야 한다. 메신저를 사용할 땐 막연한 생각이나 느낌 대신 정보를 중심으로 단순하게 보내야 하고, 받는 이가 몇 분 뒤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의 메시지에 핵심과 결론을 넣어 완결형으로 작성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글·사진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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