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변호사(왼쪽 둘째)가 22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열린 피해자 쪽의 2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 쪽이 22일 2차 기자회견을 열고 4년간 20명의 시장 비서실 관계자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으나 묵살 또는 회유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성단체들은 “이번 사건은 박 전 시장의 개인적 문제를 넘어 권력에 의해 은폐, 비호, 지속된 조직적 범죄”라며 서울시를 중심으로 한 진상 조사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 등 피해자 지원단체와 소송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지난 13일에 이어 이날 서울 중구의 한 회견장에서 2차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기자회견 내용을 종합하면, 피해자는 2016년 이후 4년 동안 인사 담당자를 포함해 서울시 관계자 20여명에게 자신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호소했다. 박 전 시장이 텔레그램을 통해 보낸 문자메시지나 사진 등을 이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가 기억하는 건 부서를 이동하기 전 17명, 이동한 뒤 3명(에게 피해 사실을 말했다). 관련 내용을 수사기관에서도 진술했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비서실에서 다른 부서로 옮긴 건 2019년 7월이다.
그러나 그의 호소에 돌아온 응답은 회유나 은폐 시도에 가까웠다고 피해자 쪽은 주장했다. ‘남은 30년 공무원 생활 편하게 하도록 해줄 테니 다시 비서로 와달라’, ‘(뭘) 몰라서 그래’, ‘예뻐서 그랬겠지’ 등의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성고충으로 인한 인사 조처를 피해자가 요구해도 ‘(인사이동 관련해서) 시장에게 직접 허락받아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가 고충을 토로했는데도 구제책을 마련하지 않고 피해자가 계속 피해에 노출되도록 한 점은 추행 방조 행위에 해당한다고 피해자 쪽은 주장했다. 박 전 시장이 세상을 떠난 뒤 비서실의 전·현직 관계자들이 “시장실에서 근무하는 동안 시장과 고소인 사이에 이상한 낌새를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의 진술을 미리 부정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현재 서울시 관계자들의 성추행 방조 의혹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하지만 성추행 고소 내용에 대해 수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방조 혐의’를 수사할 수 있느냐를 두고 법적 판단이 엇갈린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앞서 21일 서울시 공무원들의 방임·묵인 의혹과 관련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시장 집무실과 비서실, 박 전 시장의 개인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은 “피의자들에 대한 범죄 혐의 사실의 소명 등이 부족하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경찰은 이날 박 전 시장의 업무용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제보받아 잠금을 푸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휴대전화에서는 박 전 시장이 숨진 경위와 관련한 자료만 제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성추행 방조나 고소 사실 유출 등의 추가 수사를 위해서는 관련 영장을 다시 발부받아야 한다.
피해자 지원단체들은 서울시 관계자들의 방조 정황이 드러난 만큼 서울시는 진상규명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공공기관 성희롱 등의 조사 및 구제 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조사 범위는 발생한 사안(성추행 의혹), 성차별적 업무 환경, 문제제기 및 묵살 과정, 업무상 불이익 등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 쪽은 다음주 중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조속한 진상규명을 위해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가 이뤄질 경우 적극 협조하겠다. 현재 진행 중인 방조와 묵인, 피소 사실 유출 등과 관련한 경찰, 검찰 수사에도 성실하게 임하겠다”며 “오해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서울시 자체 조사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오연서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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