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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중독의 상처를 소독하는 일

등록 2020-07-18 07:13수정 2020-07-18 07:52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토요판] 남의 집 드나드는 닥터 홍

⑥모든 중독에는 이유가 있다

경훈(가명)님은 만성 설사와 게임중독을 주요 문제로 보건소에서 가정방문의사인 필자에게 의뢰된 50대였다. 게임중독이 왜 문제인지 의아해하며 방문했다. 집에 들어가니 배설물 지린내가 코끝을 스쳤다.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억에 남을 정도로 강렬했다. 집 안은 콘솔게임 기기와 게임 시디들, 먹다 남은 음식물이 널브러져 있었다. 얼마 전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양다리 절단 수술을 받았다. 절단된 다리로 집 안에서 기어다녀 상처가 아물지 못한 채 출혈이 동반되었다. 어디서부터 접근을 시작해야 할지 다소 난감했다. 보건소 영양사, 운동사, 간호사가 체계적으로 방문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대체로 교육에 따라주지 않아 더 이상 건강 개선이 어렵다고 판단할 때쯤 내가 방문했다.

경훈님 본인도 다리에 상처가 나면 더 자르면 된다는 식이었다. 설사 때문에 힘들고 심지어는 가끔 변을 지리더라도 먹는 걸 제한할 수는 없다는 게 그분의 입장이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의원에 언제든 가면 상처 소독을 해주기로 허락을 받았지만 도무지 가질 않으시니 소용이 없다. 설사의 경우도 이미 다른 병원에서 강력한 지사제를 받아서 먹고 있지만 효과가 없었다. 대장내시경을 해보려 했지만 검사를 위한 금식을 도저히 할 수 없어 검사 직전 돌아왔다고 했다. 경훈님은 말씀이 어눌했다.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어떤 말씀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경훈님은 어떻게 살아오셨어요?”

“형들 따라다니면서 막일하면서 다녔죠.”

“가족들은 어디서 지내세요?”

“가족 없어요. 부모님은 어렸을 때 돌아가시고 둘째 형은 자살했고 큰형이 가끔 먹을 걸 가져다줘요.”

“가까운 이웃이 없네요?”

“다 없죠.”

“외로우시겠어요.”

부모님은 질환으로 돌아가시고, 둘째 형은 자살하고, 유일하게 남은 큰형이 가끔 먹을 것을 챙겨준다고 했다. 문제를 교정하려 다그치기보다는 살아온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니 조금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다.

“우리가 문 닫고 나서는 순간 요양보호사님과 웃으며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그동안 우리가 했던 접근이 틀렸던 거 같아요.”

간호사 선생님은 이전에 문제를 교정하려 했을 때는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했음을 회상하며 요양보호사님과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하신다. 그렇게 경훈님께 잔소리를 늘어놓기보다는 잘 들으며 차근차근 알아가는 전략을 짜보려 시도했는데 경훈님이 인덕션에 화상을 입으셨다. 기어서 생활하다 보니 음식을 끓이는 인덕션도 바닥에 있었다. 원래 상처가 있는데 깊은 화상까지 근처에 생겨서 난감한 상황이었다. 지속적인 소독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병원에는 안 가신다. 간호사와 상의해서 이틀 간격으로 찾아뵈었다. 자주 찾아뵈니 냄새도 익숙해지고 게임에 집중하는 모습도 귀여우시다. 게임에는 취미가 없어 같이 하지는 못하고 옆에서 지켜보면서 어떤 상황이냐고 물어도 보며 구경도 한다. 모든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문다.

중독에는 이유가 있다. 중독 자체보다는 중독을 이끈 마음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보이지 않는 상처는 해결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문제라서 접근을 시도하지 않고 중독을 교정하려 한다. 하지만 결국 근본적 이유를 보듬기 전에 중독은 교정되지 않는다. 경훈님이 게임에 집중하는 모습이 멋지고 그것이 고맙다.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본인이 그 이유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기에 그것을 돕고 싶다. 그래도 설사는 잡아야 하고 해결이 안 된다면 입원하여 집중치료를 받아야 한다. 경훈님과의 인연이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상처를 입으시더라도 소독해드리고 싶다.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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