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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왜 외국인들을 여기 모아 놨어?’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등록 2020-07-11 09:28수정 2020-07-11 09:37

[토요판] 이란주의 할 말 많은 눈동자
⑦ 이주민이 재난지원금 받을 때

귀화한 방글라데시 출신 조니
동생과 재난지원금 받다가도
결혼해 귀화하다가도 차별 경험

몇개 시는 외국인에게 지원금 줬지만
내국인은 되는 인터넷 신청 안 되고
평일 일당 손실 감수하며 줄서야

왜 외국인들을 여기 모아 놨어?
코로나 옮기면 누가 책임질 거야?
여럿이 고함치는 소리 들려와
일러스트레이션 순심
일러스트레이션 순심

방글라데시 출신 조니(가명·43·남)는 귀화 한국인으로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외국인’ 입장이다. 한국인과 비한국인의 경계에서 때론 예민하게 차별을 느끼고, 때론 분노하고, 때론 양쪽 사이가 매끄럽도록 기름칠하는 역할을 한다.

______________
몇시간 기다렸는데 다시 오라고?

충격이었어요. 동생 데리고 외국인 재난지원금 신청하러 갔는데 줄이 말도 못하게 길었죠. 건물을 뱅 둘러 선 사람들의 줄이 조금씩 느리게 앞으로 가고 있었어요. 아이고 죽겠다 하고 잠깐씩 앉았다 일어나는 동포 할머니들도 있었지요. 덥기는 또 어찌나 더운지, 뜨거운 햇볕 아래서 다들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어요. 나는 다행히 동생이랑 둘이라서 동생을 줄에 세워놓고 물을 사러 다녀왔어요. 몇병 더 사서 앞뒤 어른들에게도 나눠드렸죠.

그때 모퉁이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어요. 누군가 목청껏 소리를 질렀어요. 왜 외국인들을 여기 모아 놨어? 코로나 옮기면 누가 책임질 거야? 도대체 누구한테 허락받았어? 여러 사람이 고함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어요. 뭐야, 우리 들으라고 저러는 거야? 우리가 다 코로나 환자들이란 말이야? 한국 사람들 대체 왜 저래? 줄 선 우리도 웅성웅성. 마음이 무척 불편했어요. 무슨 일인지 가보고 싶었지만 동생이 가지 말라고 팔을 잡아끄는 바람에 가보지 못했어요. 그러면서 두어 시간이 흘렀는데, 갑자기 오늘은 신청 접수 중단하니 돌아갔다가 나중에 다시 오라고 했어요. 줄 서서 몇시간이나 기다린 사람들한테 정말 너무한 거 아닌가요?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더러 항의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화난 표정과 초라한 마음을 누르며 흩어졌어요. 나와 동생도 충격과 분노를 안고 돌아왔어요.

내가 거기 갔던 것은 동생에게 지자체가 지급하는 재난지원금 5만원을 받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경기도와 서울시가 처음에는 재난기본소득을 한국인에게만 주다가, 외국인 차별이라고 비판하니까 결혼이민자, 영주권자에게도 준다고 했어요. 한국인과 결혼하거나 영주권이 있는 사람만 사람인가요, 그것도 역시 차별 아닌가요? 그런데 고맙게도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외국인등록증이 있으면 누구나, 한국인과 똑같이, 5만원씩 다 준다고 했어요. 금액이 적었지만 그래도 기뻤어요. 외국인도 여기서 같이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주는 거잖아요. 뿌듯하고 고마웠죠. 그 덕분에 동생도 지원금을 받게 되어 좋아했어요.

뿌듯함은 딱 거기까지였어요. 귀화 한국인인 나는 이미 받았어요. 집에서 인터넷으로 신청하니까 5분도 안 걸렸어요. 지원금을 주는데 이렇게 간편하기까지 하다니, 정말 한국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웬걸, 외국인에게는 전혀 달랐어요. 6월부터 두달간 도시 전체에서 단 한군데에 마련된 신청창구에 직접 가서 신청해야 한다고 했어요. 인터넷 신청 같은 것은 없었어요.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 4만여명이 5만원을 받기 위해 다 한군데로 모여야 하는 상황, 믿을 수 없지만 사실이었죠. 더구나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창구를 운영한다니 나같이 회사에 매인 사람은 갈 수도 없잖아요. 요즘 회사들은 시급으로 계산하니까 직원이 재난지원금 받으러 갔다 온다고 하면, 사장님은 그 시간만큼 시급에서 뺄 거예요. 그렇게 계산하면 간단하니까 서로 싸울 필요 없잖아요. 그러니 외국인은 시급을 포기하고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고민에 빠지게 되는 거죠.

다행히 6월 첫 주에는 주말에도 창구를 연다고 해서 우리도 토요일에 갔어요. 주말 알바도 포기해야 하고 번거롭기도 했지만 동생에게 꼭 받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거 받으면 뭔가 멤버십 같은 걸 느끼게 되는 것 같아서 말이죠. 버스 갈아타고 가려면 좀 복잡해서 택시를 탔어요. 갈 때 8천원, 신청도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도 너무 힘들어서 또 택시 탔더니 다시 8천원.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너무 기가 막혀서 막 웃음이 나왔어요. 멤버십 같은 소리! 그냥 내가 알바 뛰어서 5만원 주고 말걸! 그런데 정말, 왜 외국인은 한국인처럼 인터넷이나 지역마다 있는 주민센터를 방문해서 신청하도록 하지 않는 걸까요? 궁금한데 물어볼 데가 없네요.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내가 갔던 접수창구는 새로 지은 주상복합건물에 마련됐던 거래요. 하필 내가 방문했던 토요일, 나처럼 주말에만 시간 되는 사람들이 왕창 방문하니까, 거기 사는 사람들이 외국인들 몰려온다고 항의해서 어쩔 수 없이 운영을 중단했던 거라네요. 그다음 주에 장소를 옮겨서 다시 문 열었다가, 무슨 일이 또 생겨서 이틀 만에 다시 문을 닫고, 며칠 후에 또 다른 장소로 옮겼다고 하더라고요. 그 소식을 들으니 슬픔과 고마움이 동시에 느껴졌어요. 한국에 살면서 하찮은 사람 취급을 받은 게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외국인도 챙겨주려고 장소를 두번이나 옮겨가며 고생하는 것을 보니 고마운 마음도 들더라는 말입니다. 사실, 쉽지 않을 거예요. 전에는 외국인에게 이런 혜택을 줘본 적이 없으니 아직 아무 시스템이 없는 거잖아요. 정부도 힘들 거라는 거 이해해요. 시스템이 마련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코로나가 너무 급하게 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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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사이 아이가 없어요?”

한국사람 신분증을 가진 덕분에 재난지원금은 쉽게 받았지만 나는 여전히 외국사람이죠. 얼굴이 외국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어요. 외국사람이라고 무시할 때마다 이거 보세요 하고 신분증 내밀 수도 없잖아요. 대부분은 내밀어도 소용없어요. 그래도 한국사람은 아니잖아 하는 말이 돌아오니까요.

그래요, 우리는 차별에 익숙해요. 직장에서 겪는 하대와 무시는 그냥 일상이어서 우리에게 공기와 같은 일이거든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잊고 싶어 깊이 묻어뒀던 일이 또 떠올랐어요. 나는 무역하느라 여러 나라 돌아다니다 한국에 와서 아내를 만났어요. 그 바람에 결혼하고 귀화까지 하게 된 건데요, 결혼하던 초기에는 정말 말도 못할 만큼 험한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한국에서 정착하는 데 이용하려고 한국인과 결혼했다는 손가락질과 욕이 엄청났죠.

결혼하고 7년 만에 귀화신청 서류를 내고, 그 뒤로 한국인이 되기까지 8년 걸렸어요. 원래 외국인이 귀화신청을 하려면 한국에서 5년간 계속 체류해서 신청 자격을 갖춰야 하는데, 나처럼 한국인과 결혼한 사람은 간이귀화라고 해서 2년만 계속 체류하면 자격이 생겨요. 하지만 나는 먹고사는 게 바빠 귀화를 신경 쓰지 못하다가 아내가 하도 원해서 7년 만에 서류를 낸 거지요. 우리 부부는 아기가 없어요. 불임이죠. 우리 부부에게는 큰 아픔이에요. 그것만 해도 속상한데 이건 뭐 출입국사무소에 갈 때마다 왜 아기가 없냐고 의심하고 따지니 견딜 수가 없지 뭡니까.

비자 연장 신청할 때마다, 귀화 서류 낼 때마다(자꾸 떨어져서 여러 번 냈거든요), 면접 볼 때마다 나는 모욕적인 질문을 반복해서 받았어요. “결혼한 지 오래됐는데 왜 아기가 없어요? 무슨 문제예요?” 그런 건 물어보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사람 마음이 상할 수도 있잖아요. 나는 터지려는 울분을 누르고 간신히 사정을 설명했어요. 그런데 그다음에 또 물어봐요. “둘 사이 아이가 없어요?” 하도 기가 막혀서, 병원에서 불임인 이유가 적힌 진단서를 발급받아 제출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 진짜 못 말려요. 그 서류를 손에 들고도 나를 빤히 보면서 물어봐요. “아이 없어요?”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아닌가요?

그것만이 아니에요. 처음 귀화신청서 낼 때 접수하는 사람이 이러는 거예요. “국적 나오면 도망가시려고? 당신 나라에 가서 다시 결혼해서 여자 데려오려고?” 이 무례한 말을 다 참으려니 정말 피눈물이 났어요. 아내만 아니었으면 귀화고 뭐고 다 때려치웠을 거예요. 계속 귀화에 실패하니까 한번은 장인어른이 출입국에 물어봤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뭐랬는지 알아요? 그 사람 귀화하면 딸 버리고 도망가서 자기 나라 여자랑 다시 결혼할 거라고, 하… 진짜! 이런 막돼먹은 말을 했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 장인 장모님 놀라고 화나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도 우리 부부를 위해서 꾹꾹 참았어요. 나도 참고 참다가 마지막 심사 때 얘기했어요. 심사 보는 사람이 출입국 높은 사람인 것 같았어요. “손가락 다섯개 다 똑같아요? 아니잖아요. 내가 국적 나오면 아내 배신하고 도망갈지 안 갈지 어떻게 알아요? 왜 미리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죄송합니다, 딱 그 한마디 하더라고요. 제발 인간적인 대접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대접까지는 아니지만 나를 필요로 해서 인정해주는 데가 있기는 있어요. 외국인이었으면 그냥 밀려났을 상황에서, 한국인 신분증이 먹히는 때가 있단 말이죠. 주로 인력사무소에서 그래요. 사업이 힘들어져 정리하고 회사에 다닌 지 오래됐는데, 그것만으로는 벌이가 충분하지 않아서 주말에는 인력사무소 가서 일을 찾거든요. 내가 가면 내 얼굴을 스윽 보고 말해요. “외국사람 안 써요.” 그럴 때 신분증을 보여주면, 아 한국인이네요? 하면서 반깁니다. 아무 기술이 없는데도 일이 항상 있어요. 기술자 도와주고 물건 옮겨주고 허드렛일 하면 일당 12만원 정도 받아요. 노동력으로는 필요한 사람이란 뜻이죠. 그렇다면 인간적인 대접도 해주면 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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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무례하고 다정한 참견이라니!

한국은 신기하게도 두 가지가 다 있는 나라예요. 무시와 차별이 심하면서도 따뜻한 정이 있어요. 심지어 길에서 처음 만나는 분들도 (주로 노인분들이 그러시는데) 나를 되게 걱정해줘요. “야, 돈 많이 벌었어? 나라 언제 가? 돈 벌었으면 빨리빨리 나라 가야지?” 아하하하,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죠. 그냥 모른 척 지나칠 수도 없고 뭐라 대꾸할 수도 없고, 너무 정겨운데 예의는 없는 것 같고, 이런 상황 정말 기가 막히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은 이골이 나서 나도 여유가 생겼어요. 이제 웃으며 대답하죠. “예예, 많이 벌었어요. 조금 있으면 갑니다.” 그럼 또 자상한 덕담이 날아와요. “돈 나쁜 데 쓰지 말고 나라 가서 집 큰 거 하나 사.”

아직 참을성이 부족하고 까다로운 친구들은 “언제 봤다고 그런 말 하세요?” 하고 대꾸하기도 해요. 나는 열 받아 뜨끈해진 친구 등을 다독이며 말합니다. “그러지 마, 우리 걱정돼서 해주시는 말씀이야. 우리 한국사람 됐어도 외국사람이잖아.” 사실 속으로는 나도 화가 치밀 때가 있죠. 이런 무례하고 다정한 참견이라니!

오늘도 집을 나서는데 예의 그 다정한 인사가 들려옵니다. “어디 가? 또 일하러 가? 한국사람 됐다고 너무 한국사람처럼 일만 하는 거 아냐?” 얼굴이 한국사람이든 아니든 나는 또 넉살 좋게 대답해요. “아이고, 한국사람 맞으니까 한국사람처럼 살아야지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쉼 없이 일해 번 돈으로 뭐 할 거냐고 사람들이 묻곤 해요. 뭐 하긴요, 낼모레면 오십이니 나도 노후를 준비해야지요. 백세시대라고 하는데, 아내와 둘이 늙어서 고생 안 하려면 노후 생활도 준비해야 하잖아요. 네 나라로 언제 가냐고, 빨리 가라고 아무리 재촉하고 떠밀어도 나는 여기서 늙어야 해요. 그래서 힘 있는 만큼 일하고 모아 저축하고 국민연금도 꼬박꼬박 넣고 있어요.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일꾼. 국경을 넘어와 새 삶을 꾸리고 있는 이주민들은 저마다 깊은 사연이 있다. 떠나온 사회와 살아내야 할 사회에 하고픈 말이 많지만 그 말은 발화되지 못한 채 눈동자에 잠기곤 한다. 그 이야기를 풀어내 당사자 시점으로 전한다. 4주에 한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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