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앞에서 청년유니온 관계자가 패션스타일리스트·어시스턴트 노동실태조사 결과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다림질을 하고 있는데 실장님이 왜 빨리 하지 않느냐며 다리미를 집어던졌어요.”
“머리는 왜 달고 다니냐는 등 욕설은 기본이었습니다.”
“실장님 강아지 수발을 들어도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어요.”
의상 협찬∙관리 등 연예인 스타일리스트의 업무를 보조하는 어시스턴트들이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하며 ‘갑질’에 시달린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청년유니온은 6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앞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노동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달 5~21일 어시스턴트로 일하고 있거나 일한 경험이 있는 청년 252명에게 근로시간 및 노동강도 등을 물은 결과다. 조사내용을 보면, 응답자 96.4%(243명)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일해왔고, 4대보험 가입 비율은 5.2%(13명)에 지나지 않았다.
노동 시간에 견줘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응답자의 하루 평균 노동 시간은 11.49시간이다. 아울러 87.3%가 하루 9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한다고 답했다. 담당 연예인의 일정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출근 여부도 전날에야 알게 되거나, 상사가 부르면 휴일에도 출근해야 한다는 응답도 나왔다. 반면 응답자의 월 평균 임금은 100만원이 채 되지 않았으며, 평균 시급은 3989원에 불과했다. 최저임금 8590원 이상을 받는다고 답한 이는 8명뿐이었다.
어시스턴트들은 교통비, 통신비 등으로 수입보다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했다. 응답자의 33.3%가 새벽 출퇴근 시 택시비를 지원받지 못한다고 답했으며, ‘출장 경험이 있다’고 밝힌 174명 중 103명은 출장비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현장에서 의상에 손상이 갈 경우 본인 과실이 아닌데도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응답자 중 84명은 손해배상 상황에서 팀원들이 배분해 손해액을 배상했으며, 92명은 혼자 전액을 부담해야 했다고 답했다. 품목은 5만원대 액세서리에서 100만원이 훌쩍 넘는 명품 의류, 300만원대 한복까지 다양했다.
어시스턴트들은 조사에서 “2020년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구두계약으로 월급 50만원을 받고, 정해진 휴일 없이 부르면 나가서 일하고, 마치 개인 시간을 다 빼앗긴 노예처럼 부려지고 있다”, “8년, 10년 일하고 그만두더라도 퇴직금조차 받을 수 없다”, “언제든 잘려도 되는 사람이라는 게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폭언과 갑질은 어시스턴트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이날 발언에 나선 어시스턴트 노동자 ㄱ씨는 “최근 이슈가 된 원로 배우의 매니저 갑질 의혹을 두고도 어시스턴트들은 ‘그래도 그 사람은 근로계약서도 작성하고 월 180원만원은 받는다더라’라며 부러워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어시스턴트들은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 꿈꾸는 미래에 대한 열정으로 버틴다”며 “유명한 연예인 팀일수록 일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 대우가 더 나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청년 노동자의 취약한 상황을 악용한 ‘열정페이’ 관행이 스타일리스트 업계에도 견고히 자리 잡았다는 지적이다. 청년유니온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에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고 사례를 모아 집단 진정을 넣을 계획이다.
박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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