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검찰청 깃발.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검-언 유착 의혹 사건 전문수사자문단(수사자문단) 심의를 놓고 윤석열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맞서고 있는 가운데 이번 수사는 “수사자문단을 활용한 사안이 아니며 대검 실무진의 ‘혐의없음’ 의견도 재고돼야 한다”는 현직 검사의 공개적인 의견 표명이 나왔다. 윤 총장의 요청으로 지난달 소집된 대검 부장회의에서도 범죄 성립이 가능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던 것으로 1일 확인됐다.
박철완 부산고검 검사는 지난달 29일 검찰 내부게시판에 ‘채널에이 기자 강요미수 사건(이명 ‘검언유착’ 사건)에 대한 의견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에이(A)4 21장짜리 분량으로 채널에이 이아무개 전 기자가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에게 보낸 편지와 이 전 대표 대리인 지아무개씨와의 대화 녹취록 등 언론 보도로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대법원 판례에 비춰 강요미수죄가 성립하는지를 검토한 내용이다. 박 검사는 “비록 접근할 수 있는 자료가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에 국한되지만, 그 자료를 통해서 최대한 기초 사실을 파악하고 법리 등을 검토한 후, 그 과정에서 수집한 자료와 법률가이자 검사로서의 제 의견을 관계자를 비롯하여 검찰 구성원들 전체에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 검사는 이보다 3일 앞선 지난달 26일, “검찰의 자체 감찰로는 공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며 법무부가 한동훈 검사장을 직접 감찰하라고 한 지시에 대해 “한 검사장에 대해 검찰이 감찰을 개시한 사건이 없다. 따라서 법무부가 그런 조항을 제시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번 의견서에서 박 검사는 우선 이 전 기자의 언행이 “강요죄의 구성요건인 협박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박 검사는 “일반인으로서는 알기 어려운 내용, 특히 수사 주체의 수사 의지, 목표 등이 다수 포함돼 있어 그 내용을 거듭 고지받는 입장에서는 그런 내용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채널에이 기자가 자신에 대한 수사에 관련하여 영향력을 가진 사람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상대방 입장에서는 채널에이 기자가 고위직 검사의 대리인 내지 사자로서 전하는 말로 인식할 여지가 크다”고 짚었다. 또 “채널에이 기자의 지속적 수사 단서 제공 요청은 그 자체로써 그러한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경우 자신과 가족에 대해 가혹한 검찰 수사가 이뤄질 것임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다.
박 검사는 “확실하게 수사하라는 윤 총장의 지시도 있었다”, “수사는 강하게 돌아가고 결국 타깃은 대표님과 정관계 인사들이 될 것이다”, “그만큼 대표님의 형량은 올라간다. 14년 6개월은 몹시 긴 시간이다”, “가족까지 처벌을 받게 된다면 집안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게 된다”며 이 전 기자가 이 전 대표와 대리인에게 해악을 고지(협박)했다고 볼 수 있는 47건의 발언을 정리했다. 또 “검찰하고도 다 얘기했다”, “대검 높은 검사장이 있는데 특정한 방식으로 도와줄 수 있다고”, “통화한 사람이 윤석열이랑 가까운 검사장이다. 더 이상 최측근은 없다”는 등 이 전 기자가 이 전 대표의 대리인과의 대화 녹취록에서 “고위직 검사와 이 사건에서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26건의 발언도 제시했다.
박 검사는 이런 사실과 대법원 판례를 종합하면 강요미수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봤다. “고지자(채널에이 기자)가 제3자(검찰)의 행위를 사실상 지배하거나 제3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것으로 믿게 하는 명시적·묵시적 언동”이 있었거나 “제3자의 행위가 고지자의 의사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것으로 상대방(이 전 대표)이 인식한 경우에 한해 고지자가 직접 해악을 가하겠다고 고지한 것과 마찬가지의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는 판례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 전 기자가 검찰을 움직일 영향력이 실제로 있었는지를 따지기 전에 그의 발언으로 이미 이 전 대표가 위협을 느낀 순간 협박에 따른 강요죄가 성립된 것이며 실제로 이를 한동훈 검사장과 모의했는지는 향후 수사에서 밝혀야 할 부분이라는 얘기다.
이 전 기자의 언행을 향후 수사와 관련된 부분(①), 자신이 수감자에게 해 줄 수 있는 부분(②), 자신의 배후에 고위직 검사가 있다고 명시·암시적으로 말하는 부분(③)으로 분류한 박 검사는 ‘대검 실무진이 강요미수 무혐의 의견을 냈다’는 보도에 대해 “그 보고서를 접하지 않아 그러한 의견의 도출 경위나 근거는 알지 못한다”면서도 “다만, 검토자들이 ②부분에 대한 부분을 주된 근거로 들거나 ①, ③부분 정보와 관련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혐의없음 의견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과 대검 부장들의 반대에도 강행하고 있는 수사자문단 소집에 대해선 다섯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박 검사는 △채널에이 기자의 언행이 협박에 해당하는지는 기존 법리를 토대로 충분히 결론을 낼 수 있으며 △협박 여부에 대해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이 견해가 달라도 그 차이를 좁히기 위해 외부 전문가의 자문이 필요하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봤다. 또 △채널에이 스스로 기자를 해고했으므로 언론·취재의 자유의 한계를 논할 필요도 없으며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데 피의자의 요청에 따라 전문수사자문단을 소집하는 것은 나쁜 선례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검사는 마지막으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충분한 수사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수사자문단이 혹시라도 수사 중단 등의 결정을 하고, 그 결정에 맞춰 수사팀이 수사를 종결할 경우, 수사미진이라는 국민적 비난을 받고, 대검이 수사를 중단하도록 한 조치의 배경에 대한 심각한 의혹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검사는 △채널에이 기자가 이 사건 수감자에게 접근한 경위 △편지 발송 등 취재 과정에서 한동훈 검사장과 상의했는지 △편지와 녹취록에 나오는 신라젠 수사 상황에 대해 한 검사장으로부터 들었는지 △한 검사장은 신라젠 수사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는지를 객관적 증거로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채널에이 진상보고를 통해 이 전 기자가 자신의 노트북을 포맷하고 휴대전화를 초기화했으며 고위직 검사와 보이스톡을 이용해 대화했다는 정황이 확인됐다며 “수사팀으로서는 고위직 검사로 지목된 한동훈 검사장의 휴대폰을 확보해 그 내용을 확인할 수밖에 없고 관련 강제수사는 충분히 합리성이 있다”고 밝혔다. 박 검사는 “혐의 유무에 대해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사이에 견해가 갈려 전문수사자문단 등의 소집이 필요하더라도 그 소집은 수사가 이루어진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인 지극히 당연하다”고 밝히며 글을 마쳤다.
윤 총장이 검-언 유착 의혹 수사지휘를 일임했다고 밝힌 대검 부장회의에서도 지난달 초 강요미수죄 성립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도출됐다. 당초 5명의 대검 부장 전원이 강요미수 적용에 긍정적이었으나 그 뒤 진행된 부장회의에서는 반대 의견을 가진 레드팀 역할을 배정해 토론이 진행됐다. 토론 뒤 ‘동그라미(성립), 세모(유보), 엑스(성립 안 됨)’로 강요미수 성립 여부를 표결한 결과 동그라미 2표, 세모 3표가 나왔고 ‘강요미수죄가 성립 안 된다’는 의견은 하나도 없었다. 당시 대검 부장회의는 윤 총장이 ‘강요미수 혐의가 성립되지 않으니 회의에서 토론해달라’고 요청함에 따라 소집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