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25일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의전화 회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과 차별적인 군형법 폐지를 주장하며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시위를 벌이는 장면.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성인 10명 중 9명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응답자들 대부분은 코로나19 이후 ‘나도 차별의 대상이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답했다.
23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8.5%는 한국 사회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차별 금지를 법률로 제정하는 방안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3월 인권위가 실시한 ‘혐오차별 국민인식조사’에서 같은 질문을 했을 때 응답자의 72.9%가 찬성 의견을 밝혔던 것에 견줘 1년여새 찬성 비중이 15.6%포인트 높아졌다. 이번 설문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인권위의 의뢰를 받아 지난 4월 22~27일 전국 성인 1000명(신뢰 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종교단체 등이 주로 공격하는 ‘성적 지향∙정체성’ 항목과 관련해서도 응답자의 73.6%가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과 같은 성소수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정의당 등 소수 야당과 인권‧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힘이 실리게 된 셈이다.
이와 관련해 코로나19 사태가 차별과 혐오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넓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코로나19 국면에서 ‘누군가를 혐오하는 시선 및 행위가 결국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생각을 해봤다고 응답한 비중은 91.1%에 달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차별‧혐오가 일어났다고 생각한다’는 69.3%에게 차별‧혐오 대상이 된 집단을 묻자 종교인(48.3%), 외국인‧이주민(14.4%), 특정 지역 출신(13.6%) 순으로 응답이 나왔다. 실제로 특정 지역 또는 공동체에 바이러스가 확산하고 있다는 발표가 나오면 해당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이 급증하는 등 코로나19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을 드러내왔다.
많은 응답자들은 한국 사회 내 차별‧혐오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짚었다. 응답자의 82%가 한국 사회 차별이 심각하다고 답했으며, ‘차별이 과거에 비해 점점 심화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10명 중 4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차별이 심화되는 가장 큰 이유로는 ‘경제적 불평등’(33.3%), ‘다양성 존중 의식 부족’(25.8%), ‘경쟁 심화’(16.0%), ‘정치인‧언론 조장 확산’(15.5%) 등을 꼽았다.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차별 3가지를 묻는 질문에선 성별(40.1%), 고용형태(36.0%), 학력‧학벌(32.5%), 장애(30.6%)에 따른 차별이 꼽혔다.
한국 사회가 차별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의견이 모였다. 응답자의 72.4%가 지금과 같은 수준의 대응을 이어갈 경우 사회적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답했으며, 81.4%는 범죄를 야기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차별이 점점 완화되거나 해소될 것이라고 응답한 비중(32.1%)의 갑절을 훌쩍 넘긴 수치다.
구체적인 대응책을 묻는 질문에선 ‘국민인식 개선 교육‧캠페인 강화’(91.5%), ‘인권‧다양성 존중 학교교육 확대’(90.5%), ‘차별 금지 법률 제정’(88.5%) 순으로 동의하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박윤경 기자
yg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