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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프리랜서를 좌절시킨 숨은 질문 ‘나는 무슨 일을 하는 누구인가’

등록 2020-06-20 11:53수정 2020-06-20 12:14

[토요판] 현장
‘서울시 코로나19 피해 특고·프리랜서 지원금’ 상담기

서울시 특수고용·프리랜서 50만원 지원
중위소득 100% 이하, 수입 감소 30%
증명하기 위해 10가지 서류 제출해야

접수 상담하며 만난 위기의 얼굴들
서류 보느라 얼굴 못 보고 대답만 하는데
할머니의 갑자기 훌쩍 우는 소리 들려
‘내 얘기를 들어주니까 눈물이 나와요’

생계 무관한 가족의 의료보험료 탓에
수입 감소 증명하기 어려운 사정으로
계약서 한장 쓰기 어려운 처지 때문에
아무리 항의해도 지원금 못 받는 사연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 지난 3월31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통일적인 코로나19 피해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왼쪽) 코로나19 영향으로 일감이 줄어든 퀵서비스 노동자들이 4월27일 오후 서울 중구 장교빌딩 앞에서 콜을 기다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 지난 3월31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통일적인 코로나19 피해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왼쪽) 코로나19 영향으로 일감이 줄어든 퀵서비스 노동자들이 4월27일 오후 서울 중구 장교빌딩 앞에서 콜을 기다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에세이스트 최고운씨가 ‘서울시 코로나19 피해 특수고용·프리랜서 특별지원금’ 신청서류 접수창구에서 상담자로 일한 경험을 보내왔다. 힘든 사연을 하소연할 곳이 없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흘린 60대 여성, 분명 수입이 줄어 생계 위협에 시달리는데도 서류로 증명하기 어려운 이들을 만난 이야기가 담겼다. 그 자신도 프리랜서인 필자가 고용보험도 없이 코로나 파고를 헤쳐가는 이들의 사연을 전한다.

5월11일부터 서울시 중랑구청과 관악구청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지 2주째 되는 아침이었다. 월요일엔 유독 사람이 몰리긴 하지만, 아침부터 비 소식이 있어 조금은 기대했다. 오늘은 조금 한산하기를. 매일 100명이 넘는 민원인을 대면하는 일은 충분히 각오를 했음에도 쉽지 않았다. 단순히 서류를 떼러 오는 것도 아니고, 나라에서 주는 현금 50만원을 받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매우 심각하고 예민해진 사람들이었다. 나는 ‘서울시 코로나19 피해 특수고용·프리랜서 특별지원금’ 신청서류 접수창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우산을 털고 들어서니, 창구가 열리는 오전 9시가 되기도 전에 대기 번호 1번을 받고 앉아 계신 60대 할머니 한 분이 보였다. 손소독제로 손바닥을 한번 더 닦고 접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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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건강보험료, 중위소득이 뭐길래

할머니는 1인 가구로 홀로 지내며 생계를 위해 가사도우미와 식당 일을 비정기적으로 하다가 코로나로 일이 끊어진 상태였다. 서류를 접수하면서 간단한 사실 확인을 위해 이것저것 형식적인 것을 여쭤보았다. ‘다행히 노무 미제공 확인서를 잘 가져오셨네요.’ ‘파출부 나갔었는데 오지 말라거든요.’ ‘코로나로 방문이 안 되시니까 그러시겠어요.’ ‘그래 가지고 지금 복숭아나무요, 그거 사다리 타고 하는 거래요. 어디 지방에 일이 있대서 비나 그치면 목요일쯤 가보려고요.’ ‘네 선생님, 과수원에는 또 코로나로 이주노동자분들 못 오셔서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더라고요? 활력 있게 잘 다니시고, 참 대단하셔요.’ 서류를 확인하느라 얼굴도 못 보고 대답만 해드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훌쩍 우는 소리가 들리는 거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눈이 빨갛게 다 젖으셨다. ‘왜 그러세요. 선생님, 어디 불편하세요?’ ‘아니에요. 누가 내 얘기를 들어주니까 눈물이 나와요. 미안해요.’ 마스크와 안경으로 꽁꽁 감춘 얼굴 위로 눈물이 흐르려는 걸 꾹 참았다. 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그런 이야기 들어줄 이 하나 없는 삶이 뭐가 그리 미안하다고. 코로나로 취약계층은 더 취약해지고 빈부격차는 더 벌어질 텐데, 매일 이런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내 마음도 비구름을 잔뜩 널어놓은 하늘처럼 어두컴컴해지는 기분이었다.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따라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정부와 각 지자체는 긴급재난지원을 명목으로 다양한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모두가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고 사용처는 어디인지, 관심만큼 혼란도 컸다. 지난 5월 초, 서울시 역시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특고·프리랜서 노동자를 대상으로 현금 50만원의 특별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원 대상자는 2020년 5월4일 기준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서울이고, 고용보험 미가입 상태이며, 건강보험료 기준으로 중위소득 100% 이하여야 한다. 지원금을 받으려면 코로나19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된 2월23일 이후 20일 이상 일을 하지 못했거나, 올해 3~4월 평균수입이 1~2월 또는 전년도 월평균 소득과 비교해 30% 이상 감소해야 한다. 이 기준에 해당한다면 신청 기간(5월11~22일)에 특별지원비 신청서, 건강보험 자격확인서 및 납부확인서, 소득감소 확인서와 입증서류 등 10가지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이렇게 복잡한 기준이 필요한 이유는 예산의 한계 때문이다. 책정된 예산은 89억원(국가 예산 30억원, 시 예산 59억원), 예산에 따라 지급 가능한 대상자의 수는 1만7800명이다. 공고문을 살피며 생각했다. 저소득층 프리랜서 노동자 중에서도 코로나로 인해 수입이 감소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건 알겠는데, 서울에는 분명 1만7800명보다 훨씬 많은 대상자가 살고 있을 것이다. 고용노동부 연구용역 기준으로 택배기사, 대리운전기사, 학습지 방문교사, 외근 서비스직 등 특수고용노동자가 220만명으로 추산되고, 여기에 프리랜서 등을 포함한 고용보험 사각지대의 취업자는 1350여만명에 이른다. 한국 사람 5명 중 1명꼴로 서울에 사는 만큼 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의 비율도 그 이상일 것이다. 따라서 증빙을 위해 서류를 제출하라는 것일 텐데, 제대로 된 계약서 한 장 쓰기 어려운 처지의 프리랜서들이 과연 어떻게 자신의 처지를 서류로 증명할 수 있을까?

방과 후 교사로 일하고 있는 40대 여성의 사연은 이랬다. 코로나로 학교가 문을 닫아 몇달째 소득이 없는 건 확실했다. 문제는 건강보험이었다. 아이들은 이혼한 전남편의 피부양자로 들어가 있었고, 자신은 부산에 살고 있는 직장가입자인 아버지의 밑으로 들어가 있었다. 전남편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서 건강보험 관련 서류를 가져올 수 없었다는 사정은 충분히 납득했지만, 제출서류 10개 중에서 1개라도 빠지면 접수가 불가능했다. 게다가 신청인 아버지의 건강보험료는 중위소득 100%를 상회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딸의 생계를 부양하고 있지 않아도 건강보험료 기준 때문에 탈락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소득 감소가 확실한 사람 중 상당수가 이 구간에서 탈락했고, 거의 모든 사람이 항의했다. 지급 기준이 그렇다는 말 외엔 달리 설명할 방법도 없었다.

대리운전기사로 일한다는 60대 여성은 이 문제로 이틀간 항의방문 했다. 유일하게 직장이 있는 사위 밑으로 모든 가족이 피부양자로 들어가 있을 뿐, 용돈 한 푼 안 주는 사위 때문에 자신이 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게 말이 되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설명해야 하는 중위소득 100%가 뭐기에. 중위소득이란 모든 가구를 소득 순서대로 줄을 세웠을 때, 정확히 중간에 있는 가구의 소득을 뜻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만약 그 줄의 맨 앞 어딘가에 있다면, 맨 끝에는 주머니에 100원도 없는 누군가가 서게 되는데, 그 줄을 정확히 반으로 잘랐을 때 기준이 중위소득 100%가 되는 것이다. 중위소득 100%인 1인 가구의 건강보험료(지역가입자) 8만6천원은 뭘 의미할까? 건강보험료 기준표를 보면, 한달 평균 소득이 175만7천원이 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서울 관악구청 건물 안에 ‘서울시 코로나19 피해 특수고용·프리랜서 특별지원금’ 신청 안내막이 서 있다. 최고운 제공
서울 관악구청 건물 안에 ‘서울시 코로나19 피해 특수고용·프리랜서 특별지원금’ 신청 안내막이 서 있다. 최고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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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손으로 접수창구를 찾은 20대 배우

이런 일도 있었다. 50대 탁송기사는 조끼에 휴대폰을 주렁주렁 달고 나타나 접수 중간에도 콜을 받느라 정신이 없다. 탁송기사는 콜 건수를 기준으로 소득 감소를 증명해야 하는데, 이 기사는 소득 감소의 비교 기준이 되는 1~2월 소득이 3~4월에 견줘 별 차이가 없었다. 이미 1월부터 코로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위해 2019년 전체소득 평균과 올해 3~4월 소득을 비교해 감소폭이 큰 쪽을 선택하도록 했지만, 지난해엔 건설 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대부분의 시간을 수술과 재활로 보내느라 일 자체를 거의 하지 못했다. 결국 30% 소득 감소 기준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통장거래내역서를 꼼꼼하게 살피며 아무리 머리를 맞대고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3~4월의 평균 소득은 60만원 정도인데, 지난해 평균 소득이 80만원쯤 됐다. ‘아가씨도 고생했지만 나도 하루 일당 날렸네.’ 기사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갔다. 직전에 다녀간 정보기술(IT) 분야 프리랜서 기획자는 어떻게 중위소득 100%에 들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월평균 700여만원을 벌다가 코로나로 인해 350만원으로 수입이 줄어든 것을 증빙해서 접수가 가능했는데 말이다. 공정한 집행을 위해 최대한 까다로운 서류 기준을 세웠지만, 절박한 사연은 너무나 다양해서 서류 기준 자체에 대한 회의가 들게 했다.

프리랜서들이 직면한 문제는 소득 감소를 증명하는 것보다 훨씬 근본적인 것에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제출서류 2번 ‘자격 확인’부터 난관인 것이다. 재난 상황이 아니어도 프리랜서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분명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명확한 명함 한 장이 없기 때문에 내가 누군지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빈손으로 접수창구를 찾은 무명의 20대 배우는 대체 무엇을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상담을 요청했다. 지금까지 계약서를 쓰고 일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배우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었고, 유명한 작품에 출연한 적도 없어 인터넷에 이름을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 출연 이야기가 오갔던 연극 공연이 취소된 건 대관사이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가 그 공연에 출연하기로 한 근거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자신이 누군지 증명할 수 없던 그는 접수를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최근 시작한 건물 청소를 하기 위해 출근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엔 공사장이 모두 쉬어서 유난히 일용직 노동자들로 붐볐다. 근로확인서를 써줄 만큼 관계성이 있는 계약 상대자가 없는 이들에게 스스로 30% 소득 감소를 증명하는 일은 너무 어려웠다. 그날그날 현금으로 받아온 일당의 합이 얼마인지 확인할 수 있는 통장거래내역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더러는 A와 B를 더해 2로 나누면 평균 소득이 된다는 개념부터 설명해야 했는데, 많은 이가 숫자의 복잡함을 이해하지 못한 채 포기하고 돌아갔다. 한정된 예산이나마 서울시가 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숨통을 터주기 위해 특별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더 근본적인 곳에 있었다. 사회가 필요에 의해 비정규직을 만들었는데도 고용보험도 없는 상태에서 노무를 제공하고 있는 이들의 불안정성에 더 큰 대가를 지급하기는커녕 이들을 보호할 사회안전망마저 너무나 허술하다는 사실이다. 먼저 계약서를 쓰자고 하거나 노무확인서를 요구할 수 없는 이들은 콜센터상담원, 대리운전기사, 관광가이드, 돌봄교사, 가사도우미, 운동 트레이너 등 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들이다. 코로나 감염 위험군에 속하면서 생계를 위협받다가 누구보다 먼저 잘려 나가는 노동자의 대부분이 이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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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팬더믹’을 대비할 때

이번 ‘서울시 코로나19 피해 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 특별지원금’에 책정된 세금은 98억원. 이를 공정하게 집행하는 데 들어가는 행정력은 그 이상일 것이다.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접수된 오프라인 신청자 수는 1만1천여명, 인터넷 중복접수로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온라인까지 합치면 대략 2만8천~3만명이 신청했다. 접수와 심사 끝에 예정보다 열흘 늦어진 6월15일 9800명에게 1차 지원금이 나갔고, 나머지는 다음주 지급될 예정이다. 이들이 준비한 서류 하나하나는 힘들게 살아왔지만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프리랜서들의 삶 자체였다. 정보에 어두워 지원조차 하지 못한 프리랜서들도 상당수 존재할 것이며, 이들은 고용노동부에서 시행하는 ‘프리랜서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신청하기 위해 새로운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코로나19의 종식은 요원하고, 비대면 문화가 일상화됨에 따라 저소득층 프리랜서들의 일자리는 계속해서 감소할 것이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꾸는 데는 단 3개월이 걸렸지만,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장기적으로 악화할 것이다. 노동의 최전선에서 분투하는 프리랜서들의 삶이 점점 더 내몰릴수록 계층 갈등과 양극화는 심해질 것이고, 결국에는 이를 수습하기 위해 사회는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재난 속에서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는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이 긴 터널을 버텨낼 수 있도록 일시적 시혜가 아닌 장기적인 답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최고운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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