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 크리스(가명·34)는 아내 멜라니(가명·29)와 함께 친구들이 사는 집으로 이사하는 중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수입이 줄어든 탓에 독립적인 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꽤나 신사적인 해고네?
커다란 배낭에 옷가지를 잔뜩 넣었더니 꽤나 무겁네요. 멜라니도 배낭에 눌려 계단을 잘 못 올라갑니다. 내가 배낭 밑을 손으로 받쳐주니 좀 나아졌어요. 우리는 지금 전철 타고 이사하고 있어요. 살던 방 보증금을 아직 돌려받지 못해서 본격 이사는 며칠 뒤에나 하게 될 것 같아요. 오늘은 새로 이사 갈 집을 미리 청소하려고 가는 길이죠. 이렇게 짐을 조금씩 옮겨놓으면 당일 이사를 좀 쉽게 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E-9(비전문취업 비자) 노동자입니다만, 아마 당신은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를 것 같군요. 한국 사람들 중에 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극히 일부거든요. 고용허가제라는 제도가 있어요. 한국 정부가 우리 필리핀 정부와 계약해서 노동자를 데려오는 제도지요. 필리핀 말고도 계약한 나라가 15곳 더 있다고 해요. 지금 일하고 있는 유리병 만드는 회사에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에서 온 E-9 노동자가 한명씩 있어요. 다른 비자를 가진 이주노동자는 꽤 많고요. 지난해 10월부터 이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니까 이제 8개월째인데, 지난 4월 초에 회사는 나를 포함한 E-9 노동자 3명에게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라는 새로운 오더를 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일거리가 없다고요. 당연히 제 수입도 그만큼 줄어들었어요. 이상한 것은 다른 비자를 가진 외국인한테는 전과 같이 일을 시킨다는 겁니다. 항의해도 소용이 없어요. 이유를 물어도 대답을 안 해줘요. 참으로 환장할 노릇입니다!
멜라니도 같은 문제가 생겼어요. 화장품 용기를 만드는 회사는 두달째 직원 26명을 월화팀, 수목금팀으로 나눠 일을 시키고 있어요. 회사가 곧 문을 닫는다고 해요. 지난달에 멜라니가 해고통지서를 받아 왔어요. 한국에서 몇년 일했지만 해고통지서 같은 것을 주는 회사는 처음 봤어요. 내가 말했어요. 꽤나 신사적인 해고네?
아무리 생각해도 일주일에 이틀로는 먹고살 수 없어요. 집에 돈 보내는 건 완전 포기하더라도 말이죠. 일단 살 방법을 찾자, 생각한 나는 회사에 그만두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고용허가제에 따라 회사가 나를 해고해주면 다른 회사를 찾을 기회가 생기니까요. 이것도 위험부담이 크기는 해요. 내 비자가 내년 4월에 끝나니까 앞으로 11개월 남았어요. 회사들은 비자 짧게 남은 노동자를 별로 원하지 않아요. 새 회사를 찾는 동안 남은 비자는 점점 줄어들 테고, 회사가 나를 선택할 가능성도 줄어들 겁니다. 그래도 이틀만 일해서는 먹고살지도 못할 테니 용기를 내본 거예요. 새 일자리를 빨리 찾을 수 있기를!
회사는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급한 내 사정과는 달리 2주 뒤에나 고용노동부 고용센터에 내 ‘근로계약해지’ 내용을 신고해주겠다고 합니다. E-9 노동자는 사장님이 허락해줘야만 회사를 그만둘 수 있다는 거, 당신은 혹시 아나요? 그런 게 어디 있냐고요? 내 말이 맞으니 그냥 믿어도 괜찮아요. 사장님이 해고했다고 고용센터에 신고해줘야, 비로소 나는 고용센터에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할 수 있고, ‘고용센터에서 알선해주는 회사’에 갈 수 있어요. 이 말도 설명이 좀 필요하죠? 만약 내가 엄청 운이 좋아서, 일도 마음에 들고 월급도 안 밀리는 회사를 찾았다고 쳐요. 하지만 내가 원하고 그 회사 사장님이 아무리 나를 고용하고 싶어도 나는 그 회사에서 일할 수 없어요. 왜? 그 회사는 ‘고용센터에서 알선한 회사’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것으로 끝이 아니죠. 구직기간은 단 3개월, 3개월 내에 회사를 구하지 못하면 출국해야 해요. 혹시 당신, 끝내주는 엄격함에 놀라 혀를 내두르고 있나요?
나는 필리핀에서 간호사로 일했어요. 그 기간이 길지는 않아요. 학교 졸업하고 6개월 일했는데 월급이 한국 돈으로 10만원 정도였어요. 일은 좋은데 너무 월급이 적으니 자꾸 딴생각이 들었어요. 간호사는 나중에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으니 우선 돈을 벌자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한국어를 배워 시험을 보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한국까지 왔어요. 2011년에 처음 왔는데, 운이 나빠 오자마자 몸이 아팠어요.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어서 필리핀으로 돌아가 몸이 회복된 뒤에 다시 와서 1년 일하고 갔어요. 그 뒤로 작은형이 와서 3년간 일했는데, 형은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일을 하면서 허리가 많이 상했어요. 가족들이 그만 고생하라고 형을 들어오게 하고, 다시 내가 와서 4년째 일하고 있어요.
큰형은 두바이에서 일하고 있는데 거기도 요즘 코로나 때문에 힘들다고 해요. 나라 전체가 록다운(봉쇄)되어 일을 못 했대요. 너는 일이라도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형이 전화로 말했어요. 두바이는 이주노동자를 중심으로 코로나 환자가 많이 발생해서 더 비상이라고 해요. 이주노동자들은 돈이 없으니 개별 거주를 하지 못하고 숙소에 수십명이 같이 사는 형편이라, 코로나가 이주노동자 사이에 삽시간에 퍼졌대요. 큰형이 사는 집은 아직 무사하다니 그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죠. 엄마는 자주 큰형과 나에게 전화해서 괜찮으냐고 묻곤 해요. 예,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엄마, 하고 대답하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아요. 많이 힘들어요. 아마 두바이의 형도 혼자 견디며 괜찮다고 말하고 있을 겁니다.
달걀은 꼴도 보기 싫다고 합니다
두바이 형이 그러는데 케이(K) 방역이 훌륭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대요. 네가 그 나라에 있어서 다행이야, 나는 괜히 어깨가 으쓱했어요. 정말 그렇지요. 다른 나라들은 엄청나게 감염자가 늘어나고 많은 이들이 죽고 있는데 한국은 잘 막아내고 있잖아요. 하지만 외국인인 내 입장에서는 기가 막힌 점이 많아요. 코로나가 막 확산되던 무렵 정부가 시민들에게 마스크를 반드시 쓰라고 권장하자,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났잖아요. 마스크를 골고루 공급하기 위해 약국에서 5부제로 마스크를 팔더군요. 그런데 외국인에게는 안 판다는 거예요. 마스크가 동났을 때는 누구나 다 못 사는 형편이니 우리도 이해했어요. 그런데 마스크가 있어도 외국인에게는 안 판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정말 숨이 콱! 막혔어요. 왓? 내가 잘못 들은 건가? 하지만 한국어를 잘하는 어떤 외국인(아마 외국 국적을 가진 한국 동포인 것 같았어요)이 약사에게 “내 돈 주고 내가 사겠다는데 안 판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요? 이렇게 차별해도 되는 거요?” 하며 분통을 터트리는 걸 보니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거였어요. 외국인이 걸리면 한국인에게도 옮길 게 뻔한데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요? 한동안 나와 멜라니는 커다란 손수건을 마스크 대신 사용했어요.
정부에서 시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준다는 뉴스를 봤을 때도 그랬어요. 우리도 주려나? 물론 그럴 리가 없지요. 밥과 달걀이 담긴 접시를 내려다보며 나는 생각했어요. 나도 한국에서 내라는 세금을 다 냈는데 왜 우리에게는 안 주는 거지?
이틀만 일하고 다른 날은 집에서 뒹굴자니 뉴스도 더 많이 보고, 속 터지는 일도 더 많아졌어요. 외국인이 코로나에 걸렸다는 뉴스가 나오면, 한국 사람들은 그 외국인의 출신 나라까지 통째로 비난하며 혐오와 조롱을 쏟아붓곤 했어요. 필리핀 사람이 걸려서 우리도 그런 일을 당할까 봐 조마조마해요.
어쩔 수 없이 새 일자리 찾는 것은 2주 뒤로 미뤘어요.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싶지만 그랬다 걸리기라도 하면 큰일 나니까 그것도 포기하고, 오늘부터 며칠간 이사를 하려고요. 비자 끝나는 내년 4월까지 고향 친구들이 있는 지역에서 일하려고 해요. 외떨어져 지내자니 외롭기도 하거니와 생활비를 아껴야 하거든요. 지금까지 살던 방은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가 30만원이죠, 가스, 전기, 인터넷 비용에 두 사람 식비까지 합치면 아무리 아껴도 월 80만원은 들어요. 지난 한달간 돈 아끼느라 고기를 전혀 안 먹고 밥과 달걀만 먹었어요. 멜라니는 이제 달걀은 꼴도 보기 싫다고 합니다. 나도 그래요. 냄새도 싫을 지경이죠. 그래서 생활비를 효과적으로 줄이기 위해 고향 친구들이 사는 집에서 더부살이하려고 해요. 방이 두개라고, 작은방을 우리더러 쓰라고 했어요. 친구들은 다행히 회사에 잘 다니고 있대요. 친구들이 말했어요. 크리스, 힘들면 들어와서 같이 살자. 걱정 말고 와. 참 좋은 친구들이죠!
친구는 이번주에 야간이라 낮엔 자야 한다며 알아서 들어오라고 비밀번호를 알려줬어요. 주소를 가지고 찾아가니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3층 건물입니다. 1층은 네 집쯤 사는 것 같고, 2층은 두 집이 있어요. 아마 가장 넓은 3층은 주인집이 있는 것 같아요. 친구 집은 2층에 있어요. 올라가며 보니 현관문에 두꺼운 비닐이 덮여 있어요. 유리가 깨져서 아예 비닐로 현관문 전체를 감싼 것이었어요. 다행히 비밀번호가 맞아요. 제대로 찾아온 거지요. 문을 여니 집 안에서 찌든 담배 냄새가 와락 밀려나옵니다. 거실에는 거대한 그릇에 새까맣게 전 담배꽁초가 가득 들어 있어요. 나도 담배를 피우지만 이건 좀 너무한데, 나는 멜라니 표정을 슥 훔쳐봤어요. 얼굴을 잔뜩 찌푸렸군요. 그냥 모른 척했어요. 현관에서 신발을 벗을까 말까 잠시 망설입니다. 바닥이 너무 더러워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기가 좀 그래서 말이죠. 그래도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인데 신은 벗고 들어가야겠지요? 사내 녀석들만 살아서 그런가 심하게 더럽네, 하고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어요. 멜라니는 계속 입을 꾹 다물고 있어요.
멜라니가 ‘20만원’의 기쁨 오래 기억했으면
집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친구 녀석들이 너무 청소를 안 하는 게 문제로군요. 거실 천장에 달아놓은 빨래걸이에 속옷이며 양말 나부랭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요. 그 바로 밑에 담배꽁초 그릇이 놓여 있으니 마치 담배 냄새로 훈제라도 하는 듯 보입니다. 아내 눈치를 보며 “으웩, 이놈들 정말!” 하고 투덜거렸어요. 하지만 이 녀석들은 말도 못하게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이 집엔 이미 4명이 함께 살고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 부부에게 방을 하나 내주려고 4명이 다 큰방 하나에서 지내겠다고 해요. 그 말을 기억하고 고마움이 일렁이는 마음으로 작은방을 열었어요. 그 순간 나의 고마움은 분노로 바뀌었어요. 우리에게 쓰라고 준 방은 거의 창고였어요. 아마 친구들이 정리하기 귀찮으니까 마구 몰아넣어서 이 지경이 된 것 같아요. 이 잡동사니를 어떻게 치우고 우리 짐을 가져오지? 한숨이 저 깊은 속에서부터 푸우우우우 하고 쏟아져 나왔어요. 아 참, 이 친구 집에 있을 거라고 했지! 자고 있는가 싶어 큰방 문을 열어봤어요. 맞네요. 두 녀석이 어두운 커튼으로 창문을 가리고 쿨쿨 자고 있습니다. 둘은 출근했는가 봐요. 나는 조용히 문을 닫아줬어요.
아내는 아무 표정 없이 큰 눈을 깜박이며 집을 둘러보고 있어요. 나처럼 한숨을 쉬지도 않아요. 내가 친구들 집으로 이사 가자고 했을 때 멜라니가 처음 했던 말은, 거기는 얼마 줘야 해?였어요. 먹는 거 포함해서 20만원. 정말? 응. 그럼 가야지 무조건 가야지. 간만에 방긋 웃기까지 했어요. 그때는 나도 친구들이 이 지경으로 살고 있는 줄 몰랐죠. 저 짐을 다 꺼내 정리하고 엄청난 대청소를 해야 하는데, 미안해서 시작하자는 말을 못 하고 있어요. 멜라니가 ‘20만원’의 기쁨을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일꾼. 국경을 넘어와 새 삶을 꾸리고 있는 이주민들은 저마다 깊은 사연이 있다. 떠나온 사회와 살아내야 할 사회에 하고픈 말이 많지만 그 말은 발화되지 못한 채 눈동자에 잠기곤 한다. 그 이야기를 풀어내 당사자 시점으로 전한다. 4주에 한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