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복지 닭고기를 사용하는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치킨집 풍경.
▶ 지난 3월 코로나로 지역 농산물의 판로가 막히자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농가를 살리기 위해 강원도산 감자를 온라인으로 직접 홍보해 완판시켰다. 이를 두고 어려운 시기에 돈을 의미있게 쓰려는 착한 소비다, 깨끗한 농산물로 건강도 챙기고 지역농가도 살리려는 식생활의 ‘미닝아웃’(신념 소비)이다, 여러 해석이 나왔다. 코로나 사태로 자연 만물이 건강공동체라는 인식이 퍼졌고,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사회적 가치와 환경적 영향을 고려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국내산 동물복지 치킨과 달콤, 짭짤한 소스가 어우러진 믿고 먹을 수 있는 치킨….”
지난 10일 방문한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한 치킨집은 메뉴판에 동물복지 닭고기를 사용한다는 안내가 있었다. ㄱ치킨 프랜차이즈의 점주 윤아무개씨는 “동물복지에 관심 없는 분들도 메뉴판을 보고 ‘동물복지’가 뭐냐 묻는다. 그러면 제가 ‘사육, 도계, 유통 단계에서 친환경적으로 하는 닭고기예요’ 설명을 해드리는데,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했다.
이 가게에 종종 간다는 연세대 치킨동아리 ‘피닉스’ 회원 대학생 김진경(가명·21)은 “처음엔 맛이 있어서 갔는데 알고 보니 동물복지 닭고기라고 해 더 자주 가게 됐다. ‘치킨 동아리’라 하면 육식을 즐기며 동물권에 무지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고기 한 점이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꼭 필요한 만큼 남기지 않고 먹는 것도 좋은 태도”라고 말했다. 김씨는 “생태학 수업을 들은 뒤 채식까진 아니더라도 인도적으로 자란 고기를 먹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자신의 정치사회적 신념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돈을 쓰려는 ‘미닝아웃’(신념(meaning)+커밍아웃) 소비 바람이 식생활에도 불고 있다. 단순히 배를 채우고 몸에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환경적 영향을 고려해 음식을 선택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고기를 사먹을 때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자란 동물복지 고기를 고르거나, 과일을 먹더라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저탄소 과일을 사먹는 것, 농축산물을 살 때 지역 농가에 보탬이 되는 방식으로 사는 것 등이다. 지난 3월 코로나로 강원도산 감자의 판로가 막히자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온라인으로 직접 홍보해 완판시킨 것도 의미있게 돈을 쓰려는 소비자들의 미닝아웃 움직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아무거나 먹지 않는 윤리적 식생활
이런 변화는 코로나19 감염증 확산을 계기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건강하고 깨끗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이코머스 회사에선 유기농·친환경 상품의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늘었다고 밝혔다. 이마트는 올해 1~5월 동물복지 달걀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8.9%, 저탄소 과일은 13.6%가 증가했다고 집계했다. 자연방사한 닭에서 얻은 ‘동물복지 자유방목 유정란’도 매출이 2배 이상 늘었다. 마켓컬리는 올해 1월부터 현시점까지 동물복지 상품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6% 늘었는데, 특히 동물복지 닭고기는 155% 많이 팔렸다고 했다. 저탄소 과일, 친환경 생필품까지 친환경 상품의 총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73% 늘었다.
코로나 사태는 ‘네가 건강하지 못하면 나도 건강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확산시켰고, 인간을 넘어 동식물까지 모든 자연물은 하나의 건강공동체로 연결되어 있다는 ‘원헬스’(One Health) 개념이 다시 주목받았다. 이 개념은 2018년 보건복지부가 우리나라 새 건강정책 패러다임으로 제시한 것으로 자연물 중 어느 하나 건강하지 못하면 인간도 건강하지 못하다는 개념이다.
지난 4월 유튜브 한 건강 채널에 ‘한달 1인 식비 8만원으로 유기농만 먹이는 아들 셋 맘의 꿀팁’이 올라왔다. 코로나로 학교가 아닌 집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집밥을 매일 챙겨줘야 하는 부모 시청자들의 호응이 컸다. 인스타그램 계정 ‘오가닉 테이블’ 운영자 이연화씨는 이 영상에서 유기농 채소 구입과 보관, 좋은 기름과 물의 중요성, 무항생제로 구입하는 고기류 등 자신의 식재료 구입법을 소개했다. 이씨는 “(주변에서) 너 그렇게 유기농만 사서 먹이면 식비 어떻게 감당하냐 이야기하는데 그렇지 않다. 좋은 먹거리를 큰 비용 들이지 않고 먹일 수 있다”고 했다. 몸에 안 좋은 음식을 사먹는 외식 한번으로도 몇 만원이 훌쩍 나가는데 그 돈으로 한달간 먹을 유기농 채소, 좋은 기름과 물을 사는 데 쓴다는 것이다.
최근 맘카페 곳곳에서 ‘코로나 종식기원 동물복지 우유 공구(공동구매)’, ‘청정지역에서 온 무항생제 동물복지 유정란 공구’ 움직임이 벌어지기도 하고, 주변에서 친환경농산물꾸러미 구독을 시작했다는 지인들의 말이 들려오기도 한다.
다소 높은 비용을 내고서라도 동물복지 축산물을 사먹겠다는 인식도 상당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보고서’(2018년)에서 성인 2천명을 대면조사한 결과, 일반 축산물에 비해 비싼 동물복지 축산물을 살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이는 59.9%였다. 그 이유는 ‘영양과 품질 등이 우수할 것 같아서’(49.4%), ‘내가 지급한 비용이 동물복지에 보탬이 되어서’(23.1%) 등의 응답이 나왔다. 동물복지 축산물을 구입할 경우 어느 정도 추가 지급할 의사가 있는지에 대해 ‘최대 20%’까지란 응답이 67.5%로 제일 많았다.
소비자들의 인식이 달라지다 보니 기업들도 호응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스타벅스코리아는 앞으로 10년 이내 자사 모든 제품에 ‘케이지 프리 달걀’(공장식 닭장에 가둬 키우지 않은 닭의 알)을 쓰겠다고 선언했다. 두해 전 식품회사 풀무원은 2028년까지 식용란 전체를 동물복지란(개방된 공간에서 항생제를 먹이지 않고 키운 닭의 알)으로 교체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동물복지 생산라인이 있는 닭고기업체 하림 직원들이 계열업체인 동물복지 농장에서 닭의 상태를 살피는 모습. 하림 제공
다 같이 누려야 진정한 ‘신념 소비’
친환경 식료품에 관심이 높아지고 윤리적 소비에 대한 실천이 많아진 만큼 유통구조 개선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지난해 국회 토론회 ‘동물복지 소비전환의 흐름과 촉진을 위한 역할과 과제’에서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판로 구축과 윤리적인 소비라는 사회인식 변화가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동물복지 축산물은 달걀과 일부 닭고기에 그치고 돼지고기와 소고기, 오리고기 등은 동물복지 인증 제품을 접하기 어렵다.
윤리적 식생활은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방식이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동물권 단체 카라 전진경 상임이사는 “윤리적 소비가 식생활의 빈부격차를 만들고 누군가에게 진입장벽이 된다면 윤리적이지 않다”며 “잘 배우고 소득 높은 백인들은 고기를 적게 먹는데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히스패닉은 고기를 많이 먹는다는 조사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천명 중 열명이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보다 천명 다 같이 육식 소비를 조금씩 줄이는 게 낫다. 쓰레기 남지 않게 제철음식을 적당히 먹는 것, 자연스럽게 자란 고기를 소량 먹는 것 등 소박한 밥상이 답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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