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현대제철 당진 공장에서 40도가 넘는 환경 속에 일하다 숨진 일용직 노동자 박아무개(54)씨와 관련해, 회사 쪽이 사전에 ‘고온 작업’과 관련한 고지를 하지 않은 것으로 11일 드러났다. 고온 작업에 대비한 안전수칙이나 온열질환 예방 조처가 제공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고용노동부는 “사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이틀째 작업중지 명령을 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현대제철 외주업체 ‘세원센추리’의 일용직으로 알려진 박씨는 지난 9일 당진 공장 내부 연주(끓는 쇳물을 고체로 굳히는 작업) 공장의 크레인 냉방시설 수리 작업을 하다 이날 오후 4시30분께 쓰러진 채 발견됐다. 끓는 쇳물을 사용하는 공장이라 내부 온도가 기본적으로 높은데, 당시엔 약 43도였다. 위로 올라가는 열기류의 특성상, 박씨가 작업했던 지상 20m 높이의 크레인 쪽 온도는 이보다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견 당시 박씨의 체온은 40.2도였다. 강정주 민주노총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고온 작업이 사망 원인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온열질환을 막기 위한 조처가 사전에 이뤄지지 않아, 박씨가 열사병으로 숨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고 당일 현대제철이 박씨에게 준 작업지시서 격인 ‘일일안전작업허가서’와 ‘안전작업점검표’에는 ‘고소 작업’(높은 곳에서 하는 작업) 관련 사항만 있을 뿐, ‘고온 작업’ 언급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씨는 회사 쪽에서 물이나 냉방기구 같은 고온 작업 대비 물품을 전혀 제공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가 열기를 식힐 적절한 휴식시간을 보장받았는지도 의문이 제기된다. 회사 쪽은 규정에 따라 박씨가 점심시간 1시간10분과 휴게시간 30분(오후2시30분∼3시)을 쉬었다고 밝혔지만, 노조 쪽은 그 시간 동안 20m 높이의 크레인 아래로 내려와 시원한 장소에서 충분한 물과 식염을 섭취하며 쉬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위험작업인데도 ‘2인1조’ 근무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권영국 변호사는 “‘손풍기’처럼 열을 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예방조치가 없었고, 충분히 휴식하지도 못한 것으로 보인다. (쓰러진 채 뒤늦게 발견된 것도) 위험이 있는데도 혼자 일해야 해 생긴 일”이라고 지적했다.
사고 직후 근로환경을 조사한 고용노동부는 “고열 작업을 할 때는 단계적으로 하고 휴식도 자주 취해야 하는데, 박씨가 몇시간 일하고 얼마나 쉬었는지는 살펴봐야 한다”며 그가 고열에 노출된 채 일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부검에서 정확한 사망원인이 나온 뒤, 이 사고가 중대재해에 해당하는지 작업중지 명령을 해야 하는지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회사 쪽은 박씨의 기저질환 등이 원인이 됐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에 권동희 노무사는 “43도라는 고온인데 적절한 안전조치도 없는 작업환경에서 만들어진 돌발적인 사망사고”라며 “기저질환이 있었다 해도 이런 특수한 환경 때문에 숨지게 됐으므로, 중대재해에서 배제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정주 국장은 “현대제철에 많은 고온 작업자들이 있는데 이들이 제대로 보호받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작업중지 명령을 당장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사전에 작업 여건을 제대로 점검하고 고지했는지 살펴보겠다. 근로자들의 사전 건강 확인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금속노조가 집계한 결과 2006년 이후 현대제철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는 이번 사고를 포함해 38명에 이른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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