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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어서 와, ‘빠던’은 처음이지? K-야구가 누른 미국의 ‘웃음 버튼’

등록 2020-06-06 13:53수정 2020-06-06 14:03

[토요판] 현장
미국에서 본 한국 프로야구

ESPN, KBO 개막전부터 매일 중계
캐스터는 집 거실, 해설자는 주차장에서
1리터 커피 마시며 새벽 5시 생중계도

홈런 뒤 배트 던지는 ‘배트 플립’ 열광
미국에선 투수 배려차 불문율 금지돼
“저거야!” 다른 야구문화에 관심
간판 캐스터 ‘응원 댄스’ 따라하기도

‘느린’ 패스트볼, 타자 콘택트 능력 등
한국 야구만의 특징 분석까지 이어져
메이저리그 구단 없는 노스캐롤라이나
NC 선수 이름 외우고, 응원복 주문도
메이저리그 열려도 포스트시즌 중계
<이에스피엔>(ESPN) 누리집에서 한국의 배트 플립 문화를 소개한 내용. ESPN 누리집 갈무리
<이에스피엔>(ESPN) 누리집에서 한국의 배트 플립 문화를 소개한 내용. ESPN 누리집 갈무리

▶ 작년까지 한국 야구팬들은 새벽에 깨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류현진, 추신수 등을 응원했다. 요즘은 반대다. 미국 야구팬들이 새벽마다 한국 야구 배트 플립에 환호하고 나성범, 이정후 등의 이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되새김질 중이다. 엔씨(NC) 다이노스의 ‘NC’가 노스캐롤라이나의 약자라고도 우긴다. 마침 오래 야구를 취재한 김양희 <한겨레> 기자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거주 중이다. 현지에서 본 케이비오(KBO)리그 중계 풍경을 전한다.

“칼 라비치, 라비치~, 나나나 난나나~.”

케이티(kt) 위즈 응원단이 관중 없는 수원 케이티위즈파크 1루 단상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케이티 마스코트는 율동으로 흥을 돋운다. <이에스피엔>(ESPN) 야구 캐스터 칼 라비치가 화면을 보면서 덩달아 춤을 춘다. 지난 6월2일 새벽 5시25분(미국 동부 시각 기준) 미국에서 한국 야구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네 응원가가 먼저 나와서 김이 샜어. 너한테는 마스코트까지 있잖아!”

중계 짝꿍인 메이저리그 해설가 에두아르도 페레스가 투덜댄다. 얼마 전 엔씨(NC) 다이노스 응원단도 그에게 응원송을 보내줬다.

“쟤는 빅또리야.”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이에스피엔> 간판 캐스터 입에서 케이비오리그 막내 구단 케이티의 마스코트 이름이 불릴지. 또 미국에서 영어로 해설되는 한국 프로야구를 실시간으로 볼지.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 자꾸 벌어진다.

<이에스피엔>은 케이비오리그 개막전(5월5일)부터 지금까지 매일 한 경기를 미국 전역에 생중계하고 있다. <이에스피엔>에 중계권을 판 에이클라가 <스포티비>를 운영중이라 실시간 영상 송출 등의 편의를 위해 한국 <스포티비>에서 중계하는 2경기 중 하나를 고르는 것 같다.

5월 초만 해도 세계적으로 라이브 스포츠가 전멸한 터라 <이에스피엔>의 케이비오리그 생중계 결정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전까지 주야장천 옛날 경기, 즉 이미 결과를 뻔히 알고 있는 ‘죽은’ 경기들만 틀어대고 있었으니까. ‘팬더믹 시대에도 스포츠는 살아 있다’는 상징적 메시지도 필요했을 것이다. 결이 다르더라도 야구는 야구니까.

&lt;이에스피엔&gt;(ESPN)에서 5월5일 새벽 1시(미국 동부 시각) 케이비오리그 개막전 삼성 라이온즈와 엔씨 다이노스 경기가 처음 생중계된 뒤 실시간 트위터 반응. 김양희 제공
<이에스피엔>(ESPN)에서 5월5일 새벽 1시(미국 동부 시각) 케이비오리그 개막전 삼성 라이온즈와 엔씨 다이노스 경기가 처음 생중계된 뒤 실시간 트위터 반응. 김양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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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서, 실내 주차장에서 중계

<이에스피엔>의 케이비오리그 생중계는 아주 낯설게 진행된다. 보통 때라면 스튜디오에 다 같이 모여 영상을 보면서 중계할 텐데 <이에스피엔> 중계진은 각자의 집에서 노트북으로 영상을 보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캐스터인 라비치는 코네티컷 자택의 거실에, 페레스는 마이애미 자택의 실내 주차장에 머물며 지구 반대편에 있는, 즉 시차가 13시간 나는 곳에서 열리는 케이비오리그를 생중계한다.

경기가 이곳 시각으로 새벽에 벌어져서가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자택 대기(쿼런틴) 명령 때문이다. 10명 이상 한 공간에 모이지 말라는 명령도 떨어졌다. 이런 탓에 요즘 미국에서는 집 안 서재, 거실 등 각자의 공간에서 영상통화를 하면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만들어간다. 토크쇼의 경우 호스트 혼자 스튜디오에 있고 출연자들을 화상으로 연결하는 식이다.

<시엔엔> 등 뉴스 채널 등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전까지는 기자들이 집 안에서 사건, 사고 브리핑을 하고는 했다. <이에스피엔>이 각자 독립된 공간에서 온라인 화상 화면으로 연결돼 케이비오리그를 생중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에스피엔>은 중계 도중 에릭 테임즈(전 NC), 메릴 켈리(전 SK), 조쉬 린드블럼(전 두산) 등 케이비오리그를 거쳐간 메이저리그 선수들과도 인터뷰를 했는데 이때도 화상 전화가 이용됐다. 대인 접촉 없는 중계 시대가 열렸다고나 할까.

가족들이 옆방에서 잠을 자는 가운데 혼자 거실, 서재, 주차장에 앉아서 텔레비전, 컴퓨터를 보면서 낯선 야구를 중계해야 하는 상황. 가뜩이나 팀, 선수 이름 발음마저 힘들다. 라비치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는 것도 이해가 간다. 또 다른 캐스터인 존 시암비는 새벽잠을 쫓기 위해 중계하는 동안 1리터 이상의 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이에스피엔> 중계진은 맨 처음엔 ‘배트 플립’(방망이 던지기)에만 집중했다. 한국에선 배트의 속어인 ‘빠따’와 ‘던지기’를 합쳐서 ‘빠던’이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시속 155㎞를 던지는 투수들이 흔하고 장타를 펑펑 쳐대는 강타자가 많은 메이저리그에 익숙한 이들이 시속 150㎞ 이하의 투수가 대부분이고 단타가 많은 리그에 흥미를 느끼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배트 플립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타자가 홈런을 친 뒤 방망이를 내던지거나 과한 세리머니를 하면 양 팀이 충돌하는 벤치클리어링까지 각오해야만 한다. 타자의 성공(홈런)은 투수의 실패(피홈런)를 의미하기에 상대를 배려하라는 의미에서 배트 플립 금지는 메이저리그에서 불문율로 통한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와 달리 케이비오리그에서는 배트 플립이 흔하다. 투수들도 거의 거부감이 없다. 상대 투수에 대한 예의로 홈런을 친 뒤 고개를 숙이고 1루로 뛰어가는 선수들도 더러 있지만 배트 플립은 홈런을 자축하는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파울을 쳐도 홈런인 줄 알고 배트 플립을 할 정도니까. 배트 플립이 나올 때마다 <이에스피엔> 중계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깔깔 웃으면서 “저거야!”(That’s it!)라고 외쳐댄다.

에스케이(SK) 와이번스 응원 저지를 입은 김양희씨의 자녀 최원준(12), 최유진(10)이 미국에서 5월27일(현지시각) &lt;이에스피엔&gt;을 통해 중계된 에스케이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김양희 제공
에스케이(SK) 와이번스 응원 저지를 입은 김양희씨의 자녀 최원준(12), 최유진(10)이 미국에서 5월27일(현지시각) <이에스피엔>을 통해 중계된 에스케이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김양희 제공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연기됐던 2020 케이비오리그가 마침내 개막한 5월5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엘지와 두산의 개막전에서 응원단원들이 텅 빈 관중석을 향해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연기됐던 2020 케이비오리그가 마침내 개막한 5월5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엘지와 두산의 개막전에서 응원단원들이 텅 빈 관중석을 향해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미국 팬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노스캐롤라이나 더럼에 거주하는 30대 야구팬 애덤 스튜어트는 “한국 야구에서 잦은 배트 플립을 보면 항상 웃기다. 미국 야구에서 그렇게 하면 선수들끼리 싸움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젊은 야구팬들은 케이비오리그 배트 플립 장면을 에스엔에스(SNS)에 공유하면서 즐거워한다. 배트 플립을 흉내 내는 영상도 에스엔에스에 심심찮게 올라온다.

<야후스포츠>나 <엔비시(NBC)스포츠> 등은 메이저리그에도 젊은 팬들이 즐길 만한 문화가 있어야 한다며 그 예로 배트 플립을 들기도 했다. 배트 플립만큼 화끈한 팬서비스도 없기 때문이다. 관중 입장이 허용되면 케이비오리그 특유의 응원 문화도 미국 팬들의 눈길을 끌 것 같다. 거대 야외 노래방으로 변하는 야구장 모습도 미국 팬들에게는 낯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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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케이비오 팀은?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케이비오리그만의 야구 특성도 콕콕 짚어내고 있다. 소프트볼 선수 출신이자 <이에스피엔> 최초의 여성 야구 해설가인 제시카 멘도자는 “선발 라인업에 있는 6~7명이 하나같이 앞발을 들고 하나, 둘, 셋 숫자를 센 다음 공을 친다”고 했다. 레그킥을 빗댄 것이다. 멘도자는 한국 타자들의 콘택트 능력을 칭찬하기도 했다. “톤스(tons) 오브 콘택트”(수많은 콘택트)라는 표현을 쓰면서 “선수들이 어떤 공이든 쳐낸다”고 했다. 외야수가 뜬공을 쫓다가 슬라이딩을 하는 모습에는 “왜 슬라이딩을 하는지 모르겠다. 일반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이에스피엔> 해설가는 케이비오리그 불펜투수들의 평균 투구 속도에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케이비오리그 불펜진은 보통 87~89마일(140~143㎞)의 공을 던진다. 15년 전 메이저리그 상황 같다”고 했다. 참고로 2018시즌 메이저리그 평균 패스트볼 속도는 선발투수 92.3마일(149㎞/h), 불펜투수 93.4마일(150㎞. 이상 ‘MLB.COM’ 참고)이었다.

공교롭게도 <이에스피엔>은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유희관(두산 베어스)의 선발 경기를 3차례 중계했는데 그의 패스트볼을 모두 체인지업으로 칭하기도 했다. 130㎞(81마일) 안팎의 패스트볼은 그들에게 참 ‘낯선 공’일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현재까지 가장 인기 있는 케이비오리그 팀은 어디일까. <이에스피엔>은 엔씨 다이노스라고 판단한 것 같다. 엔씨 경기를 중계하지 않는데도 경기 전이든 중반이든 “양의지가 경미한 부상으로 라인업에서 빠졌다”거나 “구창모가 6이닝 동안 잘 던졌다” 등의 깨알 정보를 전해준다. 라비치는 아예 “엔씨는 아메리카 팀”이라고도 칭했다.

초반에 엔씨 경기가 많이 중계된 영향이 컸다. 첫 중계 주간에 4차례나 엔씨 경기가 잡혀 있었고 이때 엔씨의 성적도 좋았다. 개막전 때 터진 엔씨 모창민의 배트 플립은 <이에스피엔> 스포츠 매거진 프로그램인 ‘스포츠센터’ 첫 소식으로 전해졌고 계속 리플레이가 됐다.

엔씨가 노스캐롤라이나의 약자(NC)와 같다는 것도 친근감을 준다. 미국 팬들에게는 기업 이름이 들어간 스포츠 팀명이 익숙하지 않다. 미국 4대 스포츠 구단들은 보스턴 레드삭스(MLB 야구), 그린베이 패커스(NFL 미식축구)처럼 도시 이름을 앞세운다.

&lt;이에스피엔&gt; 누리집에서 한국의 배트 플립 문화를 소개한 내용. ESPN 누리집 갈무리
<이에스피엔> 누리집에서 한국의 배트 플립 문화를 소개한 내용. ESPN 누리집 갈무리

더군다나 남한 면적의 1.4배에 이르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는 메이저리그 구단이 하나도 없다. 더럼 불스(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레이스 산하), 샬럿 나이츠(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처럼 트리플A 구단만 있을 뿐이다. <뉴욕 타임스>에서 인용된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91%가 르브론 제임스(NBA)를, 88%가 톰 브래디(NFL)를 알지만 메이저리그 최고 타자인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을 아는 이는 43%에 불과했다. 메이저리그 인기는 철저하게 지역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구단이 없는 도시에서는 야구 관심도가 많이 떨어진다. ‘야구 불모지’ 노스캐롤라이나라고 다를까. 필자도 노스캐롤라이나에 거주하고 있지만, 사실 “NC가 NC 야구에 뒤집어진” 분위기를 현지에서는 전혀 못 느끼고 있다.

그래도 노스캐롤라이나 거주 야구팬들 대부분 엔씨에 무한 응원을 보내고 있다. 더럼 불스 팬이기도 한 스튜어트는 인터넷으로 엔씨 저지(응원 야구복)를 주문할 정도로 엔씨에 푹 빠져 있다. 함께 야구를 보던 그의 아들도 엔씨 팬이 됐는데 “엔씨 다이노스가 요즘 너무 잘해서 기쁘게 응원하게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엔씨 주민인 브라이언 화이트는 “엔씨 선수들 이름이 이제 좀 익숙해졌다”면서 “엔씨 다이노스가 영어로 된 웹페이지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선수들을 잘 알고 본다면 더 흥미로울 것 같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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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역의 승리, 의료진에 감사를

<이에스피엔>은 지난 2일부터 서브 채널인 <이에스피엔2>가 아닌 본 채널인 <이에스피엔>에서 케이비오리그를 중계하고 있다. 더불어 캐나다, 유럽, 라틴아메리카 일부, 아프리카 등지에 독점적으로 영어 중계화면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다소 생소한 원격 생중계 방식이 안정됐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인 듯하다.

케이비오리그 중계 준비 기간이 2주 정도밖에 없던 터라 해설이 다소 빈약하고 아직까지는 경기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잡담이 더 많은 편이지만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낯선 리그를 소개하는 워밍업 단계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스피엔>은 메이저리그가 개막하더라도 케이비오리그를 포스트시즌까지 계속 중계한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나성범(NC), 김하성(키움), 김재환(두산) 등 한국 선수들에게는 이만한 오픈 쇼케이스도 없을 것이다.

<이에스피엔> 재방송을 통해 한국 야구를 보던 딸이 물었다. “왜 한국 야구를 미국에서 중계해요?” 나의 답은 이랬다. “한국은 코로나19 방역을 잘해서 야구를 하지만 미국은 못 하고 있거든.” 프로 스포츠에 다시금 숨을 불어넣어준 의료진에 케이비오리그가 감사할 일이다. 그들이 야구 종주국, 미국을 뚫어준 셈이니까.

채플힐(노스캐롤라이나)/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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