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3회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신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에 대검찰청 산하 ‘검찰수사심의위원회’(위원장 양창수 전 대법관) 소집 신청서를 2일 제출했다. 검찰이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시민들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에서 기소 여부에 대한 판단을 받아보자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수사심의위에 ‘기소·불기소 처분’뿐만 아니라 ‘수사 계속 여부’까지 판단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26일과 29일,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벌어졌던 각종 불법 정황에 대해 ‘미래전략실 등 임직원들이 알아서 한 일’이라는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부회장에게 직접 보고된 미래전략실 생성 문건을 다수 확보한 검찰은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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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심의위 왜?…“동정 여론으로 판 흔들겠다는 것”
재벌 총수가 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한 전례가 없는 만큼, 법조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노림수에 대해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다. 우선 이 부회장의 선택을 ‘여론전’으로 보는 데는 이견이 없다. 검찰청에 두 차례 불려가 조사를 받으면서 수사팀의 ‘무기’를 직접 확인한 이 부회장 쪽이, 수사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자 ‘여론재판’ 형식으로 반전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지난달 6일 삼성 경영권 승계 문제와 무노조 경영 방침 등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또 부당해고에 항의해 무려 350여일 동안 철탑 고공농성을 벌인 김용희씨와 지난달 29일 사과와 보상에 합의하는 등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한편으론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위기 국면에서 삼성의 역할이 부각되는 시점이라 여론은 이 부회장에게 불리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은 검찰의 예봉을 피하기 위한 ‘마지막 반격’인 셈이다.
2018년 문무일 검찰총장 시절 신설된 수사심의위는 변호사, 교수, 법조 경력 기자, 시민단체 활동가 등 각계각층의 시민 250명으로 구성돼 있다. 강경한 수사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론에 영향을 많이 받는 구조다. 이 부회장 쪽 변호인은 이번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에 대해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혐의 사실에 대해 이 부회장 자신이 수긍할 수 없는 입장이라 일반 국민이 참여하고 전문가가 참여하는 제3의 위원회에서 결정해달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지연작전’ 효과도 있다. 이 부회장이 소집 신청서를 제출한 다음날인 3일은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의 주례보고 일이었다.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와 기소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컸다. 기소가 확정적이었던 이 부회장으로선 ‘급한 불’은 끈 셈이다.
이 부회장의 신청으로 수사심의위가 곧바로 소집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중앙지검 검찰시민위원회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부의심의위원회’가 먼저 이 부회장의 요청을 받아들일지 심사를 해야 한다. 15명의 위원 중 과반의 찬성으로 부의가 결정되면, 대검 수사심의위 심의가 시작된다. 수사심의위는 위원 250명 중 무작위 추천으로 15명의 ‘현안위원회’를 꾸려 이 부회장 관련 수사 계속 여부와 기소 여부를 검토하게 되는 것이다. 주임검사와 신청인은 현안위원회에 30쪽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하고 직접 출석해 30분 동안 발언할 수 있고, 현안위원회는 이를 종합해 출석 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권고안을 결정한다. 수사심의위의 결정은 검찰의 처분을 강제할 순 없지만 앞선 8차례 수사심의위 권고는 모두 수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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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합병·분식회계 수사심의위에 부적합”…기소 판단 땐 ‘부메랑’ 될 수도
문제는 기업 간 합병과 회계사기(분식회계)라는 복잡한 사안을 다루는 이 사건이 ‘30쪽의 의견서’와 ‘30분의 의견 개진’으로 그 실체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검찰 관계자는 “삼성 사건 자체가 수사심의위 부의 대상으로 적절치 않다. 기업·경영권 승계, 분식회계 등 복잡한 기술적 문제들을 짧은 기간에 심의위원이 보고 판단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속의 갈림길에 섰던 이 부회장으로선 시간도 벌고 여론의 도움도 받을 수 있는 카드일 수 있지만, 그만큼 위험도 있다. 한 기업 소송 전문 변호사는 “수사심의위가 ‘수사 계속·기소’를 결정하면 이 부회장에 대한 원칙적인 처리를 주문해왔던 수사팀이 더 힘을 받게 된다. 이 부회장의 ‘승부수’가 패착이 될 수도 있다”고 짚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신병 처리를 결정한 단계에서 신청한 것을 보면 구속만은 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 부회장 쪽이 워낙 궁지에 몰려서 신청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임재우 김정필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