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제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영은 교수
“제주도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활동하면서 4·3 생존희생자와 유족들의 고통을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4·3트라우마센터에 유족만이 아니라 제주도민의 기대가 커서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져 기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난 6일 제주시에 문을 연 4·3트라우마센터(센터) 초대 센터장에 임명된 정영은(사진) 제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다짐이다. 정신건강의학 분야에서도 트라우마(PTSD·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는 정 센터장의 전문 분야이다.
“4·3을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트라우마를 연구해 치유모델을 개발하고 적용할 계획입니다.”
센터는 국가폭력 트라우마 피해자를 대상으로 정신적·육체적 치유와 재활을 지원하고자 마련됐다. 개인이나 가족을 위한 심층 상담,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집단 프로그램과 신체 재활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게 된다. 고령이거나 신체적인 문제 등으로 센터 방문이 어려운 피해자들을 찾아가고,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연대감 조성과 관계 회복을 위한 지역사회 내 교육과 상담, 자조 모임 활성화 등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도 진행할 계획이다.
센터 이용 대상자는 4·3 생존희생자와 유족을 비롯해 국가폭력 피해자 1만8천여명이다. 또 직접 피해자가 아닌 트라우마 피해자의 후손과 주변 가족들, 그리고 이들이 속한 마을 공동체도 필요에 따라 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가톨릭 의대를 거쳐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를 받은 정 센터장이 ‘제주4·3’ 트라우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13년 9월 제주대병원 교수로 임용된 이후였다.
“2014년 4월15일 제주도에서 대한불안의학회 한국외상성스트레스연구회 워크숍이 열렸을 때 회원들이 ‘4·3 트라우마’에 대한 연구를 제안해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 바로 이튿날 세월호 사건이 터졌어요.”
그래서 더더욱 세월호 참사를 잊을 수 없다는 그는 그때 ‘제주지역의 정신보건 관련 지표가 좋지 않고, 가족 구조의 왜곡 등이 지표에 반영된 것 같다’는 내용을 발표했다고 소개했다.
정 센터장은 그뒤 같은 과의 김문두 교수와 함께 4·3 생존희생자 110명을 대상으로 ‘제주4·3 생존희생자 자살 위험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생존희생자들이 일반 노인들에 견줘 자살 고위험군에 속할 가능성이 7.5배나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제주광역정신건강센터에서 제주도의 도움을 받아 진행한 이 연구 논문은 지난 2017년 국제기분장애학회(ISAD) 공식 학술지인 <정동장애학술지>(저널 오브 어펙티브 디스오더‧JAD)에 실렸다. 제주4·3과 관련해 국제의학학술지에 실은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4·3트라우마센터’ 초대 센터장 맡아
생존희생자·유족 등 1만8천명 대상
“복합적·장기적·광범위한 외상 지녀” 2014년 불안의학회 워크숍 ‘4·3’ 발표
2017년 ‘제주 피해 사례’ 국제학술지에
“회복 탄력성 높아 극복한 이들도 관심” 그는 지난 5월에는 4·3 유족들의 트라우마에 대한 문제를 연구해 같은 학술지 온라인판에 싣는 등 4·3 트라우마와 관련한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계속 발표하고 있다. 4·3 유족을 포함한 연구에서도 우울 증상과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증상을 보이는 고위험군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고 그는 분석했다. 그는 “제주4·3이 일어난 지 70여년이 지났지만 생존희생자와 유족들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깊다“며 “인격적 또는 가정적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소아청소년기에 겪은 트라우마여서 전 생애에 걸쳐 살아가는 데 영향을 준다. 그때 겪은 트라우마는 내용 자체가 극단적이었고, 너무 강력했다”고 평가했다. “4·3과 같은 국가폭력 트라우마는 복합성을 가지고, 장기적이며 사회 전체에 광범위한 후유증을 남깁니다. 이 때문에 트라우마의 치유는 피해자 개인을 넘어 가족과 공동체까지 접근이 필요하고, 장기적인 후유증을 다루는 전문적인 치유 프로그램도 필요합니다.” 그는 이어 “유족들 가운데는 트라우마 증상으로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는 회복 탄력성이 높은 분들도 많다. 이들은 트라우마가 계기가 돼서 지역 사회의 훌륭한 지도자가 되거나 경험을 통해 더 풍요롭게 살아가는 분들이다. 트라우마 증상이 있는 것과 잘 살아내는 것은 별개다”라며 이런 부분도 연구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4·3트라우마센터는 국가폭력 트라우마의 장기적 후유증에 대한 새로운 치유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트라우마 증상을 치료, 개선하는데 머물지 않고 가족 또는 공동체 구성원 간의 관계를 회복하고, 역경과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도록 사회 전체의 회복을 돕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하는 역할도 할 계획입니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생존희생자·유족 등 1만8천명 대상
“복합적·장기적·광범위한 외상 지녀” 2014년 불안의학회 워크숍 ‘4·3’ 발표
2017년 ‘제주 피해 사례’ 국제학술지에
“회복 탄력성 높아 극복한 이들도 관심” 그는 지난 5월에는 4·3 유족들의 트라우마에 대한 문제를 연구해 같은 학술지 온라인판에 싣는 등 4·3 트라우마와 관련한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계속 발표하고 있다. 4·3 유족을 포함한 연구에서도 우울 증상과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증상을 보이는 고위험군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고 그는 분석했다. 그는 “제주4·3이 일어난 지 70여년이 지났지만 생존희생자와 유족들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깊다“며 “인격적 또는 가정적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소아청소년기에 겪은 트라우마여서 전 생애에 걸쳐 살아가는 데 영향을 준다. 그때 겪은 트라우마는 내용 자체가 극단적이었고, 너무 강력했다”고 평가했다. “4·3과 같은 국가폭력 트라우마는 복합성을 가지고, 장기적이며 사회 전체에 광범위한 후유증을 남깁니다. 이 때문에 트라우마의 치유는 피해자 개인을 넘어 가족과 공동체까지 접근이 필요하고, 장기적인 후유증을 다루는 전문적인 치유 프로그램도 필요합니다.” 그는 이어 “유족들 가운데는 트라우마 증상으로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는 회복 탄력성이 높은 분들도 많다. 이들은 트라우마가 계기가 돼서 지역 사회의 훌륭한 지도자가 되거나 경험을 통해 더 풍요롭게 살아가는 분들이다. 트라우마 증상이 있는 것과 잘 살아내는 것은 별개다”라며 이런 부분도 연구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4·3트라우마센터는 국가폭력 트라우마의 장기적 후유증에 대한 새로운 치유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트라우마 증상을 치료, 개선하는데 머물지 않고 가족 또는 공동체 구성원 간의 관계를 회복하고, 역경과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도록 사회 전체의 회복을 돕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하는 역할도 할 계획입니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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