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 우이동 아파트단지 경비실에 차려진 제사상.
“아저씨, 그동안 친절하게 대해주시고 저희 아이도 친손주처럼 예뻐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저씨, 매번 따뜻하게 인사 건네주셔서 감사했어요. 먼저 말 걸어볼걸 하고 후회 중이에요.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경비실 유리창에 붙은 응원의 말들을 경비원 최아무개(59)씨가 생전에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신 그는 한 주민에게서 모욕과 멸시의 말을 듣고 주먹질을 당한 채 세상을 등졌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아파트를 관리했던 최씨는 지난 10일 한 주민의 폭행과 갑질을 견디다 못해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은 마지막 유서에는 “누님, 저 도와주시어 정말 감사해요. 저 너무 억울해. 누나 감사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진 11일 최씨가 근무했던 경비실에는 분향소가 마련됐다. 초소 앞엔 배와 사과, 곶감과 막걸리 등을 올린 작은 제사상이 차려져 있었다. 경비실 유리창엔 최씨를 추모하는 주민들의 메모가 서른개 남짓 붙어 있었다. “아저씨 가슴이 너무 아프네요. 그곳에선 꼭 억울함을 풀 수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민들도 오가며 그를 애도했다. 이 아파트에서 30년 가까이 살아온 정옥자(63)씨는 “그분은 성실한 정도가 아니었다. 정말 가리지 않고 일을 열심히 했다”고 최씨를 기억했다. 또다른 주민 이아무개(72)씨도 “같은 충청도 출신이라 형님이라고 부르며 가까이 지냈다. 굉장히 성실했고 담배꽁초 하나 없이 깨끗이 청소했다. 항상 웃었고, 강아지에게도 인사할 정도로 맑은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최씨가 남긴 근무일지에도 그의 성실하고 꼼꼼한 성격이 묻어난다. “주민께 친절봉사, 인사 철저히, 순찰 강화.” 최씨는 이달 3일 근무일지를 끝으로 더는 일지를 쓰지 못했다.
주민과 가족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최씨와 한 주민 사이에 갈등이 생긴 건 지난달 21일의 일이다. 이날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한 주민은 “주차 문제로 입주자 한 사람과 경비 아저씨가 좀 갈등이 있었다. 그 입주자가 때려서 아저씨가 코뼈가 부러졌는데도 참고 일해왔다”고 전했다. 이 아파트 입주자라고 밝힌 한 누리꾼도 각종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경비 아저씨가 4월 하순부터 한 입주자에게 지속적으로 폭행과 협박을 당했다. 지난 3일에도 큰 소리가 나 나가보니 그 입주민에게 맞아서 아저씨가 코를 쥐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아파트 주민들은 최씨를 위해 입주민회의까지 연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입주민들의 지지를 받은 최씨는 상해 혐의로 ㄱ씨를 경찰에 고소했지만, 끝내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최씨의 가족은 <한겨레>에 “잘 해결해보려고 했는데 가해자가 ‘내가 돈을 주는데 경비 주제에, 머슴인데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지, 당신이 뭔데 여기 있냐’며 사표를 쓰라고 했던 걸로 안다. 고소에 대한 보복으로 거듭 협박을 당하니 마음이 황폐해졌던 것 같다”며 슬픔을 삼켰다.
경찰은 현재 고소장을 바탕으로 사건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중이다. <한겨레>는 이날 ㄱ씨의 해명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글·사진/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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