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돼 기소된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변호사)의 항소심 재판이 1년 넘도록 시작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법원에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기 전에는 변호사 등록이 유지되기 때문에 최 변호사는 확정 판결 전까지는 변호사 업무에 제약이 없다.
2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최 변호사는 지난해 1월3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개입한 혐의(국가정보원법 위반)로 1심에서 징역 8개월과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이튿날 바로 항소장을 제출했다. 같은 달 28일 항소심 사건이 접수돼 서울고법 형사부에 배당됐지만 첫 공판은 오는 24일에야 열린다. 지난해 1월 항소한 뒤 1년3개월 만에 재판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사건은 최 변호사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이 서로 연결돼 있는데, 범행 당시 지위가 더 높았던 우 전 수석의 항소심 선고에 맞춰 재판 결과를 조정할 필요성 탓에 일정이 늦춰졌다는 게 법원 쪽 설명이다. 이들 재판은 1심에선 같은 재판부가 맡았지만, 항소심에서는 각각 다른 재판부에 배당됐다. 결과적으로 항소심 재판이 1년3개월 지연되면서 최 변호사는 변호사 활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이 그만큼 늘어나게 된 셈이다.
변호사법상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5년 동안,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 2년 동안 변호사 등록을 할 수 없다. 그러나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변호사 활동을 계속 할 수 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요즘은 본인 형사사건으로 재판받는 변호사가 형 확정 전까지는 변호사 업무를 유지하는 관행이 있다 보니, 유죄 가능성이 높을 때는 재판 기일이 지연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 항소심 재판부는, 박영수 특별검사가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다. 최 변호사는 검찰이 수사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사건과 관련해 이 부회장 변호인단에 합류했는데, 최근 특검 쪽에 전화를 걸어 정준영 재판장에 대한 기피신청을 한 사유 등을 문의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 관련 국정농단 사건과 삼바 사건이 모두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최 변호사가 특검의 재판장 기피신청 사건도 여러 경로로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필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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