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어깨매의 영어 이름은 ‘black-winged kite’이다. 검은어깨매는 앉아있을 때 어깨가 검은 색이라 검은어깨매로 불린다. 동남아시아나 중국 남부 지역에 주로 사는 아열대종으로 최근 국내에서 관측 기록이 늘고 있다. 박진영 국가철새연구센터 센터장 제공
“새들 중에도 길치가 있어요. 또 이동하는 과정 중에 원하는 방향과 다른 방향의 바람이 불면 원래 계획했던 것과 다른 길로 가기도 해요. 그런데 두세마리가 낯선 곳에서 발견되면 길을 잃었다고 볼 수 있는데 지난 가을부터 올해 겨울까지 꽤 많은 수의 새가 서해안을 따라서 백령도부터 제주도까지 곳곳에서 발견됐어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자연의 이벤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지난 17일 박진영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소속 국가철새연구센터 센터장은 ‘검은어깨매’가 한국으로 온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박 센터장이 말한 ‘검은어깨매’는 눈이 붉고 어깨 죽지에 검은 깃이 선명해 ‘검은죽지솔개’로도 불리는 새다. 주로 중국 남부·동남아시아·중동에서 서식하고 넓게는 호주까지도 분포하는 아열대종이다. 한국의 기후 조건과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검은어깨매가 지난 겨울 한국 전역에서 여러 마리가 관측됐다. 박 센터장이 말한 ‘자연의 이벤트’는 무엇이었을까.
검은어깨매가 한국에서 처음 관측된 것은 2013년 겨울 서울 강서생태습지공원에서였다. 한 마리가 탐조가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후 2014~2015년 겨울 경기도 여주·양평·화성 등지에서 다시 관측됐다. 따뜻한 지역에서 월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검은어깨매가 한국에서 월동을 하는 사실은 탐조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그러나 먹이 조건이 나쁘지 않다면 한 해쯤은 기후 조건이 맞지 않는 곳에서도 월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길을 잃은 ‘나그네새’라고만 알려졌다. 탐조여행가 이병우씨는 “몇 년 전만 해도 검은어깨매를 봤다는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몰릴 정도로 귀한 새였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검은어깨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해 11월이었다. 이후 자연관찰 기록 웹사이트 ‘네이처링’에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검은어깨매를 관측했다는 글과 사진이 20여차례 올라왔다. 검은어깨매를 관측한 장소도 전라남도 신안, 전라북도 군산, 세종, 경기 평택·화성 등 서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여러 가능성을 따져보고 있다. 우선 길을 잃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동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 남부 지역의 검은어깨매가 겨울을 나기 위해 더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하다가 갑자기 남쪽에서 북쪽으로 부는 남풍을 만나 동남아시아가 아닌 한국으로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두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가 한국을 찾은 것은 이 가설에는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먹이가 풍부한 한국의 평야 지대를 잊지 않고 올해 겨울에 다시 찾아왔다는 주장도 있다. 30년 동안 탐조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은 “검은어깨매는 단독 생활을 하며 들쥐 사냥을 즐겨하는데 한국에 오면 들쥐를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먹이 조건은 매년 똑같았기 때문에 올해만 특별히 많은 새가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검은어깨매 여러 마리가 이미 한국에서 월동을 하곤 했는데 최근에야 탐조인구가 늘면서 관찰 횟수가 많아진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기후변화 영향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사람이 체감하지 못하는 속도로 일어나는 기후변화로 인해 한국이 아열대종인 검은어깨매가 살기 적합해진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반면 기후변화가 원인이라면 검은어깨매뿐 아니라 다른 아열대종도 발견되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이때문에 기후변화와의 연관성을 강조하기 보다 검은어깨매의 분포권이 한국까지 확산하는 추세로 제한해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박 센터장은 “여러 가능성 중에 기후변화도 하나”라며 “다만 한 해 결과만으로는 알 수 없고, 한두마리의 이동만으로 기후변화를 판단하는 것은 비약이 될 수 있으니 20~30년에 걸친 이동 경로를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은이마직박구리.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이 선정한 국가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이다. 박진영 국가철새연구센터 센터장 제공
검은어깨매의 활동 분포가 넓어지는 것과 관련해 ‘검은이마직박구리’의 선례가 주목받는다. 중국 남부, 대만, 베트남 북부, 일본 오키나와 등 따뜻한 지역에 주로 서식하는 검은이마직박구리는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이 선정한 국가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이다.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이란 기후변화로 인해 활동, 분포, 개체군 크기 등이 뚜렷하게 변화하고 있거나 앞으로 그럴 것으로 예상되는 종으로, 학계에서는 검은이마직박구리의 분포권 확대가 기후변화와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은이마직박구리는 2000년대 초반 서해에서 처음 발견된 후 내륙으로 서식 번위를 넓혀왔고, 국내에서 번식에 성공해 텃새가 됐다. 박 센터장은 “검은이마직박구리의 서식지가 넓어지는 이유를 기후변화때문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심증으로는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검은어깨매가 검은이마직박구리와 같은 경로를 밟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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