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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미국 교민 “간호사 아내 마스크도 없이 일하다 코로나 확진…검사받기도 어려워”

등록 2020-04-09 04:59수정 2020-04-09 07:46

버지니아주 거주 재미 사업가 인터뷰

치료 중 감염됐지만 격리 통보만
호흡곤란 응급실행 하루만에 퇴원시켜
장비 부족하다며 ‘뺑뺑이’ 돌리고
그나마 가족들은 검사도 안해줘
지난달 말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의 한 대형마트 입구 모습. 생활필수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ㄱ씨 제공
지난달 말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의 한 대형마트 입구 모습. 생활필수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ㄱ씨 제공

“나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교민 ㄱ씨(64)는 아내(64)가 지난달 30일 발열과 감기 증세를 보이자 불안감이 머리를 스쳤다. 증상이 있기 나흘 전, 간호사인 아내가 돌본 90대 할머니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ㄱ씨의 불안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아내는 일주일 전 지역 보건소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후 그의 가족에게는 힘든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호흡곤란과 고열을 호소했던 아내는 아직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태고, 그와 자녀들은 진단검사도 못 받았다.

ㄱ씨는 8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현지 상황은 암담하다. 미국 내에서 상당수의 환자와 접촉자가 제대로 된 코로나19 검사·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기준 미국에선 약 39만명이 코로나19에 걸렸고, 사망자도 1만2천명이 넘는다. 지난 2일 아내의 증상이 심해져 다급히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지역 보건당국에 연락해봤지만 검사를 해주겠다는 답을 쉽게 얻을 순 없었다. “검사장비 부족으로 아무나 검사를 해줄 수 없으니 주치의한테 코로나19가 의심된다는 확인서와 처방전을 받아 오라”는 것이었다. 서류를 준비해 오기엔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초조해하던 그는 ‘아내가 일하는 병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설명을 한 뒤에야 가까운 지역 보건소를 찾아가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결국 그의 아내는 보건소 앞 주차장에서 ‘드라이브스루’ 방식으로 진단검사를 받았고 만 하루가 지나서 전화로 양성 판정이 나왔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보건소에선 약을 처방해주지도 않았고 1주일간 집에서 격리하라는 말만 되뇌었다”고 했다. 미국의 지역 병원들은 코로나19 중증 환자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입원을 시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확진되자 ㄱ씨와 자녀들의 감염 여부도 걱정이었지만, 동네 주치의는 확인서를 쉽게 써주지 않았다. “확진자와 함께 있어도 증상이 없으면 검사를 받기가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재미 사업가 ㄱ씨의 아내가 코로나19에 감염된 뒤 호흡곤란으로 응급진료를 받고 병원에서 받은 서류. ㄱ씨 제공
재미 사업가 ㄱ씨의 아내가 코로나19에 감염된 뒤 호흡곤란으로 응급진료를 받고 병원에서 받은 서류. ㄱ씨 제공

하지만 하루이틀 지나면서 아내의 증상은 고열과 호흡곤란 등으로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3년 전 아내가 심장질환으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기에 그의 속은 타들어갔다. 결국 지난 5일 911에 연락을 하고서야 병원에 갈 수 있었다. 911 구급차에는 아내 혼자만 탈 수 있었고 병원 응급실에 간 날 바로 퇴원해야 했다. 입원을 하기에는 수술 이력까지 있는데도 산소포화도 수치가 정상에 가깝다는 것이 이유였다. 다행히 집으로 온 뒤 아내의 증상은 점차 호전됐지만, ㄱ씨는 아직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ㄱ씨 가족은 현재 1주일 이상 격리 상태로 한집에서 지내고 있다. 아내와 방을 따로 쓰고, 그가 식사를 가져다줄 때만 서로 만난다. 대학생 자녀 둘은 지하에 있는 방에서 지낸다. 가족끼리 연락은 휴대전화로 한다. 필요한 의료물품과 생활필수품 조달에도 애를 먹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며 미국 내 만연한 ‘사재기’ 탓이다. 그는 “2주 전에 마트에 식료품을 사러 갔는데, 들어가는 데만 1시간 반을 기다렸다. 밀가루나 닭고기를 구입하지 못하는 날도 있고, 타이레놀·손세정제·체온계 등 환자를 위한 물품 구입은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ㄱ씨는 “자발적으로 가족끼리 격리수칙을 지키고 있지만 보건당국이 관리하는 것은 전혀 없다. 확진자에 대한 역학조사도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며 “아내가 일하는 병원에서는 의료진에게도 마스크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더라. 아프기 전에 아내가 출근해서 아기 기저귀나 휴지를 잘라서 입을 막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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