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근본적 해결을 요구하며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활동 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들이 조주빈(24)씨가 운영했던 ‘박사방’의 유료회원들을 상대로 고소에 나선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피해자의 권리를 주장해 더 많은 공범들이 무거운 처벌을 받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피해자들 중에는 재판 과정에서 고소인의 정보가 드러나 가해자들로부터 보복당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고소를 꺼리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수사 과정에서 이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7일 <한겨레>에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들을 대리해 조씨를 비롯한 공범들을 아동 성착취물 제작 등 혐의로 고소·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상은 조씨와 그의 방에 돈을 내고 입장한 유료회원들이다. 공대위 쪽은 “피해자 가운데 일부가 고소 의사를 밝혀 준비 중”이라며 “박사방에 있던 유료회원들이 범행에 얼마나 가담했는지를 보여주는 주요 대화 내용 등 공범임을 입증할 증거 자료들을 수집해 조만간 고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조씨 등 관련자들을 직접 고소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과 검찰이 박사방 사건을 적극 수사하고 있음에도 피해 여성들이 직접 나설 결심을 한 건 ‘고소인’ 지위를 얻게 될 경우 형사소송법과 형사소송규칙 등에 따라 직접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들은 경찰이 범행을 ‘인지’해 수사를 시작한 사건의 피해자 신분이어서 검찰이 조씨와 공범들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해도 이에 불복해 재수사를 요구할 권한이 없다. 고소인은 고소장에 적은 혐의 가운데 검찰이 일부만 기소하면 이에 대해서도 수사가 미진하다며 다툴 수 있다. 박수진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피해자들 가운데 일부만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 등 수사 과정에서 소외되는 측면이 있다. 고소인으로 사건을 진행하면 수사기관이 고소인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하며 변호사가 개입할 수 있다. 수사 결과나 송치·기소 여부에 대해 통지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또 “피해자가 유료회원들을 고소하면 박사방에서 조씨에게 성착취물 제작을 요구하고, 이 영상이 여성의 뜻에 반해서 촬영됐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방조한 이들을 경찰이 방조범 또는 ‘공동정범’으로 인정할 수 있을지 적극 수사할 수 있다. 범행에 가담한 유료회원들이 최대한 많이 공동정범에 묶이려면 고소사건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사건 공범들이 피해자들의 신상정보를 손에 쥐고 협박해왔기 때문에 일부 피해자들은 신원이 노출되는 데 대한 두려움으로 고소를 망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조씨는 경찰에 검거되기 전에 “내가 검경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신고하면 바로 알 수 있다. 신고하면 사진을 유출하겠다”는 식으로 피해자들을 협박했다. 성범죄 사건은 고소장에 고소인의 가명을 적는 등 피해자 보호 장치가 마련돼 있지만 피고소인의 변호인이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해 고소장 공개를 요청하면 피해 사진 등이 노출될 위험성이 남는다. 지난 2월 조씨로부터 피해를 당한 ㄱ씨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익명이 보장된다고는 하지만 고소는 아직 두렵다. 내 얼굴과 이름을 가려도 사진을 보고 나라는 걸 특정해서 ‘얘가 나를 처벌하려고 고소했구나’라고 알면 위험해질 것 같아 무섭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에 피해를 신고하는 것도 주저하는 이가 아직 많다. 경찰은 조씨의 피해자를 현재 75명까지 파악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직접 신고에 나선 이는 20여명이다.
잔혹한 협박에 노출됐던 피해자인 만큼 수사기관의 피해자 보호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가해자가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에 피해 내용이 담긴 증거물, 채증 자료, 이미지를 포함시키지 않는 등 수사기관에서 실무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또 “피해자분들이 수사기관에 신고를 해서 수사가 진행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힘들고 불안이 더 크면 클수록 지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으로 연결되는 것도 중요하다. 꼭 법률 지원을 받지 않더라도 함께 공대위 등 여러 지원단체에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피해 회복의 기회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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