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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n번방에 ‘범죄단체 조직죄’ 적용할 수 있을까요?

등록 2020-03-27 20:21수정 2020-03-28 02:00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25일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박사’ 조주빈씨 등 텔레그램 성착취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5일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박사’ 조주빈씨 등 텔레그램 성착취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텔레그램 ‘엔(n)번방’ 등을 통한 성착취 범죄에 대한 분노 여론이 들끓고 있다. 지난 24일 답변이 완료된 ‘엔번방 회원들 모두를 처벌해 달라’ 등 5개의 엔번방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전체 국민의 10분의 1이 넘는 583만여명이 동의했을 정도다. 대통령은 엄벌을 촉구했고, 경찰과 검찰은 각각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와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티에프(TF)’를 꾸렸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범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경찰청은 미국 법무부와 공조해 아동 성착취물을 공유하는 웰컴투비디오(W2V)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세계 각국에서 310명의 이용자가 검거됐는데 이 가운데 223명이 한국인이었고, 운영자 역시 한국인이었다. 이들에 대한 처벌은 어땠을까? 운영자는 겨우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이용자들은 대부분 벌금 또는 집행유예 처벌을 받았다. 미국 법원이 웰컴투비디오를 통해 아동 성착취물을 소지한 남성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것과 대조적이다.

수사기관과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디지털 성범죄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엔번방 문제가 불거진 뒤에도 검찰은 엔번방에서 아동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와치맨’ 전아무개씨에게 징역 3년6개월을 구형했다가 비판 여론이 높자 뒤늦게 변론재개를 신청했다. 또 다른 엔번방 운영자 ‘켈리’에 대해 법원은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고 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을 감안했다”며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아동·청소년 이용 성착취물을 제작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 영리 목적으로 배포하면 10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현실은 법정형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정부는 부랴부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법무부는 엔번방 운영자뿐 아니라 ‘회원’들까지 처벌하기 위해 ‘범죄단체 조직죄’(형법 114조)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형법 114조는 ‘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또는 집단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 또는 그 구성원으로 활동한 사람은 그 목적한 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범죄단체 조직죄가 적용되면, 수사기관은 조직원 전원에게 주범과 같은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또 조직원이 범죄를 실행하지 않았더라도 조직에 가입한 사실만으로 같은 처벌이 가능하다.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박사’ 조주빈씨는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강제추행, 협박 등의 혐의로 구속됐는데, 박사방 회원들이 영상물을 제작하는 데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조씨와 같은 혐의를 적용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종범들의 구형이나 법정 형량이 상승하게 된다.

범죄단체 조직죄는 단순히 여러 사람이 모여 범죄를 저질렀다고 적용 가능한 것은 아니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다수의 구성원 △공동의 목적 △시간적인 계속성 △최소한의 통솔체계 등 4가지 요건이 갖춰져야 ‘범죄단체’가 성립된다. 핵심은 ‘최소한의 통솔체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취재로 드러난 박사방 운영 실태를 보면, 박사방에는 조씨를 따르는 관리자들과 직원들이 있었다. 이들은 조씨의 명령에 따라 여성들의 개인정보를 알아내고, ‘노예’가 된 피해 여성들을 찾아가 협박하고, 회원들이 낸 현금을 수거했다. 법조계에서는 범죄단체로 볼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회원’을 조직원으로 볼 수 있느냐는 대목에선 의견이 엇갈린다. 법학전문대학원의 한 교수는 “범죄단체 가입은 공동의 범죄를 범할 목적으로 그 단체의 규약을 따르겠다는 의미”라며 “영상을 보기만 한 사람이라면 이용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반면 한 변호사는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성착취 범죄가 이뤄지는 대화방인 것을 알고 있었다”며 “암호화폐 결제를 해야 하는 등 우연히 들어갈 수 없는 방이다. 적극적으로 그 방에 가입한 이상 조직원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엔번방 사건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는 “안이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엄격하게 처벌받는다는 경각심을 줘야 한다. 내 몸에 영상물을 소지하는 것뿐 아니라, 내가 원할 때 해당 영상에 접근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성착취물을 소지한 것으로 볼 수 있도록 인식의 전환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춘화 법조팀 데스크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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