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엔(n)번방 사건 관련자를 엄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동의가 엿새 만에 230만명을 넘어서는 등 엄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번 사건 핵심 피의자인 ‘박사’ 조아무개씨와 같이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포한 범죄자에 대한 기존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엔번방에 참여해 성착취 영상물을 단순 시청한 ‘회원’은 현행법으로는 처벌하기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 무기징역 가능한 아동 성착취물 제작…실제는 징역 2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 11조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제작·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엔번방 ‘박사’의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하지만, 실제 법정에서는 법정 최저형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량이 선고됐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4월 발표한 ‘2017년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추세와 동향분석 결과’를 보면,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한 성범죄자의 최종심 유기징역 평균 형량은 징역 3년2개월에 불과했다. 이들의 20.8%만이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이마저도 56.3%가 3년 미만 징역형에 그쳤다. 집행유예와 벌금형이 나란히 39%였고, 선고유예된 경우도 1.3%였다. 법원은 범행 전력(24.4%)과 피고인의 반성(21%), 범행 시인(15.5%), 피해자와 합의(8%) 등을 이유로 형을 줄여줬다.
전문가들은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을 지적하며, 대법원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예안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는 “우리 법적 형량은 세계적으로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실제 판결은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불과하다”며 “온라인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판사들의 이해도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양형기준마저 없으니 경미한 처벌이 내려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이르면 4월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만들 계획이다.
■ 단순 회원은 처벌 어려워…구체적 활동 특정해야 성착취 영상물 제작자 외에 엔번방에 가입한 ‘회원’들에 대한 처벌은 가능할까? 경찰은 엔번방에서 성범죄에 가담한 회원이 수십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법상 단순히 엔번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처벌하기는 어렵지만, 이들의 행위 정도에 따라 처벌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성착취 피해자가 19살 미만 아동·청소년이라면, 가해자는 청소년성보호법의 적용을 받는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물을 소지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가능하다. 나아가 이를 배포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서혜진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성착취 영상물 소지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전과가 없는 초범이라면 200만~300만원 정도의 벌금형을 받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성착취를 당한 피해자가 19살 이상 성인일 경우 처벌은 더욱 제한된다. 성착취 영상물을 유포한 행위만 처벌할 수 있고, 법정형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낮아진다.
다만 엔번방 회원이 어떤 식으로 활동했는지에 따라 처벌 수위가 높아질 수 있다. 박수진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특정 영상을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박사가 이를 받아들여 실행에 옮겼다면,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물 제작의 관여도가 크다고 봐 공범 적용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회원들의 성착취 영상물 소지 및 유포 행위를 경찰이 구체적으로 특정하는 게 관건인데, 이를 위해서는 신속하고 광범위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사 조씨의 휴대전화 등으로는 수십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회원의 범죄 행태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회원 개인 소유의 휴대전화나 디지털매체 이용 기록을 신속히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엔번방 회원들은 텔레그램 방에서 영상을 내려받은 뒤 다른 방을 만들어 영상을 배포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춘화 고한솔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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