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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변희수와 숙대 합격생이 서로에게 쓴 희망 “나를 드러내 사회 바뀌길”

등록 2020-03-17 05:00수정 2021-03-03 22:37

[차별금지법은 함께살기법] ② 성소수자 차별
숙대 합격생 한주연 “두려움이 포용으로 변하길”
예비역 하사 변희수 “결코 혐오에 지지 않겠다”
예비역 하사 변희수가 법학도 지망생 한주연(가명)에게 쓴 손편지. 변희수 제공.
예비역 하사 변희수가 법학도 지망생 한주연(가명)에게 쓴 손편지. 변희수 제공.
“조금씩 깎이던 마음이 결국 스스로를 찌르는 칼이 되었습니다. 이런 제가 망망대해에 아무도 없이 홀로 내던져진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22살 한주연(가명)이 편지를 썼다. “우리 모두 서로 힘내도록 합시다. 죽지 맙시다. 꼭 살아남아서 이 사회가 바뀌는 것을 같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22살 변희수가 응답했다.

예비역 하사 변희수와 법학도 지망생 한주연.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두 사람이지만 이들이 겪어온 고통의 길과 앞으로 그려나갈 희망의 풍경은 겹친다. 둘은 모두 ‘남성의 몸에 갇힌 여성’으로 오랜 시간 내면의 고통을 겪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한국 사회의 ‘금단’을 깨기 위해 스스로를 드러냈으며, 혐오에 부딪혀 넘어졌다. 한주연은 숙명여대 법학부의 2020년 신입생으로 합격했다가 반대 여론에 떠밀려 지난달 입학을 포기했다. 변희수는 지난 1월 “대한민국의 군인이 될 기회를 달라”며 눈물의 거수경례를 했으나 군에 의해 강제전역됐다.

그러나 이들이 만든 ‘균열’은 유효하다. 변희수가 눈물을 흘린 그날, 군은 군대 내 성소수자의 공존을 위한 고민을 시작했고 한주연이 입학 포기를 선언한 그날, 대한민국은 성소수자와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논쟁하기 시작했다. <한겨레>는 산산조각 난 마음을 이어붙이고 있는 두 사람을 설득해 서로를 위한 편지를 부탁했다. 한주연과 변희수는 단단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한 희망을 넘어, 우리 사회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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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시선…그럼에도 앞장서준 희수님께 감사”

“내가 커밍아웃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나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주연님도 자신이 지망했던 학교를 조용히, 그리고 아무 일 없이 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들었던 욕설과 비난을 들을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여러가지로 복잡한 심경이었습니다.” 육군훈련소를 나온 뒤 처음 손편지를 써본다던 변희수가 전한 첫마디엔 한주연을 향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1월30일 한 언론을 통해 숙명여대에 성전환 여성이 입학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변희수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는 심정이 들었다”고 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저를 향해 쏟아졌던 비난, 악플, 욕설, 조롱, 혐오의 화살들이 주연님에게도 똑같이 향할 것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거든요.” 변희수가 실명과 얼굴을 드러내고 카메라 앞에 선 건 1월22일이었다. 그의 강제전역 사실을 알리는 뉴스 댓글엔 조롱과 비난이 난무했다.

사람들은 변희수의 성전환이 ‘선택’이라고 쏘아붙였다.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결과이므로 차별은 아니네요.” 그러나 변희수의 결심은 ‘선택’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트랜스젠더들은 죽음 충동 끝에 성전환 수술을 받는다. “신께서 제 몸을 만드실 때 실수한 게 아닐까. 내가 전생에 어떤 잘못을 했길래 이런 일들이 생긴 것일까. 초등학생 시절 아파트 옥상을 올려다보며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도 매일 들었었죠.” 그렇게 성전환 수술을 받고 최초의 트랜스젠더 군인이 되고자 했지만 거부당했을 때, 변희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만에 하나 전역 처분이 나더라도 재입대를 하자, 재입대가 안 되면 군무원으로라도 군에 남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전역 명령이 떨어지니, 제가 죽어서라도 이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하냐는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한주연은 함께 울었다. “저희 둘이 한 일은 평범한 일상을 살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아직 사회는 저희의 평범한 일상을 허락해주지 않았습니다.” 한주연은 어렵게 받아든 법대 합격증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멀리서도 그는 변희수가 먼저 겪었을 고통에 생생히 공감했다. “기자회견 이후로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무심코 던져진 것 같은 댓글 한 줄이 이렇게 가슴에 비수처럼 박혀드는지 직접 경험해 보고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저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기사 몇 줄만으로 제 생활을 미루어 단정하고 비난하는 모습을 보면서 답답하고 괴로웠습니다.”

입학 포기 의사를 밝힌 건 지난달 7일이지만 여전히 그는 밤중에 휴대전화가 울리면 깜짝 놀라고, 기사나 댓글은 읽기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만히 있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라는 두려운 감정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응원의 메시지를 봐도, 괜찮다는 생각을 마음에 되새겨도, 마음이 조금씩 깎이고 남아서, 나는 혼자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피할 방법이 없더군요.” 한주연은 변희수에게 보낸 편지에 털어놨다.

그런 한주연에게 변희수라는 이름은 ‘용기’로 다가왔다. “그 모든 모욕을 홀로 감내하셔야 했을 고통을 생각하니 속상하고 가슴이 아프다”면서도 한주연은 앞장서 용기를 내준 변희수에게 감사했다. “사실 제일 먼저 전해드리고 싶었던 말은 감사하다는 말이었습니다. 먼저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를 내주셔서 뒤따를 수 있었다고, 그런 용기가 없었더라면 저도 이런 용기를 낼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법학도 지망생 한주연(가명)이 예비역 하사 변희수에게 쓴 손편지. 한주연 제공.
법학도 지망생 한주연(가명)이 예비역 하사 변희수에게 쓴 손편지. 한주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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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 포용으로 바뀔 수 있기를”

고통 속에서도 두 사람을 일으켜 세운 건 지지와 연대였다. “성별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격체로서 저희를 응원해주시고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저희와 연대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너희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을 생각하니 공포와 두려움이 덜어지고 희망과 안도감이 생겼습니다.” 한주연은 변희수에게 말했다. 숙명여대 내부에서, ‘급진적 페미니즘’을 표방한 여성들 사이에서 한주연을 향한 공격의 말들이 쏟아질 때 다른 한편에선 그를 위로하고 지지하는 말들이 이어졌다.

변희수도 마찬가지다. 상처를 준 것도 사람이지만, 고통의 시간 동안 죽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한 것도 사람이었다. 육군본부의 결정은 그를 할퀴었지만 변희수의 부대원과 상사들은 그를 지지했다. 그는 편지에서 거듭 밝혔다. “저의 사정을 잘 이해해주셨던 주임원사님, 대대장님, 여단장님, 군단장님의 배려 속에 성별정정 수술까지 무사히 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사가 나가고 저를 위로해주신 대대 간부님들·용사분들과, 동고동락했던 삼계고등학교 동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한주연에게 희망의 말을 건넸다. “사건이 진행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제 주변엔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연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을 것이라 믿습니다.” 두 사람은 스스로 뒤에 걸어오는 이들의 희망이 되고 싶다고 했다. “슬프고 힘든 일이지만 지금이 아니었다면 미래에 누군가 겪었을 일이고, 또 똑같이 상처받았을 일입니다. 힘들지만, 그래도 미래에 다른 분들이 저희의 평범한 일상을 돌려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계속 내주시기를 희망하면서 용기를 내서 앞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 “법조인이 되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한주연은 꼭꼭 눌러쓴 편지에서 밝혔다.

변희수의 바람도 비슷했다. “복직 이후, 언젠가 시간이 흘러 전역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면 저를 도와주시고 계신 분들처럼 사회활동가가 되어 제2, 제3의 변희수 또는 한주연을 지원해주고 싶은 새로운 꿈이 생겼습니다.” 카메라 다루길 좋아하는 변희수는 “영상매체를 통해서 사회에 차별 문제에 대해 알릴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적었다.

한국 사회는 두 사람의 꿈을 산산조각 냈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향한 애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한주연은 변희수에게 썼다. “이번 기회로, 우리 사회가 다양성에 대해서 조금 더 고민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삶을 존중할 수 있기를, 다름을 배척하지 않는 사회가 구성되기를, 다름이 틀림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두려움이 포용으로 바뀔 수 있기를….”

그는 분노하고 절망하기보다 이해하고 희망하기를 택했다. “제가 그들에게 인간으로 대우를 받기를 바라는 것처럼, 저도 그들을 인간으로서 대우해야만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변희수는 답했다. “혐오는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흑인들을 차별했던 ‘아파르트헤이트’, 유대인과 성소수자를 탄압했던 나치처럼 혐오는 언젠가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혐오가 부끄러운 행위가 되고 오명이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했다.

“꼭 살아남아서 이 사회가 바뀌는 것을 같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꼭 그렇게 되도록 합시다.”

겨울은 가고 봄이 온다. “곧 봄이 오듯, 삶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기를 바라겠습니다.” 한주연이 보낸 인사다. 안부는 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숨죽인 채 고통을 겪어낸 또 다른 변희수와 모든 한주연에게 전하는 위로와 격려였다. 그렇게 홀로 겨울을 살아낸 두 사람은 이제 ‘함께’가 되어 다가올 봄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가기 : [전문] 변희수 하사와 숙대 합격생이 서로에게 쓴 손편지 전문

강재구 권지담 김민제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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