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 누리집 화면 갈무리
러시아의 게임개발사 배틀스테이트 게임스(BattleState Games)가 만든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Escape From Tarkov)는 그냥 봐서는 밀리터리 요소를 짙게 반영한 1인칭 슈팅 게임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게임은 1인칭 슈팅에 배틀 로얄과 속칭 ‘폐지 줍기’(온라인에서 푼돈을 모을 수 있는 행위)로 일컬어지는 아이템 루팅을 집어넣고, 그 와중에 레벨과 스킬 시스템을 통해 캐릭터가 성장하고, 그 와중에 실제로 존재하는 총기들과 개조용 부품들을 통해 밀리터리 덕후들의 심금을 울리는 총기 개조를 제공하고, 그 와중에 현실적인 부상, 배고픔, 목마름, 스태미나 시스템 등을 포함시켜 몰입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런 게임들을 위해 게임계에서는 ‘하드코어’라는 말을 아껴두곤 한다. 물론 이 정도를 하드코어로 인정할 수 없다고 외치며 달려드는 ‘하드코어 게이머’들의 눈을 피해 조심스레 말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 게임은 전작 컨트랙트 워즈(Contract Wars)에서 이어지는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다. 대략적으로 다국적기업의 음모, 비밀 실험, 군사적 충돌 같은 현대적 음모론의 변형이다. 플레이어는 이 음모 속에서 가장 말단에 있는 양쪽 진영에 고용된 민간 군사기업의 일원이다. 게다가 이번 작의 플레이어의 목표는 이미 사령부로부터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폐허가 된 타르코프를 자력으로 탈출하는 것이다. 스캐브라고 불리는 지역의 갱단들과 신원 미상의 또 다른 용병들과 교전을 벌이며 말이다.
한국에서 이 게임을 즐기는 데는 먼저 구매하는 것부터가 장벽이다. 이 게임은 게임스토어가 아니라 자사의 공식 누리집에서만 판매한다. 영어는 지원되기 때문에 영어로 게임을 구매하고 영어로 플레이한다. 게임 구매에 성공하면 유저는 ‘유섹’(USEC)과 ‘베어’(BEAR) 가운데 한 진영을 선택한다. 이 진영은 현재 게임 플레이상 큰 의미가 있지는 않지만 내 캐릭터가 영어를 할지, 러시아어를 할지 정도의 선택지가 된다. 게임에는 쇼핑몰, 숲, 공업지대를 비롯한 타르코프 내의 여러 장소가 구현되어 있다. 플레이어는 그중 하나의 지도를 선택하여 들어간다. 게임의 일차적인 목표는 최대한 값나가는 물건을 많이 얻어 지정된 장소로 무사히 탈출하는 것, 주어진 작은 목표들을 달성하는 것이다.
내가 이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음식이다. 캐릭터는 허기와 갈증을 느끼고 그것을 채워주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그래서 군용식량, 통조림, 물 같은 것을 먹고 마셔야 한다. 개발자들은 다른 게임들이 생략하고 넘어가는 부분을 고품질의 애니메이션과 현실감 넘치는 사운드로 채워 넣었다. 당연하게도 적에게 발각되면 그 즉시 죽은 목숨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긴장감 넘치는 식사를 해야 한다.
조정간과 부속물들을 조정하고, 탄창을 꺼내 남은 총알 수를 파악하고, 심지어는 총기의 약실에서 총알을 빼내거나 집어넣는 것 역시 모두 실제 같은 애니메이션과 소리를 통해 이루어진다. 총기에서 탄창을 빼고 결합할 때 나는 마찰음과 마지막에 나는 “짤깍” 소리는 중독적이다. 실제 플레이에서도 소리는 생존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총소리, 발소리, 문 여는 소리 같은 것들을 먼저 듣지 못하면 등 뒤에서 나타난 적에게 공격받아 비명횡사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죽으면 가지고 있던 모든 물건은 가져가는 사람의 소유가 된다.
이 게임은 전세계가 멸망했다는 식의 설정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포스트아포칼립스적인 정서가 깊게 배어난다. 사람 하나 없는 황량한 쇼핑센터에서 값나가는 물건을 찾아 여기저기를 뒤적거리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작은 발자국 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총을 겨누는, 마치 그런 유의 영화의 도입부에 나올 법한 시퀀스를 경험할 수 있다.
나온 지 제법 시간이 지난 이 게임을 갑자기 성공 가도에 올려놓은 것은 게임방송들이다. 한국에서도 이미 많은 스트리머가 타르코프를 플레이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마도 이 게임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복잡함을 즐기기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구경만으로 만족하는 게임도 있는 법이다. 저 게임은 분명히 실 거야. 아니, 매울 거야.
사회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