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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나는 바이러스가 위험한 이들을 더 발굴해주기를 바란다”

등록 2020-03-14 14:46수정 2020-03-14 20:16

[토요판] 커버스토리
코로나19와 노숙인·쪽방촌 이웃들

취약계층 응급시 갈 곳은 공공병원
코로나19로 응급실 폐쇄돼 발만 동동
코로나19 확산으로 외출을 못 하는 노인이 지난 4일 광주시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구청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으로 외출을 못 하는 노인이 지난 4일 광주시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구청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입소자가 화장실에서 넘어져 응급실에 와 있어.”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지개를 펴던 2월 초 노숙인 자립 지원주택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의 연락을 받고 서울의 한 중소 공공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입소자가 넘어지면서 머리를 세게 부딪혀 뇌출혈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응급실 의사가 보여주는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에는 뇌출혈 소견이 분명했다.

“우리 병원은 신경외과가 없어서 뇌출혈 환자를 받을 수 없어요. 상급기관으로 가야 해요. 지금 서울의료원,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이 폐쇄돼 못 가니까 입원 가능한 민간 ○○병원에서 확인했어요. 빨리 이송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장담 못 합니다. 어떻게, 빨리 연결해드릴까요?”

응급실 의사의 제언에 사회복지사는 “일단 잠깐만 기다려보세요”라며 머뭇거렸다. 한시가 급한데 왜 주저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응급실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와 나는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느라 입소자를 응급실 침대에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치료 비용 때문이다. 노숙인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인 이 입소자는 정해진 일부 병원에서만 진료해야 병원비를 내지 않을 수 있다. 의료보험이 체납된 일부 노숙인의 경우 전국 270여곳의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아야만 본인부담금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런데 270여곳의 의료기관 중 약 220곳은 간단한 일반 진료만을 제공하는 보건소다. 실제로 응급상황에서 이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은 소수의 공공병원뿐이다. 어떻게든 공공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코로나바이러스로 응급실이 폐쇄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이 제도의 조건을 맞추는 것도 까다로워져 혜택을 받은 노숙인의 수도 해마다 줄어드는데 공공병원 응급실 폐쇄로 이마저도 무용지물이 돼버린 셈이다.

유일한 방법은 서울의료원 신경외과 일반 외래 진료를 통해 입원을 시켜주길 바라는 것인데, 외래 진료에 몇명이 대기 중일지, 입원 가능한 병실이 있을지 알아볼 방도가 없었다. 만약 서울의료원에서 입원이 안 되면 그냥 주택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행히 그 입소자는 외래 진료를 받고 서울의료원 입원에 ‘성공’했다.

짧은 진통을 겪고 나니 지난 몇년간 만났던 쪽방 주민들이 생각났다. 방문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원을 열기 전 의료봉사 차원에서 쪽방 밀집 지역의 몇몇 집을 돌아다니며 건강 상태도 확인하고 간단한 처치를 했다. 그들이 응급상황에서 맘 편히 갈 수 있는 곳은 공공병원뿐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공공병원 응급실이 폐쇄된 뒤 그들은 어떻게 지낼까. 알고 지내던 요양원 원장들도 어르신들을 모시고 병원에 갈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발열 증상이 보이면 민간 병원은 무조건 출입금지라서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발병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내원이 허용된다고 한다.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한 공공병원 응급실 폐쇄 결정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초기의 적극적인 대처가 지역사회 전파를 막을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폐쇄 그 이후의 대안이 없었다는 점이다. 공공병원은 취약계층이 수월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서울에 고작 8곳(2017년 7월 2차 병원 기준)뿐이고, 그곳마저 폐쇄되니 취약계층은 아파도 갈 곳이 없어졌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국가적 재난이지만 특히 취약계층에겐 지옥이나 다름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대안의 하나로 공공병원 응급실 상당수가 폐쇄된 기간만이라도 의료보험 체납자가 민간병원을 이용하면 지자체가 지원해주는 방안은 어떨까.

코로나바이러스 전파의 근원이 된 청도대남병원의 폐쇄병동에서 치료받던 환자들을 옮겨 치료하는 곳은 국립정신건강센터다. 이처럼 국가의 비상상황에서 응급실 구실을 하는 곳은 공공병원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요즘 국공립 병원의 힘을 새삼스레 확인하는 중이다. 만약 국가의 응급을 담당할 공공적 성격의 병원이 충분히 많았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폐쇄병동에 몰려 있던 ‘사라진 사람들’이 바이러스를 통해 그 모습이 드러났다. 바이러스 덕분에 잊힌 사람들이 알려졌으니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죽음이라 슬프지만 나는 바이러스가 위험한 이들을 더 발굴해주기를 바란다. 잊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을 품고 우리가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그들에게 찾아갔으면 좋겠다. 꼭 의사가 아니라도 옆집의 이웃이든 누구라도 말이다. 미래의 의료에는 병원에 환자를 몰아넣을 것만을 고민할 게 아니라 때때로 흩어질 수 있는, 움직이는 의료 또한 필수로 포함돼야 하기 때문이다. 정밀한 검사만 건강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떨며 우리는 서로의 건강을 확인할 수 있다. 기꺼이 대구와 선별진료소를 지키는 의료인과 자원활동가들, 그리고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자가격리 중증장애인과 기꺼이 돌봄격리를 실천하는 생활지원인들에게 덕분에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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