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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서로 지키는 마음으로 버틴다” 대구 선별진료소 열흘의 기록

등록 2020-03-12 19:48수정 2020-03-13 02:14

대구경북 인의협 의료진 ‘드라이브스루’ 진료소 봉사 열흘
바쁘고 긴장되지만 시민 격려 큰 힘
의사들이 군인들에 ‘삼계탕’ 쏘자 장병 가족은 ‘갈비탕’으로 화답…오가는 온정
‘가족 거리 두기’로 딸 못 안아줘…“아빠 바이러스 조심” 편지에 눈시울
대구 달서구에 있는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에서 자원 봉사를 하고 있는 의료진들이 진료 시작 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동은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제공.
대구 달서구에 있는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에서 자원 봉사를 하고 있는 의료진들이 진료 시작 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동은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제공.

김동은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김동은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편집자주]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심각한 지역은 여전히 대구다. 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대경 인의협) 소속으로, ‘드라이브스루’ 방식의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봉사중인 김동은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가 열흘의 진료 기록을 <한겨레>에 보내왔다.

대경인의협이 대구 달서구의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진료를 시작한 건 지난 2일이다.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드라이브스루’ 방식의 진료소다. 환자들이 차에 탄 채로 창문을 통해 문진과 검체 채취를 한다. 진료가 시작되는 건 매일 아침 9시지만 검사를 받으려는 차량은 30분 전부터 이미 긴 줄을 이룬다.

우리 선별진료소는 대경인의협이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대경인의협은 지난달 보건복지부에 요청해 달서구에 선별진료소 부스 4개를 설치했다. 이곳을 의사 20명, 간호사 12명, 파견 군인 21명이 교대로 지킨다. 나를 포함해 병원 근무 중 자투리 시간이나 주말을 할애해 진료를 보는 의사들이 대부분이지만, 의정부나 부산 등지에서 휴가를 내거나 개인병원 문을 닫고 한걸음에 달려온 분들도 있다. 주말에 선별진료소에 와서 힘을 보태겠다는 인의협 회원은 너무 많아 순서를 정해야 할 정도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원하는 회원들이 많아지고 있다.

다른 선별진료소와는 달리 대경인의협이 운영하는 선별진료소는 노숙인, 쪽방 거주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약자들의 선별검사를 무료로, 빠르게 지원하고 있다. 얼마 전에도 장애인 인권단체와 함께 장애가 있는 분들 11명이 모두 안전히 검사를 받으시도록 아침부터 오후까지 지원했다.

우리 진료소에선 하루 평균 300~400명의 검사를 진행한다. 분주함과 긴장감에 눌린 채 힘겨운 일정을 소화하느라 지칠 법도 하지만, 우린 쉽게 지치지 않았다. 시민들의 격려, 서로를 지키려는 마음은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장병들이 더욱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 한 인의협 의사는 점심으로 삼계탕을 샀다. 소식을 들은 한 장병의 부모님이 다음날 갈비탕을 보내왔다. 다음날엔 자원봉사를 나온 간호사 한 분이 음식을 대접했고, 그다음엔 인의협에서 찜갈비를 준비했다. 지친 몸을 위로하는 온정이 담긴 식사들이었다.

그 와중에도 가장 힘든 건 어린 딸아이를 안아주지 못하는 것이다. 방호복을 입고 철저히 소독을 하기에 염려가 없지만 가족들을 멀리하고 구석방을 혼자 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다 ‘가족과의 거리두기’로 배로 힘들다. “아빠 바이러스 조심해.” 딸아이가 정성 들여 쓴 편지를 건네올 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많은 분이 염려해주셔서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동안 국민이 아플 때, 우리 사회가 병들었을 때 과연 의사들은 얼마나 국민과 우리 사회와 함께 아파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어 대구에 따뜻한 봄이 찾아오면 진료 현장에서 더 ‘좋은 의사’가 되어 보답하겠다.

<김동은 교수의 메모 전문>

■ 대구경북 인의협, 약자를 위한 선별진료소를 열다

지난달 18일 대구에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후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대구의료원 등 거점 병원과 선별 진료소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코로나19’와 싸우는 최일선에 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대경 인의협)이 함께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공감대가 회원들 사이에 형성되었다. 고민은 어느 진료현장으로 우리가 달려가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크게 거점병원의 격리병동에서 지원하는 방안과 대구의료원과 보건소 등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놓고 고민했다.

전염병 확산 초기 진료 현장에서 들려오는 시민들의 큰 불편은 선별검사를 빨리 받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대구의료원에 설치된 선별진료소를 먼저 둘러봤더니 의사는 24시간, 간호사는 2교대 근무를 하며 400명 이상을 진료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중보건의사가 파견돼 상황이 호전되고 있었다. 거점병원 역시 경증 환자가 많이 입원한 곳의 경우 간호사는 많이 부족했지만 의사인 우리가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대경 인의협은 선별진료소에 힘을 보태기로 결정했다. 우리 회원들이 운영하는 선별 진료소는 다른 선별진료소와는 달리 노숙인, 쪽방 거주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선별 진료소로 만들고 싶었다. 어떤 방식으로 선별 진료소에 힘을 보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지난달 24일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대구 지역에서 봉사할 진료의사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게시되었다. 즉각 대경인의협 전체 회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선별진료소에 참여할 회원을 모집했다. 불과 하루 만에 10여 명의 회원들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 소식을 들은 전국의 인의협 소속 의사들도 동참 의사를 밝혔다. 봉직하고 있던 병원에 2주간 휴가를 내고 오겠다는 안과 전문의, 운영하던 개인 의원 문을 닫고 오겠다는 원장도 있었다. 야간 당직을 마친 후 곧바로 선별 진료소로 달려와 하루 종일 진료를 하거나 주중 단 하루 쉬는 날을 포기하고 진료 지원에 나서기도 한다. 주말에 선별 진료소에 와서 힘을 보태겠다는 회원들은 너무 많아 순서를 정해야 할 정도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원하는 회원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보건복지부로부터 진료소 시작일이 3월2일로 결정되었다는 통보가 왔다. 장소는 달서구였고 최근 많은 관심을 받았던 ‘드라이브스루’ 형식의 임시 선별진료소였다. 애초 뜻한 대로 대경인의협이 운영하는 선별진료소는 노숙인, 쪽방 거주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선별검사를 무료로, 빠르게 지원하고 있다. 얼마 전에도 장애인 인권단체와 함께 장애가 있는 분들 11명이 모두 안전히 검사를 받으시도록 아침부터 오후까지 지원했다. 장애인 인권단체에서 인의협 선별진료소를 알고 있기에 지속적으로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분들을 포함해 달서구 임시 선별진료소에는 3일 470명을 정점으로, 하루 평균 300~400명의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 진료 30분 전부터 검사 대기자는 길게 줄서

오전 8시 30분이면 진료에 참여할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군 인력, 파견 공무원 등이 선별 진료소에 모인다. 멀리 내려다보면 검사를 받기 위해 온 차량이 30분 전부터 이미 긴 줄을 이루고 있다. 서둘러 레벨 디(D) 방호복으로 갈아입고 보호안경과 ‘페이스실드’를 쓴다. 처음 진료소에 온 새내기 의사에게는 숙달된 선배 조교가 방호복 착용법을 자세히 가르쳐준 후 도와준다. 감염 예방을 위해서는 방호복을 입는 것도 중요하지만 벗는 것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방호복을 벗을 때는 약간의 긴장감이 흐르기도 한다.

바이러스에 대비해 완전 무장을 하고 나면 바로 옆에서도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들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 때도 있다. 그런데 검사 과정에서 원활한 소통을 하려면 누가 누구인지 잘 알아봐야 한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방호복 등판에 굵은 펜으로 이름을 큼직하게 적어준다. 이름만 적는 것은 아니다. ‘인의협 비주얼 담당 아무개’ 등 재미있는 말을 적거나 이름 옆에 예쁜 하트를 가득 그려 넣기도 한다. 코로나19를 물리치기 위한 출격 준비가 완료되는 매일 아침 9시께엔 모두 모여 ‘파이팅’도 외친다. 자신의 이름을 먼저 부른 후 파이팅을 외치는 것이다. ‘김동은, 파이팅!’ 긴장을 푸는 우리만의 작은 노하우다.

달서구 임시 선별진료소에는 4개의 진료 부스가 설치되어 있다. 각 부스마다 의사 한 명, 간호 인력 2~3명이 팀을 이룬다. 진료소 입구에서는 군에서 파견 나온 방호복을 입은 씩씩한 장병이 대기자를 안내한다. 검사를 받으러 온 이들은 먼저 접수 뒤 진료에 필요한 문진표를 작성하게 된다. 다음 단계는 의사의 문진이다. 차에 탑승한 채로 창을 조금만 내리게 한 후 인후통, 발열 등 ‘코로나19’ 감염증을 의심할 만한 증상이 있는지 묻는 것이다. 아울러 ‘고혈압’, ‘당뇨’ 등을 포함한 기저질환이 있는지가 문진의 중요한 항목이다.

문진이 끝나면 검체 채취에 들어간다. 바이러스가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입과 코에 긴 면봉을 넣어 검체를 채취하고, 이후 통을 건네면 창문을 올린 후 피검자가 직접 가래를 직접 모아 밖으로 전달한다. 모든 절차가 감염의 예방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마지막 단계에서 차량 소독을 한 후 검사를 받은 이들은 선별진료소를 빠져나가게 된다. 검사를 받는데 드는 시간은 평균 10분 정도다. 일반적인 선별진료소에 견줘 훨씬 빨리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것이 드라이브스루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이다.

오전 9시에 시작한 오전 진료는 오후 12시30분에 마무리된다. 그 사이 방호복을 입은 상태에서는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쉽지 않다. 방호복을 벗었다가 다시 입어야 하는 불편이 있는 데다 일회용인 방호복을 아껴야 하기 때문에 3시간 동안 화장실행을 줄이려 가급적 물도 마시지 않는다. 12시가 가까워지면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다. 서로 말은 안 해도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걸 다 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가위바위보’ 배틀이다. 식당에 가는 순서를 정하는 중요한 대결이다. 4개 부스를 대표하는 선수가 모여 한판 승부를 벌인다. 이긴 팀은 환호성을 지르고 진 팀은 터벅터벅 다시 진료실로 향한다. 장기화되는 진료 속에 지치지 않도록 만든 작은 장치들 덕에 우리 의료진들은 웃음을 찾는다.

■ 장병들에 삼계탕 대접하자, 장병 가족이 갈비탕으로 화답…오가는 온정 서로를 지키려는 마음은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장병들이 더욱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 한 인의협의 의사는 점심으로 삼계탕을 샀다. 소식을 들은 한 장병의 부모님이 다음날 갈비탕을 보내왔다. 다음날엔 자원봉사를 나온 간호사 한 분이 음식을 대접했고, 그 다음엔 인의협에서 대구의 대표 먹거리인 찜갈비를 준비했다. 지친 몸을 위로하는 온정이 담긴 식사들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는 건 저녁 6시다. 검체 수를 확인해 보건소에서 온 수거차량에 실어주고 진료실을 소독하면 ‘보람찬 하루’가 마무리가 된다. 종일 답답하게 했던 방호복을 벗고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면 너무나 상쾌하다. 아침에 ‘파이팅’을 외쳤던 자리에 다시 모여 하루를 평가하는 게 우리의 진짜 마지막 일정이다. 부족한 물품이나 개선해야 할 사항 등을 의논한 후 많은 시민들이 보내준 떡과 빵 등의 간식을 서로 나누고 답지한 작은 감사의 선물을 손에 든 채 집으로 향한다.

시민들의 격려는 늘 큰 힘이 된다. 검사를 마친 후 차창을 올리기 전 ‘정말 고맙습니다’ 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분이 적지 않다. ‘힘내세요’하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고 떠나는 분도 있다. 진료소로 답지하는 시민들의 간식과 편지 등은 지쳐있는 의료진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은 동영상을 촬영해 보내주기도 한다. ‘코로나 환자 치료해주다가 선생님이 아프면 안 돼요’라고 말하는 아이의 영상을 받아보고 울컥한 적도 있다.

그동안 의사들은 국민들에게 많은 실망을 끼쳐드렸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염려해주시고 걱정해 주시니 감사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국민들이 아플 때, 우리 사회가 병들었을 때 과연 의사들은 얼마나 국민들과 또 우리 사회와 함께 아파했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돼 진료현장으로 돌아가게 되면 환자들에게 잘하는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

■ 그래도 힘든 것은…딸아이를 안아줄 수 없는 것

현장에서의 어려움은 동료들과 이겨낼 수 있지만, 가장 힘든 부분은 ‘가족’들이다. 코로나19 현장 진료에 나선 걸 부모님께는 제대로 말씀도 드리지 못했다. 걱정이 크실 것 같아서다. 부모님은 무뚝뚝한 아들에게 직접 물어보지는 못하고 손녀에게 전화해 아들의 동향을 살피신다. “아빠 요즘 선별 진료소 같은데 가는 건 아니지?”라고 물어보셨다고 해서 뜨끔했다. 부모님댁과 진료소가 가까운 탓에 진료를 하다 지나는 어르신들을 보면 흠칫 놀랄 때가 있다. 혹시나 부모님이 아닐까 해서다.

하루 한번 안아주던 어린 딸아이를 안아볼 수 없는 것도 속상하다. 방호복을 입고 철저히 소독을 하기에 걱정은 없지만 혹시나 싶어서 집에 들어가면 가족들을 멀리하고 구석방을 혼자 쓴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다 ‘가족과의 거리 두기’를 동시에 하느라 두 배로 힘들다. “아빠 바이러스 조심해.” 딸아이가 정성 들여 쓴 편지를 건네올 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가족들의 ‘사랑의 백신’ 덕분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얼씬도 못할 것 같다.

정리/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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