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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현장] “감염병·정신질환 함께 치료하려 의료진 긴밀 협업”

등록 2020-03-11 05:00수정 2020-03-11 07:35

[현장] 청도대남병원 환자 받은 국립정신건강센터

내과 없어 외부서 들어와 진료
“환경변화로 불안해하는 환자도”
“청결한 환경·식사가 회복 도움”
지난달 21일 경북 청도대남병원 5층 폐쇄병동 환자 104명 가운데 2명을 제외한 전원이 코로나19에 걸린 사실이 확인됐다. 환자 가운데 7명이 연이어 숨졌다.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경북 청도대남병원 5층 폐쇄병동 환자 104명 가운데 2명을 제외한 전원이 코로나19에 걸린 사실이 확인됐다. 환자 가운데 7명이 연이어 숨졌다. 연합뉴스

“코드 그레이(Code Gray), 코드 그레이, 3차 (환자들이) 도착합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국립정신건강센터에 긴박한 목소리의 방송이 흘러나왔다. 다른 병원에서 코로나19 치료를 받아 증상이 호전된 경북 청도대남병원 정신과 폐쇄병동 환자가 30분 뒤 도착한다는 신호였다. 현재 청도대남병원 환자들은 세군데 병원에 뿔뿔이 흩어져 각기 치료를 받고 있다. 중증인 22명은 국립중앙의료원을 비롯한 전국 13개 병원, 중등도·경증으로 분류된 35명은 국립정신건강센터, 진단검사 결과 연속 두번 음성이 나와 격리 해제된 38명은 경남 창녕군 국립부곡병원에 있다.(10일 0시 기준)

청도대남병원에 쓰레기가 쌓였던 까닭

코로나19와 정신질환을 동시에 앓는 폐쇄병동 환자들에 대한 치료는 감염병 유행 초기부터 지금까지 가장 큰 난제로 꼽혀왔다. 조현병을 비롯한 중증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겠다는 병원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신종 감염병 환자를 치료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도 이런 사정에서다. 청도대남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한 104명 가운데 2명을 제외한 전원이 코로나19에 걸린 사실이 확인된 건 지난달 21일이다. 처음엔 환자들을 대남병원에 격리해 치료하기로 했지만 첫 확진 이후 엿새 만에 사망자가 7명으로 늘면서, 지난달 26일 모든 환자에 대한 전원 조치가 결정됐다. 이때를 즈음해 사망자도 더는 늘지 않았다.

의료진은 열악한 환경에 있던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옮긴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됐다고 본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5일까지 환자들을 치료한 전준영 국립암센터 감염내과 전문의는 “폐렴이 있고 열이 있는 환자분들에겐 항바이러스제 칼레트라나 항생제를 처방하긴 했지만 우리가 한 건 환자들이 스스로 회복하는 걸 도와드린 정도”라며 “깨끗한 음압 병실에서 식사를 하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환경이 치료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중증환자를 맡은 김연재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내과 전문의는 “청도대남병원은 중증환자 발생에 대응이 어려운 진료 환경이었다”며 “우리 병원에 온 환자 7명 대부분은 증상이 호전되고 있다”고 밝혔다. 청도대남병원에선 쓰레기와 오물을 치워주는 인력조차 없어 외부에서 온 의료진들이 폐기물을 한데 모아 쌓아둘 수밖에 없었다.

경북 청도대남병원에 쌓여있던 의료폐기물.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제공
경북 청도대남병원에 쌓여있던 의료폐기물.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제공

코로나19도 정신질환도, 모두 공포의 대상

정신질환이 있는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선 내과와 정신과 의료진 간 긴밀한 협업이 필요하다. 김연재 전문의는 “항바이러스제로 쓰이는 칼레트라는 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약물 농도를 높이는 등 영향을 주기 때문에 칼레트라 처방 땐 정신과 의료진과 상의해 환자가 먹던 약 복용량을 조절했다”고 말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의 경우엔 내과 의료진이 따로 없어 애를 태워야 했다. 청도대남병원 환자가 처음 센터로 온 지난달 26일 전준영 감염내과 전문의, 중앙보훈병원 이기승 소화기내과 전문의 등 3명의 의료진이 센터로 급파돼 5일까지 진료를 맡았다. 5일부턴 또 다른 3명의 내과 전문의가 센터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청도대남병원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자원봉사를 위해 센터로 오거나 다른 병원에서 파견된 간호사 9명도 센터 간호사들과 2인 1조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신종감염병이나 정신질환은 모두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센터 밖 의료진은 정신질환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걱정했고, 센터 의료진은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했다. 전준영 전문의는 “치료 과정에서 환자에게 증상이 어떠냐고 묻는 의사소통이 중요한데, 이것이 원활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있었다”며 “센터에 상주하는 정신과 선생님들이 함께 환자를 봐주고, 아기처럼 투정부리는 환자들도 계속 얼굴을 보이고 잘 달래며 물어보니 어느 정도는 이야기를 해주더라”고 말했다. 센터 내 감염 방지를 위해 개인보호구 착용 훈련뿐 아니라 코로나19 환자와 분리된 동선 구성, 건물의 공기 흐름 제어, 폐기물 관리와 소독 작업까지 세밀한 준비가 필요했다. 다급한 상황에서 이러한 부분을 담당한 건 전준영 전문의였다. 전진용 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지원 과장은 “나를 포함해 센터 직원들도 불안이 많았다. 기본적인 손 씻기 원칙을 배우고, 개인보호구 입기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불안이 가라앉고 있다”며 “실제 환자와 이야기를 해보면 조현병에 대한 편견을 없앨 수 있는 것처럼 감염병도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진들이 청도대남병원 환자가 머물 1인 음압병실을 점검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제공
지난달 27일 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진들이 청도대남병원 환자가 머물 1인 음압병실을 점검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제공

비용 때문에…만들지 못 할 뻔한 음압병실

코로나19 치료를 위한 일이지만, 경북 청도에서 서울까지 장거리 이동이 환자들에게 심적 건강에 좋을 리 없다. 갑자기 환경이 바뀐 데다 적응이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다른 병원으로 이송을 앞둔 환자들은 말과 행동으로 불안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치료에 나설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센터는 전국 5개 국립 정신의료기관 가운데 음압병실이 있는 유일한 병원이자 인력이 가장 많은 곳이다. 환자 증상이 악화할 경우 의료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나은 수도권에서 병상을 찾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도 있었다. 옛 국립서울병원은 국립정신건강센터 건물을 지으면서 감염병에 걸린 정신질환자 치료를 위한 음압병실을 15개 설치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남윤영 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부장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뿐 아니라 병원 내부에서도 고가의 시설이 필요하냐며 반대가 많아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병실이다. 센터는 왼편 건물을 비우고 이동형 음압기를 설치해 모두 29개 음압병실을 마련했다.

신종감염병만큼 무서운 현실

2016년 문을 연 센터는 청도대남병원과 비교가 어려울 만큼 쾌적한 공간이다. 그런데도 청도에 언제 가느냐고 수시로 묻는 환자들이 있다. 항상 함께 지내던 환자들과 떨어져 1인 음압병실에 있는 걸 힘겨워하는 환자들도 있다. 청도대남병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한 남윤영 부장은 “병원에 오래 입원해 있다 보니 가족 대신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온 것 같다”며 “폐쇄병동에 오래 입원한 환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가족에게 짐이 되는 존재라는 걸 안다. 서울이나 창녕으로 가면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을까봐 두려워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지난달 22~23일 직접 이송을 도운 사망자들은 ‘잘 다녀오겠다’고 말하며 걸어서 병원을 나섰다, 불과 1~2일 만에 숨졌다. 이러한 소식을 뉴스로 접한 환자들의 충격도 컸다.

지난 5일 오전 1인 음압병실을 나서 국립부곡병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러 가던 환자 두 명이 오랜만에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오랫동안 손을 맞잡았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에게 고립과 소외는 신종 감염병만큼이나 무서운 현실로 보였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지난 3월5일 국립정신건강센터 1인 병실에서 격리해제된 청도대남병원 환자들이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손을 잡고 반가워하고 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제공
지난 3월5일 국립정신건강센터 1인 병실에서 격리해제된 청도대남병원 환자들이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손을 잡고 반가워하고 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제공

국립정신건강센터 간호사들이 의료폐기물을 정리하고 있다. 청도대남병원의 의료폐기물 처리 환경과 대조적이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제공
국립정신건강센터 간호사들이 의료폐기물을 정리하고 있다. 청도대남병원의 의료폐기물 처리 환경과 대조적이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제공

지난 3월4일 청도대남병원 환자가 서울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 음압병실로 이송되는 모습. 국립정신건강센터 제공
지난 3월4일 청도대남병원 환자가 서울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 음압병실로 이송되는 모습. 국립정신건강센터 제공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청도대남병원 환자들에게 제공한 3월5일 아침 식사. 국립정신건강센터 제공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청도대남병원 환자들에게 제공한 3월5일 아침 식사. 국립정신건강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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