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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법원은 검찰·언론에 공격받는 무고한 존재인가

등록 2020-03-08 09:03수정 2020-03-08 09:07

[토요판] 법정에 선 양승태 사법부
18. 사법행정권 ‘이중잣대’

검찰 수사내용 법원행정처 보고한
형사수석부장 등 현직 3명 무죄
사법부 망신 도모한 검찰 공격에
법원, 수동적 대응 한 것 ‘면죄부’

사법행정, 재판 관여할 수 없다며
판사 직권남용죄 무죄 선고됐는데
영장판사의 재판기록 상부 보고
“중요한 사법행정”이라며 또 무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지난달 13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왼쪽부터)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가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지난달 13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왼쪽부터)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가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고위 법관들이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대법관 이상의 고위 법관들이 이렇게 무더기로 법정에 서는 것은 사법부 역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2019년 3월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첫 재판을 시작으로, 진실을 밝히고 유무죄를 따지는 긴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법정 르포의 방식으로 ‘사법농단 재판’을 중계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피고인들은 각 무죄.”

지난달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가 여덟 글자의 짧은 주문을 읊었다. ‘영장 정보 유출’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성창호·조의연 등 세명의 현직 부장판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악수를 나눴다. 신광렬 판사는 “현명한 판단을 해주신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법원을 떠났다. 취재진이 소회를 묻자, 말을 아끼는 성창호 판사 대신 변호인이 입을 열었다. “사실관계로 보나, 법리적으로 보나 (검찰 기소는) 무리한 측면이 있었다.”

이들을 법정에 세운 사건은 4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 대규모 법조비리 사건인 ‘정운호 게이트’가 불거졌다.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원정도박 사건 수사를 무마시켰고,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는 로비를 통한 보석을 약속했다. 검찰 수사는 로비 창구로 전락한 현직 판검사로 확대됐다. 그해 8월 김수천 당시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정 대표가 타던 외제차 레인지로버를 시세보다 싼 값에 산 뒤 그 돈을 돌려받거나, 네이처리퍼블릭 후원 미인선발대회에서 딸이 수상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의 법대 위에 ‘현직 판사’의 구속영장 청구서와 수사 기록이 올라왔다.

검찰이 먼저 건 싸움

“검찰 전략에 따라 언론의 관심이 법원에 집중되는 위기 상황에 대한 대비책 마련 필요. 위기상황 도래 전 언론의 관심을 검찰로 돌리는 방안 마련 필요. 홍만표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관여했던 형사사건 중 검찰의 부적절한 기소가 의심되는 사안을 적극 발굴한 후 <한겨레> 등 진보 언론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임.”(‘정운호 사건 관련 제도개선 방안’, 2016년 5월12일)

“현재까지 검찰 수사 태도에 비춰볼 때 수사 확대가 예상되고 수사 확대 시 법원이 입을 치명적인 결과를 예상해 본다면, 선제적 대응 방안 모색 필요. 중대한 위법 사항이 드러나지 않은 법관들 수사 착수 및 정보 유출로 인한 사법신뢰 훼손, 흠집내기용 수사를 차단하기 위하여 검찰에 불필요한 수사 확대 중단을 촉구하기 위한 강력한 메시지 전달 필요. 강력한 메시지는 검찰 수뇌부 및 검찰 조직 전체를 겨냥한 직접적이고 거부 불가한 내용이어야 함. 정운호 상습도박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는 순간 홍만표 변호사의 성공한 로비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게 돼 검찰 수뇌부 및 검찰 조직 전체가 치명상을 입을 것으로 예상.”(‘현안 대처 방안’, 2016년 8월17일)

검찰에 따르면, 검찰의 일부 수사 기밀은 성창호·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신광렬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임종헌 대법원 법원행정처 차장 순으로 전달됐다고 한다. 사건 관계자의 진술 내용, 검찰에 임의제출한 자료, 수사 진행 상황 등이 포함됐다. 당시 대법원 예규(중요 사건의 접수와 종국 보고)에 따라 중요 사건의 접수와 처리 결과 보고는 가능했다. 하지만 수사 내용까지 보고할 법적 근거는 없었다. 관련 예규마저 2018년 9월 “재판 독립 침해의 우려가 있다”며 폐지됐다. 특히, 법원행정처는 언론의 관심을 검찰로 돌리고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분석해 이를 언론에 흘리는 등 검찰 압박 방안을 모색했다. 검찰은 이들을 현직 법관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은폐·저지하기 위해 영장 재판에서 입수한 검찰 수사 기록을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전달했다는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로 기소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의 판단은 검찰의 공소사실과 달랐다.

1심 판결문이 정리한 사실관계는 이렇다. 현직 법관의 비위 의혹이 불거지자, 사법부에 대한 대한 비난과 비판 여론이 거세졌다. 그해 4월 임종헌 차장은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여론 악화에 대한 대책과 사법 신뢰 회복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런 방침은 관련 사건이 몰려 있는 서울중앙지법에도 공유됐고, 영장 재판을 통해 확보된 검찰 수사기록 일부가 영장전담 판사, 신광렬 형사수석부장판사, 임종헌 차장을 거쳐 법원행정처에 전달됐다. 재판부 판단에 따르면, 이는 “사법행정 담당자가 파악해 법원행정처에 보고해야 할 중요한 사법행정 사항”으로 정당한 직무 행위에 해당했다.

특히, 법원행정처가 검찰 대응 및 압박 방안을 강구한 것도 검찰이 구속영장 심사 과정에서 김수천 부장판사에 대한 뇌물수수 의혹을 언론에 흘리면서 촉발된 것이었다. △검찰의 수사 및 공판 관련 의혹을 활용해 검찰을 압박하는 방안 △언론의 관심을 법원에서 검찰로 돌리는 방안 △검찰총장 압박 방안 등이 법원행정처 문건에 담겼다고 재판부는 인정했지만, 이는 문건 일부에 불과하다고 봤다. 문건에 기재된 ‘다소 과격한 표현’ 또한 검찰 대응 차원에서 검토한 것일 뿐, 실행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아이디어’ 차원에 불과하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검찰 공격에 법원이 수동적으로 대응한 것에 불과하다는 취지다.

“검찰에 대한 대응 내지 압박 방안의 검토가 이뤄진 것은 검찰이 언론을 통해 여러 비리 의혹 법조인 중 특히 현직 법관에 대한 수사 정보를 고의로 유출한다는 의혹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중략) 검찰 측에서 수사팀에 철저한 보안 유지 지시를 하고 간부진의 대언론 수사 상황 언급을 자제하겠다는 약속을 한 뒤 더 이상 검토되지 않았으며, 그 보고서를 통해 검토된 방안들이 별다르게 실행에 옮겨지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략)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법원행정처 내부에서 법관에 대한 수사 확대를 저지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검찰 압박 방안을 마련해 실행에 이르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1심 판결문)

이 시각에 따르면, 당시 법원행정처의 대응은 사법부 망신주기를 도모한 검찰 ‘액션’에 대한 ‘리액션’에 불과해진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중요 사건에 대해서는 영장 발부나 기각에 따라 언론, 검찰, 정치권 등이 결론을 평가하고 법원을 비난하거나 공격하기도 한다. 영장 판사들이 오보나 추측성 기사, 정치권이나 시민단체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받는 경우도 많다”고 적었다. ‘검찰과 언론에 공격받는 무고한 존재로서의 법원.’ 이 프레임 아래에서는 비위 법관 징계, 제도 개선과 같은 마땅한 조치뿐 아니라, 대언론·대국회·대검찰 대응 전략까지 모든 법원행정처의 대응이 이해받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2018년 7월 수백건의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이 공개됐을 때, 시민들을 놀라게 한 건 ‘정무적 판단 아래 움직이는 법원’의 실체였는데, 이러한 법원의 실상이 법원 판결문을 통해 면죄부를 얻은 셈이다. 검찰은 영장 재판에서의 정보 유출로 검찰 수사에 장애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법연수원 동기로 친분이 두터웠던 이원석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과 김현보 대법원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이 2016년 5~9월 40차례 이상 통화했고 수사 진행 상황, 영장 청구 계획 등은 35차례 메모로 정리됐다. 사적 관계를 이용해 언론에 수사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검찰이 정보를 알아서 법원이나 언론에 유출한 만큼,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없었다는 논리다. 화살은 또 검찰에 돌아갔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결과론적 해석이다. 검찰이 관련 정보를 흘렸든 흘리지 않았든, 비공개로 진행되는 재판상 기록이 그 재판부를 넘어서 상부에 보고돼도 되는가, 그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고 말했다.

이현령비현령, 사법행정권

이 같은 시각에 따라, 사법행정권의 범위도 그 폭이 한층 넓어지게 됐다. 사법행정권은 ‘법원 조직과 재판 사무의 적정한 운용을 지원·관리·감독할 권한과 의무’를 뜻한다. 신 판사는 형사수석부장→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이어진 보고가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한 정당한 ‘사법행정권’ 행사라고 주장했다. 임종헌 전 차장 또한 지난 1월9일 이들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비슷한 인식을 내비쳤다.

“중앙지법 영장 재판에는 우리 사회 중요 사건이 몰려 있습니다. 심리 과정이나 결과에 언론, 감찰, 국민의 관심이 크죠.”(신광렬 판사 변호인)

“네.”(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기각되면 검찰에서 언론에서 부당하다고 반발하고, 나아가 정치권이나 시민사회도 비난하죠.”

“네.”

“이 경우엔 공보관 등이 나서서 정치권, 언론에 영장 판사에 대한 부당한 공격에 적극 대응해 필요한 설명을 하고 판사를 보호하고 사법신뢰 저하를 막을 필요가 있죠.”

“당연합니다.”

“법원행정처에서 직접 나서 돕기도 하죠. 이렇게 적극 대응하는 건 언론, 여론,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해서 재판할 수 있는 토대이죠.”

“네.”

“그러기 위해선 영장 결과를 어느 정도 파악해야 하는 거죠.”

“네.”

“그러기 위해선 형사수석이 주요 사건 접수보고 등을 통해 처리 결과를 확인하거나 보고받는 것이라고 하는데, 증인도 형사수석부장으로 재직할 때 그런 방법으로 확인하거나 보고받았죠.”

“네.”

“특히 법관 비리는 사법신뢰와 연결돼 신속하게 파악해야 하죠.”

“그렇습니다.”

재판부는 이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과정에서 사법행정권자가 아닌, 영장 판사들의 재판 기록 보고 행위도 자연스레 정당화됐다. 영장전담 판사들은 “통상적인 예에 따라 중요 사건에 관해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 영장 처리 결과 등을 보고”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재판 독립의 원칙상 기밀이 보장돼야 할 영장 재판 내용까지 사법행정권자의 지시에 따라 내부 보고를 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 부분은 ‘어떤 이유에서건 특정 재판에 관여해선 안 된다’고 못박은 임성근 부장판사의 1심 판결문과 엇나가는 지점이다. 같은 법원 다른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송인권)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였던 임 부장판사가 사법행정권자가 아니라고 보면서, 그에게 “재판에 관여할 권한 자체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봤다. 권한이 없으면 남용도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이 권한이 인정될 경우 일선 재판에 개입할 합법적인 통로가 열리게 된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임 판사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9년 5월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가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9년 5월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가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사법농단 재판이 답해야 할 질문들

사법권은 외부 세력뿐 아니라, 법원 내부 세력으로부터도 독립돼야 한다. 대법원장, 법원행정처 차장, 형사수석부장 등이 사법행정권한을 휘둘러 일선 재판에 관여했다는 게 사법농단 의혹의 기본 뼈대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정당한 사법행정권의 행사인지 가려내는 게 중요하다. 이는 주요 혐의인 직권남용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기준점이기도 하다. 사법행정권자가 사법행정 업무를 위해 일선 재판부에 협조를 요청할 권한이 있고, 재판부 판단 아래 이에 응할 수 있다 해도, 영장 재판에 올라온 수사 기록까지 보고해도 되는 것인가. 반대로, 일선 재판부에 사법행정에 협조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조차 없기 때문에 재판 개입 혐의 자체를 처벌하지 못해도 되는 것인가. 사법행정권은 어디에 그 경계가 그어져야 하는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차장의 사법농단 재판이 국민에게 답해야 할 질문들이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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