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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법 “회삿돈 빼돌려 자녀 교육·생활비 사용…사해행위”

등록 2020-03-02 12:20수정 2020-03-02 15:02

한겨레 자료 사진
한겨레 자료 사진
거액을 횡령한 다국적 기업의 국내 법인 재무이사가 잠적하기 직전 가족들에게 자녀 교육비와 생활비로 약 1억원을 송금한 행위를 대법원은 사해행위라고 판단했다. 사해행위는 채무자가 고의로 재산을 줄여 채권자가 충분하게 변제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가리킨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스위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 에이비비(ABB)그룹의 한국법인인 에이비비 코리아가 재무이사 오아무개씨를 상대로 낸 사해행위 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부로 돌려보냈다고 2일 밝혔다.

오씨는 회사 자금 1317억원을 횡령한 뒤 2017년 2월 해외로 도피했다. 오씨는 2008년 회사 계좌에서 부인 계좌로 3000만원을 이체하고 도피 전날 부인에게 8만7000달러(약 1억원)를 송금했다. 회사 쪽은 “오씨와 부인 간의 증여 행위”라며 “사해행위로 증여계약은 취소돼야 한다”고 소송을 냈다. 또 부인이 받은 3000만원은 부당이득금 반환을 청구했다.

1심은 회사 쪽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채무자가 채무 초과 상태에서 자신의 재산을 타인에게 증여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는 사해행위이며, 수익자인 피고의 악의도 추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오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3000만원을 횡령해 부인에게 이체했더라도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부당이득이 아니라고 봤다. 8만7000달러를 송금한 것도 오씨가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주기적으로 돈을 가족들에게 송금해왔고, 부인 입장에서는 이 돈도 생활비와 교육비 명목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증여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이 이를 사해행위로 최종 판단했다. 대법원은 “8만7000달러를 송금한 것은 해외 도피가 임박한 시점에 회사 쪽 자금을 빼돌려 무상으로 아내에게 귀속시키기 위함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아내도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8만7000달러를 자녀들의 학비와 생활비 등으로 사용했다고 해도 이는 사후적인 사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2008년 송금한 3000만원에 대해서는 부당이득반환 청구를 기각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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