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에게 수백억원의 손실을 끼치고 상장 폐지된 ‘씨모텍’의 유상증자를 주관한 디비(DB)금융투자(구 동부증권)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2005년부터 시행된 증권집단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첫 본안 판단이다.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 4700여명도 배상받을 수 있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이아무개씨 등 씨모텍 주주 186명이 디비금융투자를 상대로 낸 증권 관련 집단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27일 확정했다. 대법원은 “피고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되, 다만 유상증자 이후에 주가가 하락하게 된 것이 전적으로 피고의 탓이 아닌 점 등의 사정을 감안해 피고의 책임 비율을 전체 손해액의 10%인 14억5500여만원으로 제한한 원심판결을 확정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이씨 등 원고 186명을 포함한 피해자 4972명에게 같은 효력이 적용된다. 이들은 평균 40만원의 배상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1심 판결 이후 디비금융투자로부터 지급받은 돈은 법원에 공탁한 뒤 이자가 붙어 20억으로 늘었다. 주주들은 피해자들의 신고를 받아 6개월에서 1년 이내 이 돈을 나눌 계획이다.
증권집단소송제는 분식회계·부실감사·주가조작·내부거래 등의 불법행위로 인한 다수 투자자의 피해를 효율적으로 구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투자자 중 일부가 승소하면 소송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나머지 투자자들도 동일한 효력을 적용받는다. 다만 집단소송을 하기 위해서는 본안 판단 이전에 법원으로부터 소송허가 결정을 받아야 하는 등 오랜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있다. 이씨 등 주주들도 대법원의 본안 판단을 받기까지 9년, 소송허가 결정도 소 제기 5년 뒤에야 결정됐다.
디비금융투자는 지난 2011년 8월 상장 폐지된 방송·통신장비 업체 씨모텍의 유상증자를 주관했다. 이씨 등 주주들은 유상증자에 참여해 씨모텍이 발행한 주식을 취득했으나, 유상증자 이후 대표의 횡령·배임·주가조작·불법 자금 대출 등의 문제가 불거지며 씨모텍은 상장폐지됐다. 이씨 등은 디비금융투자가 증권신고서 등에 씨모텍의 최대주주 나무이쿼티의 차입금 220억원이 자본금으로 전환됐다고 거짓 기재해 투자 판단을 잘못했고 145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2011년 10월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재판부는 디비금융투자의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씨모텍의 주가 하락이 증권신고서 등의 거짓 기재로 인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유상증자 후에 발생한 횡령·배임 등 다양한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해 이씨 등이 청구한 금액의 10%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씨 등은 배상액이 적다며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피해자를 대리한 법무법인 한누리의 한 변호사는 “원고당 평균 300만원의 피해를 보았는데 40만원만 배상받을 수 있게 된 셈”이라며 “횡령 등 다른 이유가 있다는 이유로 증권사의 연대책임을 감경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 사건처럼 소송 기간은 길고 배상액이 적게 나오면 증권집단소송의 효용성은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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