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2020 사회적 가치 포럼’이 지난 20일 서울시 중구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려 정부·노동·시민사회·공공기관 등에서 온 참석자들이 발표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사진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후쿠시마 북쪽으로 방사능이 이동할 것이라고 예측했음에도 국민에게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지역 주민 중 일부는 방사능과 함께 북쪽으로 이동하며 피폭 피해를 키우는 일이 벌어졌다. 공공성의 핵심 구성요소 중 하나인 투명성의 부재가 낳은 사회적 재난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다양한 사회 문제 해결의 열쇠로 등장한 사회적 가치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현실을 진단하고, 사회적 가치 실현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인 ‘2020 사회적 가치 포럼’이 지난 20일 서울시 중구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이 주최하고,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후원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 ‘사회적경제 활성화 종합대책’을 발표한 이래로 사회적 가치와 관련한 다양한 논의의 자리가 마련됐지만, 정부·노동·시민사회·공공기관·기업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함께 자리한 건 처음이라 할 수 있다.
김용기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축사에서 “저성장과 불평등은 우리가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추구하지 않은 결과”라며, 정부에서도 사회적 가치를 전략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보겠다고 밝혔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도 우리 사회가 모든 가치의 우선 순위를 경제성, 능률성, 효과성에만 두다 보니 비정규직이 확대되고 실업률이 높아지는 등 사회 문제를 야기했다면서 한목소리로 “이번 행사를 통해 사회적 가치에 대한 보다 실질적인 대안을 고민하는 대화의 장이 이어졌으면 한다”고 기대를 내비쳤다.
기조발제를 맡은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분리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는 성장을 위해서라도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할 때”라며 “공공성과 1인당 GDP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공공성 강화 없이는 그 사회는 더는 성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전과 사회적 가치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거듭 강조했다. 장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세월호 사고를 예로 들며, 자연재난과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팬데믹(전염병)을 방지하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고려할 가치로 ‘안전’을 꼽았다. 그는 “공공성이 높은 나라일수록 위험관리 역량이 높게 나온다”며 “안전에 대한 투자를 비용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회적 공감대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정부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토론자로 나선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는 사회적 가치와 관련된 미디어 보도 분석을 통해, 사회적 가치에 대한 언론의 관심의 적은 원인을 정부의 사회적 가치 추진력이 부족한 데서 찾았다. 실제로 사회적가치기본법(안)은 문재인 정부 들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조차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고,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에서도 주요 의제로 오르지 않을 만큼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도 밀렸다. 지난달 15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공공부문의 추진 전략’을 발표했을 때도 주요 언론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길을 찾다’라는 주제로 패널토론도 진행됐다. 왼쪽부터 염형철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이사장,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성한용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송경용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사장, 라영재 (전)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소장, 홍두선 기획재정부 장기전략국장, 김재구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 정흥준 공공상생연대기금 연구운영위원. 사진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사회적 가치, 경영전략에 반영해야”
사회적 가치가 우리 사회의 중심 의제가 되려면 국회와 공공부문에서의 논의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김경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는 “공공부문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공공부문이 그동안 당연히 해야 했을 사회적 가치 실현을 해오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전 사회적인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공공기관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재구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도 “공공기관조차 지난 수십 년간 공공성을 무시하고 경제성과 효율성만을 중시해 온 결과,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이 기부, 봉사활동 등 단순 사회공헌 활동으로 해석됐던 게 사실”이라며 “지금이라도 공공기관은 사회적 가치의 제대로 된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적 가치를 경영전략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가치 확산을 위해 지속해서 논의를 이어가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이날 포럼 참석자들은 정치, 경제, 노동, 종교, 시민사회, 행정, 학계, 언론 등 각계 인사들이 모여 대화와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사회적 가치 실천 방안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가치 대화 마당’(가칭)을 제안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선 성별 균형의 문제도 지적됐다. 사회적 가치를 논의하는 자리임에도 정작 행사에 참여한 모든 연사와 내빈이 남성으로 채워진 현실 탓이다. 아직은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음을 보여준 풍경이었다.
♣️서혜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hyeb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