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막막하던 차에 은아님이 먼저 내 손을 잡아주셨다. 위로의 말을 떠올리려 애쓰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를 위로해야 하는 존재로, 은아님을 위로받아야 하는 존재로 섣불리 규정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른 아침에 실례지만 오늘 출근해서 전자문서 공람 확인하다가 1월4일자 동향보고에 중년남성이 고독사로 발견되었다는 보고를 봤는데 전 부인이 지적장애인이라고 하는데 우리 대상자이신 거 같아서요.”(보건소 간호사 문자메시지)
지적장애가 있는 은아(가명)님은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이 전혀 관리되지 않아 보건소 방문간호사로부터 방문진료를 하는 의사인 내게 의뢰된 분이었다. 나는 지난해 초 고립돼 누군가가 찾지 않는 아픈 분들을 만나고 싶어 방문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원을 열었다. 나를 찾는 분이 한 분이라도 있을까 걱정했는데 감사하게도 보건소, 복지관 재가요양센터와 같은 기관이나 동네 이웃들이 손을 내민다.
이혼 후 세 딸과 사는 은아님을 처음 방문했을 때 집은 부업으로 하는 전자제품 부속들과 편의점 비닐봉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간단한 문진과 검사를 하고 앞으로 만성질환 관리를 함께하자고 말씀드렸다. 나름대로 이야기를 잘 나누고 돌아갔다고 생각했는데, 이후에 은아님은 전화를 잘 안 받았다. 전화를 받아야 방문 약속을 잡을 텐데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한 채 몇주가 흘렀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무작정 집을 찾아갔다가 외출하는 은아님을 운 좋게 마주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는 언니가 매우 아프셔서 돌봐주러 가고 있어요.”
“아는 언니도 잘 돌봐주셔야겠지만 은아님도 잘 챙기셔야 해요. 제가 연락드릴 테니 꼭 받아주세요.”
다행히 일부러 연락을 받지 않은 건 아닌 것 같았다. 몇번 더 실패를 거듭한 끝에 기어코 약속을 잡았다. 오전 8시20분, 은아님이 내게 만남을 허용한 시간.
“제가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낯선 사람이랑 대화를 잘 못해요.”
말수는 적었지만, 조심스럽게 털어놓은 살아온 이야기와 알코올중독으로 건강이 나쁜 전남편 걱정이 이어졌다. 어떤 사정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그는 몇년 전 남편과 이혼하고 세 딸과 인근으로 이사한 뒤 가끔 남편을 찾아간다고 했다. 자신보다는 다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가족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지낸 자신의 어린 시절이 마음에 크게 남아 있는 듯했다. “기회가 되면 남편분도 같이 만나봐요.” 내가 조심스레 제안했지만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
약이 커서 잘 못 먹겠다는 은아님의 의견에 작은 크기의 약을 찾기로 했다. 힘겨운 삶 때문인지 건강관리는 뒷전이었지만 몇달에 걸쳐 꾸준히 격주로 아침 일찍 방문해 이야기 나눴다. 당장 약을 잘 챙겨 드시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어도, 정기적으로 만나 검사도 하고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던 어느 주말 오후에 은아님에게 전화가 왔다.
“고독사는 막지 못했지만 남은 사람, 남은 가족을 돌보는 것은 우리에게 숙제처럼 남았다. 그 숙제를 어떻게 풀어갈지는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봐야겠다.” 게티이미지뱅크
“선생님, 다음주에 못 뵐 거 같아요. 전남편이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고 해요. 냄새가 나서 이웃 사람들이 신고했대요.”
당일 저녁 장례식장을 확인하고 잠시 들렀다. 빈소에는 세 딸과 몇몇 친척들이 있었지만, 조문객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내가 첫 조문객이었고, 마지막 조문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인의 영정사진을 보며 조금 더 일찍 살아 계실 때 만났으면 하고 자책했다.
은아님은 잠시 놀랐지만 곧 담담하게 나를 조문객으로 받아들였다. 첫 방문 때 집에서 잠깐 만나 엄마 건강관리를 도와달라고 내게 부탁했던 중3 막내딸은 나와 은아님의 대화를 들으며 키득키득 웃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 엄마 운동 안 해요.” 아버지에 대한 슬픔보다 엄마를 찾아온 첫 조문객이 더 흥미로운 듯 보였다. 아버지의 죽음이 슬프지 않은 걸까, 슬퍼할 여유가 없는 걸까. 훗날 어떤 방식으로든 큰 사건으로 남을 죽음일 텐데 걱정이 밀려왔다. 기회가 된다면 막내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엄마처럼 연락이 어려우려나.
가족들은 고독한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듯했다.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막막하던 차에 은아님이 먼저 내 손을 잡아주셨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막막한 마음이 녹아내렸다. 위로의 말을 떠올리려 애쓰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를 위로해야 하는 존재로, 은아님을 위로받아야 하는 존재로 섣불리 규정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손이 차서 겨울에는 악수하는 걸 상대방에게 미안해하는 편인데 무방비 상태로 손을 내어드릴 수밖에 없었다. 손이 참 따듯했다.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은아님의 그 따듯한 손길만 기억에 남았다.
고독사는 막지 못했지만 남은 사람, 남은 가족을 돌보는 것은 우리에게 숙제처럼 남았다. 그 숙제를 어떻게 풀어갈지는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봐야겠다.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남의 집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꿈도 계획도 없다. 내 집도 남이 드나들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방문을 허락하는 이들이 고맙고, 그 고마운 이들과 오랫동안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