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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꿈같은 직업’ 게임 스트리머? 보이는 즐거움 뒤 숨은 ‘무한경쟁’

등록 2020-02-21 19:43수정 2020-02-22 02:02

[토요판] 최태섭의 어른의 게임
17. 랜선 건너 게임구경
아마존닷컴에서 설립한 게임 전문 스트리밍 서비스인 트위치(twitch.com)는 2011년 창립돼 2018년 기준 전체 게임방송의 31%를 차지하고 있다. 트위치 누리집 화면 갈무리
아마존닷컴에서 설립한 게임 전문 스트리밍 서비스인 트위치(twitch.com)는 2011년 창립돼 2018년 기준 전체 게임방송의 31%를 차지하고 있다. 트위치 누리집 화면 갈무리

게이머라면 어린 시절 부모님 몰래 놀러 간 오락실이나 문방구 앞 작은 오락기에서, 혹은 게임기를 갖고 있는 친구 집에 놀러 가서 홀린 듯이 다른 사람의 플레이를 지켜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한국은 일찍이 이 시장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선도한 바 있다. 이른바 이스포츠(e-sports)다. 1999년 좁은 스튜디오에서 통풍도 안될 것 같은 요상한 비닐옷을 입고 조촐하게 시작된 게임대회는, 2004년 광안리 해수욕장에 운집한 10만 관객의 함성으로 급속 성장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9 게임백서>를 보면 한국 이스포츠 산업의 규모는 2018년 기준 1138억6천만원이고, 세계 이스포츠 시장의 15.1%를 차지한다. 2018년 한국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리그오브레전드 월드컵(롤드컵) 결승전에는 한국팀이 결승 진출에 실패했음에도 2만6천석이 모두 매진되었다.

최근 게임구경은 좀 더 개인적이다. 통신기술의 발달로 실시간 스트리밍이 훨씬 더 쉽고 빨라진 것이 한몫을 했다. 영화와 드라마가 극장에서 넷플릭스로 옮겨간 것처럼, 게임채널을 보거나 현장에 가는 대신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게임방송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이 랜선 너머(이것도 곧 낡은 표현이 될 것 같다) 게임구경도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산업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게임 관련 온라인 개인방송 시장 동향과 트위치(Twitch) 사업자 전략>(2019)에 따르면 2018년을 기준으로 세계 게임방송 산업의 수익은 52억달러, 시청자 수 8억5천만명에 달한다.

게임방송은 스트리머와 시청자가 게임을 매개로 벌이는 상호작용이다. 시청자와 게임화면을 공유하며 게임을 하는 것은 영상, 사운드, 또 콘텐츠까지도 해결되는 훌륭한 방송 솔루션이 된다. 가령 공포게임은 티브이의 예능프로가 여름마다 진행하는 납량특집을 대체할 수 있다. 링피트 같은 몸을 쓰는 게임들은 훌륭한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사한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즐겁다.

게임방송의 스트리머들은 다양한 특성을 갖고 있다. 전현직 프로게이머는 현란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팬과 소통할 기회를 갖는다. 적은 수의 게임만을 집중적으로 플레이하는 이른바 ‘고인물’ 스트리머는 깊은 정보와 팁을 제공한다. 다양한 게임들을 바꿔가며 플레이하는 ‘종합게임’ 스트리머는 새로운 게임을 소개해주는 한편 시청자와의 소통에 좀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 외에도 스트리머의 캐릭터성을 내세우며 유명해진 채널과, 연예인 못지않은 골수팬을 거느린 유사 아이돌 같은 스트리머도 있다. 게임방송이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된다. 먹방, 잡담, 이벤트는 물론이고 팬미팅도 한다.

실시간 방송을 보는 이들은 크게 실시간 채팅과 기부를 통해 방송에 참여할 수 있다. 적게는 천원 정도를 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지만, 만 단위나 십만 단위, 드물게 백만 단위까지 등장할 때도 있다. 시청자는 스트리머를 응원하거나 놀리기 위해서 돈을 쓰고, 특정한 목표를 주고 현상금을 걸기도 한다.

스트리머에 따라 방송의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다. 서로 욕을 주고받는 ‘매운맛’ 방송이 있는가 하면, 비속어를 금지하는 방송도 있다. 스트리머는 자신의 시청자를 위한 애칭을 만들고, 방송 중에 발생한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통해 그들만 사용하는 은어들도 생겨난다. 일종의 ‘문화 부족’(같은 문화를 공유해 내부적 동질성을 갖는 집단)인 셈이다. 때로 이 영향력이 방송을 넘어 과도하게 뻗어나가면 사회적 문제로까지 비화된다. 초중고 남학생들이 교실에서 외쳐댔다던 “보이루”(유튜버 ‘보겸’과 인사말 ‘하이루’를 합친 말이라 주장하지만 여성이 성기를 비하하는 표현이라는 지적)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유명한 전업 스트리머들의 경우에는 사생활이라는 것이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매일같이 방송을 하고,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시청자와 나눈다. 최근 들어 유명 스트리머들이 방송을 쉬거나 플랫폼을 옮기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방송을 하루라도 쉬면 구독자들이 자신을 떠나버릴까 두려워서 이를 악물고 강행군을 이어온 결과 심신의 건강이 무너진 탓이다. 게임을 하면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꿈같은 직업의 이면에서 마주한 것은 결국 무한경쟁과 불안의 늪이다. 재미있자고 하는 일이 죽고 사는 일이 되면 괴로워진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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