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청 직원들이 19일 오후 코로나19 32번째 확진자가 거주했던 아파트 주변에서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국내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례까지 나오면서, 본격적인 지역사회 감염 국면에 대비해 장기전을 준비하는 방역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병원 내 감염이 중심이었던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에 견줘 환자가 어디서 나올지 예측하기 어려운 지역사회 감염으로 번지면 더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건당국은 코로나19 환자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진단검사를 확대하는 한편, 증상에 따라 의료기관별로 환자를 나누어 치료하는 체계를 마련 중이다. 전문가들은 감염 규모를 줄이기 위해선 지역의 1~3차 의료기관과 공공병원, 시민들이 모두 협력하는 방역망 구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코로나19가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전염력이 높아 검역이나 의료기관 진료체계 내에서 확인하지 못하는 환자가 나올 수 있고, 그들이 감염원이 될 가능성도 있다”며 “의심환자들이 신속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여건, 발견된 환자를 신속히 격리할 수 있는 병상 확보,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의료진 확보가 최우선으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우선 중대본은 확진자를 조기에 찾아내기 위해 진단검사를 확대한다. 이를 위해 새로 마련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응지침’(6판)이 20일부터 시행된다. 새 지침에 따르면 국외 여행력이 없지만 중국 입국자와 접촉이 잦은 경우, 입원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의 폐렴 환자 등도 검사 대상에 포함된다. 원인 불명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에 대해선 음압병실이나 1인실에 옮긴 뒤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지금까진 중국을 비롯한 코로나19 유행 국가에서 입국한 뒤 의심증상이 있거나 원인 불명의 폐렴이 발생했을 때 의사 소견에 따라 진단검사를 할 수 있었다. 확진자와 가깝게 지낸 접촉자에 대한 관리도 강화된다. 의료인이나 간병인, 오랜 시간 환자와 함께 머문 가족과 지인 등은 자가격리 13일째에 검사를 하고 14일째에 격리를 해제하기로 했다.
중대본은 또 발열·호흡기 등 의심 증상이 나타난 환자들을 별도로 치료하는 외래진료 체계 구축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 본부장은 “특히 경증에서 전염력이 있을 때 확진자를 빨리 발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호흡기·발열 환자들이 무작정 의료기관에 찾아가 (전파하는 걸) 방지하려면 안심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별도의) 외래진료 경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9일 오후 대구광역시 서구 대구의료원 선별진료소 의료진이 코로나19 확진 검사를 문의하는 이들에게 “지금은 검사가 안 된다”고 말하며 손으로 X 표시를 하고 있다. 이날 대구의료원에는 의심환자가 몰리며 코로나19 확인 검사가 늦어졌다. 연합뉴스.
무엇보다 중대본은 장기전에 대비해 환자 증상에 따라 보건소·공공 및 민간 의료기관별로 역할을 달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환자가 대폭 늘어날 경우 중증환자가 치료받을 수 있는 병상·의료진 부족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데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한 방책이다. 이를 위해선 전국 1027개의 음압병상을 운용할 인력이 충분한지도 살펴야 한다. 구체적으로 보건소가 경미한 증상이 있는 의심환자 선별진료를 담당하고 경증의 입원환자는 공공병원, 중증환자는 국가지정 격리병상과 상급종합병원에 맡긴다는 구상이다. 정은경 본부장은 “경증·중증을 분리해 국가지정 격리병상이나 상급종합병원 부담을 완화시키고 중증 복합질환자들이 제대로 된 집중치료를 받을 수 있게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계속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상급종합병원 같은 3차 의료기관에 견줘 작은 병·의원(1·2차 의료기관)의 경우 감염병 대응 능력이 미흡하다고 진단한다.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은 “2015년 메르스보다는 2009년 신종플루 때처럼 인플루엔자 유행에 대응하는 방역망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임상 경과나 치료 정보를 1·2차 의료기관에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병원의 부족한 인력·자원과 지역별로 차이가 큰 감염병 대응 역량도 지역사회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다. 대구·경북 지역 집단발병 사례처럼 단시간 내에 확진자와 의심환자가 대거 발생할 경우 지역 의료자원은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교수(감염내과)는 “시·도 의료원 역할이 중요한데,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 어떻게든 인력·시설을 단기간에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의심 증상이 나타난 시민들의 자발적 대처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감염 위험이 있는 사람은 자가격리를 스스로 하고 가급적 사람 많은 곳에 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선 ‘내가 증상이 있어서 직장에 가지 못하겠다’는 태도가 사회적으로 수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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